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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은 Sep 04. 2022

아이의 언어

최고는 못 해주지만 최선을 다해 보도록 노력할게

아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아이의 말이 우리 부부를 웃게 하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가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단어를 툭 던지거나, 이 작은 머리에 어떤 생각이 담겨있는지 엿볼 수 있는 말을 건넬 땐 혹시 나중에 잊게 될까 봐 꼭 적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그동안은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말 재미있고 기발한 말이었는데 적어두질 않으니 아쉽게도 금방 잊히더라.


그래서 오늘은 이번 주말, 기억에 남는 아이의 말을 적어보려고 한다. 가족여행 중, 숙소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맛집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오후에 마신 아메리카노 때문인지 이상하게 자주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화장실에 가고 싶으니 어서 가자고 길을 재촉했다. “길가에 잠깐 내려줄까?”, “아니 화장실 찾는 게 더 어려워, 어서 숙소로 가자.”와 같은 대화를 나누던 중, 아이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묻는다.


“엄마, 내 로케트 빌려줄까?”


아이가 말하는 ‘로케트’는 네 돌이 채 안 된 우리 아들이 차 안에서 종종 사용하는 간이 소변기다. 자그마한 텀블러처럼 생겼는데, 소변을 담아 밀봉할 수 있어 이동 중 급할 때 사용했었다. 그런데 기특한 우리 아들, 이걸 엄마한테 빌려준단다. 남편과 한바탕 웃고 나서 아들에게 “엄마는 로케트를 쓸 수 없어. 하지만 빌려준다고 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해 주었으나 아직 왜 쓰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조만간 이해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엄마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본인 전용 물건을 사용해보길 권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물론 귀여운 말만 하는 건 아니다. 요즘 자기 전에 양치할 때마다 양치하기 싫어 도망가는 아이와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곤 하는데, 오늘도 충치 벌레가 이를 모두 썩게 할 거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협박한 끝에 입이 댓 발 나온 아들을 화장실로 밀어 넣던 참이었다. 주섬주섬 화장실 슬리퍼를 신던 아이가 궁시렁거렸다.


“엄마는 내 말을 참 안 들어!”


하하,,,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마다 무서운 눈을 하고 “아들, 엄마 말 안 듣네~?!” 하던 걸 담아두고 있다가 불만이 생기니 바로 받아치는 솜씨라니. 실소가 터져 나왔지만, 짐짓 모른 체하고 아이의 이를 닦아주었다.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 주고,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해야 하는지 참 고민이 된다. 나는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가족 분위기에서 컸고,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릴 때부터 나는 ‘어른이 되면 난 절대로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않을 거야’를 속으로 다짐하곤 했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임무를 완료하듯 일과를 해치우면서 아이가 내 맘 같지 않게 움직일 때면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짜증이 묻어나는 말을 던졌었나 보다. 그걸 마음에 간직했다가 그대로 돌려주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를 웃게 하면서도 또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우리 아이에게, 가장 좋은 말과 최고의 것들을 주고 싶은데, 항상 지금 현실에서의 최선을 해줄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우리 아이가 크고 나면 엄마가 매사 최선을 다해주었다고 기억해 줄까. 알 수 없지만, 밤마다 잠든 아이의 웅크린 뒷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만 가득 안고 하루를 마감하는 엄마의 마음은 부디 알아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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