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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l 23. 2024

P의 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 여행

두 번째 날

여행 2일 차, 도저히 하루에 쓴 돈을 기록한다는 것은 무리란 걸 깨달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캡슐호텔에서 잔 것 치고는 꽤 괜찮은 밤을 보냈었다. 가벼운 몸으로 체크아웃을 하고 어제 사둔 신칸센 표를 들고 하카타역으로 향했다.

비가 어제에 이어 계속해서 내렸다. 다시 캐리어를 들고 나오니 그 무게에 휘둘렸지만 그래도 즐거움을 잃지 않고 미뇽 크루아상과 BOSS커피를 샀다. 코로나에 안 걸리겠다는 나의 노력은 실로 가상한지라 밖으로 나와 한 손엔 크루아상 다른 손엔 커피를 들고 캐리어에 살짝 기대어 서서 아침을 해결했다. 그러고 보니 48시간 동안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머리를 감을 때도 말이다.


9시 50분이 되어 기차 플랫폼을 확인하고 신칸센을 기다렸다. 한국에서 쿠마모토로 바로 오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지만, 아직 비행기 노선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비행기 가격이 비싸 후쿠오카에 온 것이다.

한국에서는 서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공터가 많아 '모든 것은 이미 서울에 있으니,,,' 하는 느낌인 반면에 신칸센에서 후쿠오카를 벗어나 보이는 풍경은 넓은 땅과 마을, 계속해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나중에 이때 느낀 감상을 기반으로 가족들과 한바탕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엄마가 내게 가볍게 물어본 질문이었다.


"너는 서울에 태어난 게 좋니, 시골에서 태어나고 싶었니?"


"내 성향은 시골에 태어나서 거기서 먹고 자라고 죽을 때까지 그곳을 벗어나지 않는 삶을 선택했을 것 같아. 저번에 일본 갔었는데, 거기는 도심지 벗어나도 계속 있고, 논이랑 밭이 있고 공터가 없었어, 근데 서울은 조금만 벗어나도 공터가 많잖아. 생각해 보니까 일본은 인구수가 많아서 자급자족이 되니까 굳이 도시로 안 오는 같더라고. 친구한테 들으니까 물론 의료 인프라 라던지 그런 건 도시랑 차이가 있기는 한다던데,,, 아무튼 그냥 지역에서 농사를 짓거나 그렇게 안온하게 살았을 듯."


엄마는 답이 없었다. 아마 어릴 때 보낸 학원비를 어림잡아 산수 하셨을 수도 있다.


 구마모토까지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려 개찰구로 가보니 친구가 바로 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친구 옆에 작은 친구, 슈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슈리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점점 자라는 모습을 사진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엄마 손을 꼭 잡고 나를 바라보며 준비한 한국어를 겨우 내뱉는 슈리가 너무나 귀여웠다.


 우리는 잠시 쇼핑몰에 들렸다. 구마모토도 비가 내려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어 나도 긴팔 티셔츠를 사기 위해 찾아봤지만 마땅한 옷이 없어 쇼핑몰을 나와 구마모토 성으로 향했다. 비가 많이 와 자유로이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성 아래 관광객을 위한 상점 거리를 구경했다. 


 슈리는 어느덧 내 존재가 익숙해졌는지 제법 옆에 와주었다. 그리고 회전초밥 가게로 가서 늦은 점심을 다 같이 먹었다. 친구의 남편과 그 옆에 슈리, 그리고 내 옆에는 친구가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주문한 초밥을 기다렸다. 친구가 점심을 사주겠다는 말에

"나 엄청 많이 먹을 거야."

