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B2B, 그것도 대출 마케팅을 한다는 것은.
금융회사, 그것도 P2P라 불리는 온투업계에 들어선 것은 꽤나 우연이었다.
작년 겨울쯤 다니던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져서
대표님은 슬슬 우리 모두 이직 준비를 하자고 했고,
나는 예전처럼 프리랜서, 계약직로 일하면서 몇달은 버텨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에게 외주 마케터를 구하는 곳이 있는데
화상미팅이라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연락이 왔다.
나는 당연히 좋다며 미팅에 응했고,
지금의 대표님은 미팅이 끝나자마자 외주가 아니라 채용제안을 주셨다.
마케팅 팀이 없는 곳이지만 기틀을 잡아달라 하셨다.
주니어 마케터인 내게는 턱없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사수 없이 일하는게 하루이틀인가 싶었던 나는 겁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곧 백수가 될 예정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지만)
그렇게 나는 금융업계, 그것도 제도권에 들어온지 갓 2년이 된 온투업계의 마케터가 되었다.
금융업이라고 뭐 얼마나 다르겠어, 똑같은 마케팅인데 라고 생각했던 건 정말 착각이었다.
온투업은 O2O 플랫폼과 비슷하게 B2B와 B2C 비즈니스가 한꺼번에 들어있는 형태였고,
심지어 하나는 대출광고, 하나는 투자광고였다.
게다가 마케팅 팀은 나 하나.
나는 혼자서 두가지를 모두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대표님이 주신 링크 속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읽으면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ㅎㅎ
(광고법규를 위반하면 과태료가 1억이라는.... 구절은 감명 깊었다....)
내가 O2O 플랫폼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고,
매번 수요자와 공급자를 모두 만나는 회사에서 자주 일했기 때문에,
B2B 마케팅 자체가 생소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대출 마케팅도 대부분의 B2B 마케팅처럼 접근했다.
니즈를 파악하고, 포지셔닝 맵 그리고, 고객과의 컨택 포인트를 만들었다.
인터뷰도 해보고, 상담 부스를 운영해보기도 하고, 대면 세일즈도 뛰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전환율이 오르질 않았다.
이율이 문제인가 해서 혜택도 늘려보고
대출신청 과정에서의 UX UI 개선도 했는데
CTR도 랜딩페이지 이탈율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그러다 되게 신박하고 솔직한 피드백에서 인사이트를 얻었다.
회사 이름 처음 들어봐요. 사기 같아요. 못 믿겠어요.
이름도 못 들어본 회사가 국가 지원사업도 한다하고
대출을 해준다고 하니까 사기 같다고
못 믿겠다고 아예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가게 사장님의 피드백을 듣고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금융업계, 대출의 가장 큰 판단 기준은 "신뢰도"였다.
금융은 일단 업체에 믿음이 가지 않으면
아예 상품에 대한 내용은 확인도 하지 않는 행태를 보였다.
(B2C 투자자 마케팅도 진행해본 결과, 투자자 쪽도 경향은 비슷했다)
1. 은행인가 아닌가?
2. 제2금융권, 대부인가?
3. 사기인가 아닌가?
사장님들은 이런 식으로 대출상품 정보를 확인하기도 전에
금융업체가 믿을 만한지 보신다고 했다.
우리는 온투업(P2P투자사)로 은행도 아니고 제 2금융권도 아니었으며,
단어부터 복잡한 온라인투자연계금융,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을 소개하려고 드니,
덜컥 사기인가 싶어 거절하는 식이었다.
상품이 어떻게 좋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그 다음 문제였다.
그럼 우린 어떻게 신뢰를 줄 수 있을까.
우린 은행도 아니고 제 2금융권도 아니며
혜택을 늘리고 강조하면 할 수록
혜택이 너무 많아서 사기 같아 보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별별 짓을 다 했다.
소상공인 유튜버가 하는 카페에 가서 활동도 하고 광고도 싣고
배달, 식자재, 매출관리, 결제관련 플랫폼 등 여러 버티컬 매체에 배너를 걸었다.
보도자료도 만들고, 경제방송에서 대표님 생방 인터뷰도 했다.
진행하던 국가 지원사업을 강조해서 연결도 해봤는데,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몇달이 흘렀고,
우리의 온투업 비즈니스 모델은 SaaS사들처럼 박리다매라
회사 사정은 점점 다급해졌으며 당장 트래픽의 다량 유입이 필요했다.
그러다 결국 효과를 본 것이 있었으니
바로 대출비교 서비스였다.
대출비교 서비스를 통해 대출자를 모집, 중개하는 것은
사실 한동안 업계에서 법적 리스크가 있어 꺼리는 상황이었는데...
약간 이게 슬슬 풀리는 분위기였고,
우리는 웬만한 리스크라면 져야하는 상황이었다.
다양한 업체의 사업자 대출비교 서비스에 입점을 했고,
접수량, 전환율이 모두 급격하게 높아졌다.
대출이 필요한 소상공인이라는 타겟팅,
플랫폼에 1,2금융권 업체들과 같이 노출되며 해결된 신뢰도 문제.
대출비교를 통해 개인화 추천으로 떴다는 확신이 어우러지며
심사팀에 업무로드가 걸릴 정도로 접수량이 늘었다.
그렇지만 접수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심사 과정에서의 심사 통과율 문제, 대출비교 서비스와의 크고 작은 이슈,
모집 이후 펀딩 제작부터 약정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대출자를 모았다.
이제는 투자자 모으는 게 또 문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