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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ug 17. 2023

P의 후쿠오카 여행

첫 번째 날

 나에겐 절친한 일본인 친구가 있다. 우리는 약 10년 전에 필리핀에서 만났고 그 이후로 꾸준히 연락을 하며 친분을 쌓아왔다. 그 세월은 우리가 직접 만나는 날의 수는 비록 적을지라도 우정의 발목을 잡진 못했다. 시간이 흐르며 친구는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시골로 내려와 아이를 낳고, 차근히 인생의 계단을 밟아왔다. 가끔은 서로가 너무 바빠 연락하지 못했더라도 우리에겐 그 공백을 메꾸기에 충분한 정이 있었기에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해외로 가서 가장 보고 싶었던 건 그 친구였다. 그리고 친구를 꼭 닮은 딸이었다.


그래서 여행 3달 전부터 비행기표를 사고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동안 해외여행을 못 다닌 만큼의 시간 동안 기술은 발전해서 다양한 어플이 해외여행을 도와주었다. 바야흐로 오사카 주유패스를 사고 받은 종이 지도 하나만 붙잡고 오사카를 돌아다니던 그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어플 트레블 월렛 덕분에 환전 걱정 없이 쇼핑할 수 있었고 어플 트리플 덕분에 한국인들의 맛집 평들을 볼 수 있었다.

공항에서 하루를 시작한 적은 처음이라 생경했다. 평소라면 4시에 겨우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공항철도를 한참 타고 와야 했는데 그 과정 하나 없이 바로 공항이라 편리했다. 시간을 여유 있게 두고 3층에 왔지만 새벽 비행기라 그런지 공항 직원이 몇 없어 수속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간신히 탑승시간에 맞추어 34번 게이트에 도착했다. 예전 캐나다 갔을 때도 이 게이트였던 것 같은 익숙한 기시감을 느꼈다. 불확실함을 가득 안고 캐나다로 출국한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얼마나 안정된 출발인지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 안정된 출발을 위해 비록 약 2주간 야근했지만 말이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꼭 하는 의식이 있는데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잘 부탁해' 속으로 되뇌는데 이 잘 부탁한단 말을 다시 할 수 있을 때까지 약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눈 감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후쿠오카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후쿠오카의 날씨는 떠나온 인천의 날씨와 똑같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에 벚꽃이 속절없이 떨어져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입국 수속이 오래 걸려 나온 후쿠오카의 공항은 수년 전 마지막으로 본모습 그대로였다. 관광인포센터에서 관광지도를 챙겨 후쿠오카 시내로 진입하려는데 공항에서 바로 시내로 진입하는 방법을 그새 까먹었다. 후쿠오카 입국 공항(국제공항)은 바로 지하철과 연결돼있지 않아 무료 서틀 버스를 타고 국내선 공항에 가야 했다. 버스의 종점에서 내리니 후쿠오카에서 그대로인 것을 또 발견하였다. 버스정류장에 있던 큰 광고판들이다.

 

 지난 일본 여행에서 남겨온 동전들로 히카타로 가는 지하철 표를 샀다. 오랜만에 탄 일본의 지하철에는 에반게리온 광고가 한창이었다. 개고생 하며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온 기념으로 하카타 탄야 조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오전 10시까지 저렴하게 우설정식 메뉴를 운영하기 때문에 시계를 보니 아뿔싸 약 20분 전이다. 하카타역은 너무나 넓어 탄야 가게로 한 번에 갈 수 없어 인포 센터의 도움을 받았다. 탄야의 위치는 중(中) 4 쪽에 있었다.


간단한 설명에 금방 가게를 찾아 도착하였고 나는 간신히 10시 웨이팅에 걸려 살아남았다. 그렇게 작은 만족감을 채웠다. 이 얼마 만에 맛보는 성취감인지. 우설정식은 기름이 많았지만 불맛을 입혀 느끼함을 덜어주었다. 이 우설정식의 가격은 무려 780엔, 7800원이다. 여행 당시 엔화가 엄청 높아서 100엔당 천 원으로 계산하였다.