부담을 잔뜩 주고 먹은 건 연어 2 접시, 장어 2 접시, 어니언링 1 접시, 이름 모를 흰색생선 초밥 1 접시. 어니언링을 찍어먹은 달달한 간장소스가 맛있어서 집 돌아가는 길 잠깐 장 보는 마켓에서 찾아보았으나 일반 간장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는 차가 많이 막혔다. 차 안에서 나와 슈리는 인형 놀이를 했다. 슈리는 일본어로 말하고 나는 슈리가 말하는 일본어 중 아는 단어만 골라 들어서 대답하니 둘이 소통이 전혀 안 됐지만 뭔가 의미는 서로 통해 말이 이어지고 있는 게 웃겼다고 친구가 말해주었다. 그 와중에 슈리가 "말이 안 통하네. 갈게."라고 했다고 친구가 말해주었는데 나도 같이 웃음이 나왔다.


 

해가 질 때쯤에 친구 남편의 온천에 도착했다. 온천욕을 첫날에 할 줄 예상하지 못했어서 별생각 없이 들어온 순간, 다른 차원으로 들어왔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일단 온천수의 물이 너무나 좋았다. 일반 물이 아닌 정말로 온천수란게 느껴질 정도의 질감이었다. 물에서 질감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얼마나 쫀득거리면서 몸에 착 붙는 온천수란 말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그리고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딱 그 중간의 온도까지 환상이었다. 몸을 대강 씻고 얼른 탕으로 들어가려고 일어나는데 옆에 계신 할머니가 내게 뭐라 말씀하셨으나 잘 알아듣지는 못해 일단 웃으면서 얼버무렸다.


 한참을 탕 속에 앉아 있더니 몸에 열이 올라 밖으로 나갔다. 찬 공기를 마주쳤지만 덥혀진 몸은 추위를 느끼지 못했고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구름 걸친 산이 이곳이 천국임을 증명하였다. 한참을 그렇게 산을 보다 문득 법문이 떠올랐다. 행복을 느끼지 말라는 이해가 되지 않는 법문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이해가 안 되었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위해 법문을 공부하는데 갑자기 행복조차 느끼지 말라니, 머리론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 행복은 절대로 한국에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 온천이 너무 좋아서 그렇다는 게 아니다. 오랜 친구를 만난 반가움, 나를 대접해 주는 친구의 마음씨, 귀여운 아이와 놀아주는 즐거움, 외국이 주는 설렘 등 오늘 하루가 새로운 감정으로 가득 찬 하루였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가는 한국은 항상 같은 공간, 사람들로만 매일을 채워가니 당연히 금방 지루해지고 웬만한 일에 감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에서 365일을 살아야 하니까 외국에서 주는 설렘이 없어서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늪에 빠지기보다는 일상이 주는 익숙함으로 365일을 사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삶인 것이다.


약 50분에 걸친 온천욕을 마쳐 1층으로 내려가니 사찌네 가족이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집에 돌아가기 전 잠시 마트에 들렀다.


 마트 물가는 놀라웠다. 이때 당시 한국은 파가 한단에 아마 5천 원 정도로 치솟은 때였었다. 친구에게 한국의 파 가격을 얘기해 주니 마트는 주로 이 근방 농산물을 판매하기 때문에 저렴한 편이라고 말해주었다.


 집에 돌아와 저녁상을 두고 식탁에 모였다. 친구와 친구의 남편은 마트에서 사 온 음식을 먹으며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슈리는 친구가 주는 초밥을 한 입 먹고 식탁을 2바퀴 돌았다. 하루가 끝나는 이 지점에도 이렇게 활발한 아이의 기력이 놀라웠다. 이야기하다 보니 다들 눈의 힘이 풀려가는 것이 보여 식탁을 정리하고 친구는 손님방을 소개하여 주었다. 그 방은 남편의 캠핑 관련용품을 두는 여윳방으로 친구가 놀러 오면 이곳에서 잔다고 한다. 바로 앞에 손님용 화장실도 있어서 편하게 쓸 수 있었다. 슈리와 굿 나이트 인사를 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 잘 준비를 했다.


 낯선 곳에서는 잠이 잘 오질 않는데 온천욕 덕분인지 언제 잠에 들었는지 조차 모르게 금방 골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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