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 them accountable”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예시로 시작할까 한다. 지난달 우리 팀에서 새로운 결제 시스템 도입 프로젝트가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처음엔 단순해 보였다. 기존 결제 플로우를 개선해서 고객 이탈률을 줄이는 게 목표였으니까. 하지만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었다. 담당 프로덕트 매니저는 매주 보고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다른 팀에서 협조를 안 해줘서 진행이 어렵습니다.”
“법무팀 검토가 끝나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테크팀 리소스가 부족해서 일정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때 내가 던진 말이다.
“Make them accountable.”
그리고 네가 할 수 있는 것까지는 끝까지 밀어붙여라
“Make them accountable”을 흔히 ‘책임을 묻는다’로 해석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조금 다르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라는 게 아니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끌어간 다음, 다음 단계에서 행동해야 할 사람을 명확히 식별하라는 뜻이다.
그 팀원에게 다시 물었다.
“법무팀에 정확히 어떤 자료를 언제 보냈어?”
“테크팀 팀장과 직접 미팅은 해봤어?”
“다른 팀이 협조 안 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확인했어? 그들의 우선 순위는 뭐야?”
답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메일 한두 통 보낸 게 전부였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네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봐. 법무팀에는 검토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완벽하게 정리해서 직접 가져다줘. 테크팀 팀장과 일대일 미팅을 잡고, 왜 이 프로젝트가 중요한지 설득해봐. 다른 팀에는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부분을 찾아서 제안해봐. 그렇게 해서도 안 되면어떤 프로젝트 때문에 도와줄 수 없는지를 파악해. 그런 다음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하자.”
진짜 막힌 지점에서 바톤을 넘겨라.
3주 후, 그 팀원이 다시 보고했다. 이번엔 달랐다.
“법무팀에는 필요한 모든 자료를 준비해서 직접 설명드렸습니다. 담당자가 이번 주 내로 검토 완료하겠다고 확약했습니다. 테크팀 팀장과는 두 번 미팅했고, 개발 리소스 확보에는 동의했지만 우선순위 조정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이 부분은 테크팀 본부장 승인이 필요합니다. 다른 팀은 초기에는 거부했지만, 그들 팀 KPI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니까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진짜 액션이 필요한 사람이 명확해졌다. 테크팀 본부장이다. 이 사람의 결정 없이는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테크팀 본부장에게 연락했다. “우리 팀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우선순위 조정이 필요합니다. 미팅 시간을 잡을 수 있을까요?”
결과적으로 그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팀원이 배운 것이다.
많은 직장인이 프로젝트가 막힐 때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끝내지 못했나”라고 자책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 다 했다면, 그 이후에 대한 죄책감은 불필요하다. 중요한 건 “프로젝트가 끝났는가”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다 했는가”다. 예를 들어, 다른 부서의 협조 없이는 진행할 수 없는 프로젝트가 있다고 하자. 이메일 한 통 보내고 “협조 안 해주네요”라고 포기하는 건 책임감 있는 태도가 아니다. 하지만 직접 만나서 설득하고, 상호 이익을 찾아 제안하고, 여러 차례 후속 미팅을 가진 후에도 거절당했다면? 그때는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을 수도 있다. 그럴 땐 윗 사람에게 escalate하여 윗 사람을 accountable 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이는 전에도 자주 언급했던 escalation의 중요성과 연관이 있는데, 이 테크닉이 잘 활용된다면 모든 직원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 물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윗 사람을 찾아가고 escalate 한다면 되려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명확한 사유가 있고 윗 사람에게 바라는게 무엇인지 명확하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렇게 하면 세 가지 좋은 일이 생긴다.
첫째, 프로젝트 연속성이 확보된다. 내가 어디까지 했는지 명확하니까 다음 담당자가 이어받기 쉽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다.
둘째, 윗사람의 불필요한 추궁을 받지 않는다. “왜 안 되는 거야?“라는 질문 대신 “수고했다, 내가 이어받겠다”는 반응을 얻는다.
셋째, 오히려 프로젝트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막힌 부분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니까, 상대방도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했는데”하며 마음을 바꿀 수 있다.
“Make them accountable”을 잘못 이해하면 책임 회피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의미는 정반대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더 치열하게 내 영역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내가 팀원들에게 요구하는 건 이것이다.
•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는가?
•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명확히 제시했는가?
• 다양한 채널과 방법을 써봤는가?
그 결제 시스템 프로젝트와 비슷한 경험을 한 다음, 우리 팀의 프로젝트 완료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팀원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불필요한 스트레스도 줄어들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게 되었으니까.
결국 “Make them accountable”은 더 책임감 있게 일하는 방법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해보고, 진짜 안 되는 부분에서는 명확하게 바톤을 넘기는 것.
그게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