친구는 일정이 있어 다음날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오늘만 온전히 후쿠오카에서 보내야 했다. 딱히 후쿠오카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았던 터라 탄야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본 도큐핸즈 매장을 들러보기로 했다. 길을 되짚어 도큐핸즈 매장을 찾았다. 나는 길 찾기 천재가 틀림없다. 아무튼 도큐핸드 구경은 재밌었으나 딱히 구매욕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리고 불현듯 이번 여행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이소에서 공책을 사서 여행 일기를 쓰기로 다짐했는데 여기서부터 망했다.


다이소.


한국의 다이소가 아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콜라보한 각종 제품들과 문구. 나는 무려 한 시간을 쇼핑했다. 나는 '큰일 났다.', '이거 단단히 잘못 걸렸다.' 되뇌며 갖고 싶은 것들을 금액도 보지 않고 마구 담은 결과,

1920엔 나왔다. 2만 원에 가성비 덕질, 취미, 쇼핑, 시간 때우기를 할 수 있었다. 다이소에서 나오니 피곤이 몰려와 커피 생각이 간절해졌다.

 1층 TULLY 카페에서 Small drip coffee (345엔)을 마시며 공책에 오늘의 기록을 남긴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소비는 오로지 호텔비 계산이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식비를 줄이기 위하여 어제 퇴근길에 옥수수빵을 사고 집에서 견과류를 챙겨 왔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쉴 만큼 쉬고 나와 호텔 체크인을 했다. 비바람이 너무 심해 도저히 16kg의 캐리어 돌덩이를 이고 돌아다닐 수 없었다. 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캡슐 호텔에 도착했다. 캡슐 호텔은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한국어 지원이 잘되어 있고 시설도 우수했다. 무엇보다 캐리어와 안녕이란 사실이 기뻤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캐널 시티 였다. 지난 후쿠오카 여행에서는 캐널 시티를 들리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어 바로 찾아갔다. 그리고 그 유명한 분수쇼를 봤는데 딱히 시간을 기다리며 볼만한 스케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캐널 시티는 생각보다 시시했다.라고 생각할 때 운명처럼 '점프샾'이 나타났다. 점프샾에 들어온 순간 내가 꿈속에 있는 건지 현실 감각이 아득히 사라졌다. 내가 즐겨 보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에게 둘러 쌓여 묘한 느낌, 최고의 놀이 공원이었다. 한참 둘러보다 다리와 발이 아프기 시작해 가게를 나와 우연히 푸드코트에 발이 닿았는데 음식점들 앞에 진열된 음식 모형들이 반가웠다. 책(혼밥 자작 감행, 쇼지 사다오)에서만 보던 바로 그 식당 앞 모형이라니 일본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작가도 가게 앞 모형을 들여다보며 구경하는 것이 취미라 했는데 나 또한 모형을 보며 어떤 맛이 날지 상상해 보는 쏠쏠한 재미를 느껴와서 이 부분에서 많은 공감을 했었다.

모형만 바라보고 사 먹지는 않았다. 계획에 없던 쇼핑으로 출혈이 생겨 정신을 차리기로 했으나 배가 고팠는지 나도 모르게 세븐일레븐에 들어갔고 마침 내가 즐겨 먹었던 연어 오니기리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레몬녹차와 먹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하카타역으로 돌아와 나도 모르게 백화점에 들렀다. 하지만 이것은 계획에 있던 쇼핑이었다. 기념품으로 가족에게 나누어 줄 손수건을 샀다. 일본 백화점에서는 라이선스로 명품 브랜드의 손수건을 저렴한 가격(만원~2만 원)으로 선보여 기념품으로 제격이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 소비로 하카타역에 온 이유인 쿠마모토행 신칸센 티켓을 미리 구매했다. 조금의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서 매표원과 의사소통했기 때문에 잘 구매했는지 알 수 없어 친구에게 확인받았다.


일단 이것으로 오늘의 일정을 종료했다.


갑자기 생각난 P의 증명,

비행기 이륙 5분 전, 나는 비행기 좌석에서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마지막 시간 동안 여행자 보험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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