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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an 31. 2023

어른의 성적표는 통장잔액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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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최고의 충격을 선사한 연말정산 신고서를 보았다. 작년에 내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소비해 왔는지) 눈으로 그 액수를 확인해 보니 그저 경탄만 나올 뿐이다. 이 지출만큼의 돈을 벌었다는 것도 신기할 정도이다.


그래도 총 소비액과 연봉을 생각해 보면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반 정도 쓰고, 반 정도 모았구나.'

그나마 어른이 되었다고 최대한 소비를 참고 저축하고, 주식하고, 여행도 안 가고 소비의 허리띠를 조여맨 결과이다.


나는 지독한 회피형이다.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최대한 회피하며 사는데 요즘 가장 무서운 것은 은행 어플에 접속하는 것이다. 내 통장 잔고마저 회피하는 중이다. 혹시라도 실수로 들어갈까 봐 핸드폰 화면 구석으로 숨겨두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입금할 일이 생겨 어플을 들어가면 그렇게 마음이 불편할 수 없다. 마치 학창 시절 성적표 같다. 가방 속에 있는 성적표는 볼 수 없지만 이미 몇 점을 받았는지, 반에서 몇 등인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반에서 몇 등이 나오는지에 따라 우등반에 들어갈 수 있는지가 정해지고 (그 우등반은 학교에서 특별한 야자실이 주어지며 선생님들의 특별 관리를 받을 수 있었다.) 친구들과의 교우 관계도 성적에 따라 정해진다. 통장 잔고에 따라 사는 곳이 결정되며 어울리는 사람들 또한 어느 정도 통장 잔고에 따라 정해진다. 다들 비슷비슷하게 사는 것 같은 회사 사람들 말이다.


어른이 되어 성적표의 악령에서 벗어난 줄 알았지만 아뿔싸, 청구서의 악령이 붙어버렸다. 그리고 20년 전에나 지금이나 똑같이 외친다. "그때 열심히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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