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habilitated or Reclaimed Locality, 용산
용산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서울의 달>, 1994년 81부작으로 방영되었다.
인터넷 포털지도에서 용산구를 검색하면, 한 가운데에 녹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헌데 그곳을 직접 찾아가 보면 지도 속 녹지는 미군기지를 가리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굳이 가보지 않아도 구글 지도를 통해 녹지가 없는, '있는 그대로의 용산구'를 확인할 수 있다. 따져보면 서울의 ‘지리적’ 중심이 용산구인데, 정작 용산의 핵이 가려져 있는 모습은 무엇을 예견하는 것일까?
여하튼 이번 회는 용산을 얘기해 봐야겠다. 용산구의 자가점유비율(자기소유의 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은 현격하게 하위권이다. 2010년 기준으로 자가점유비율 34%를 보이고 있는데, 서울평균 41%, 최고인 도봉구는 55%에 비교하면 이유를 모르겠다. 오랜 부촌 한남동, 이촌동이 있는데도 그렇다.
용산구처럼 자가점유비율 하위권 지역을 살펴보자. 중구·성동구·금천구는 공장밀집지역이다(아이러니하게도 요즘 핫한 지역인 중구(을지로)·성동구(성수동)도 공장밀집지역이다). 관악구는 고시촌이 많고, 중랑구는 일용직 비율이 높다. 신흥 하위권이 형성되고 있는 강남구도 교육을 위한 전입세대가 많아 전세율이 높다.
그러나 용산구의 하위권은 이유를 모르겠다. 이촌동 아파트지역과 한남동·이태원동 고급주택 밀집지를 제외하면 자가점유율 수치는 더 떨어질 텐데 말이다. 바꿔말해 이는 주민의 대다수가 형편에 맞춰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이런 용산구가 아이러니하게 걸어 다닐만 하다. 정주성이 떨어지는 불안감과 예술가들의 아나키스트적 시도가 맞물려서 있어서일까? 코로나 정국이 들어서기 전까진 도시문화를 즐기기에 이만큼 활발한 곳도 없었다.
이곳은 1994년 1월부터 10월까지 총 81부작으로 방영된 인기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지금과는 사뭇 다른 ‘서울 서민들의 삶’을 묘사한 배경이었다. 어떤 요소가 있었길래 25년이 지나며 서민의 삶을 상징하는 장소에서 트렌드와 문화의 총아로 변하게 한 것일까?
이곳의 도시 조직이나 토지의 분할상태, 건축시기를 보면, 전후 미군부대 인근에 삶의 터전을 만든 서민들에 의한 자생적 곳이란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계획된 흔적을 찾기 힘든 토지의 구획상태, 오래된 건물들의 모습과 규모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불안하지만 삶을 이어가려는 서민들의 의지와 쫓겨날 수 있지만 자신의 예술적 언어를 표현하고자 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의지가 같은 맥락이라 시간차를 달리한 곳에 영역화된 것일까?
서울역(만리동), 숙명여대(청파동) 인근을 제외하면, 후암동에서부터 남쪽으로 해방촌-경리단길-우사단길-보광동까지 최근의 대표적인 핫플레이스들이 줄지어 있다. 이곳은 1회에서도 언급한 보편적 필지의 영역이다. ‘길모퉁이 건축’(서울시립대 김성홍 교수의 저서)이 말하는 70평 정도의 땅에 5층 남짓의 건물이 들어설만한 공간이다.
이곳이 대중의 관심을 가진 것은 10년쯤 ‘우사단길 계단장’이 시작인 것으로 기억한다. 매월 폭등하는 작업실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홍대인근에서 합정☞망원☞상암을 넘어 이태원 단기임대로 밀려난 예술가, 공예가들이 모여서 시작한 플리마켓 말이다.
우사단길 계단은 가파르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은 뜸하지만 한강뷰가 있는 곳이다. 그 한적한 곳이 주말마다 작가, 예술가, 공예가들과 대중이 만나는 소통의 ‘장소’로 변했었다. 어딘가에서 밀려난 노마드가 용산의 새로운 로컬리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땅(필지)이 좁고 남산이라는 지형, 미군부대 주변이어서 전면재개발 타당성이 낮은 것을 여기저기 떠돌던 크레이터들이 학습되며 감각했다고도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까지 10년 남짓 모세혈관 같이 뻗어있는 걷기 좋은 골목길에 펼쳐졌던 마이너(?) 문화는 풍요에 풍요였다. 이곳의 임대료 상승했지만, 변하는 시대감각으로 예술가도 점점 소비의 영역에 자리하게 되고 경제력을 갖게 되었다. 2010년 즈음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점점 SNS를 통한 정보공유가 가속되고 문화소비가 일상인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이 예술의 범위를 넓히고 쉽게 소비가 가능한 영역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크리에이터들의 경제적인 활동은 지속성을 만들고 그 경제성이 지역성 구축을 도운 것이다.
아쉬움이 있지만 삼성(리움-꼼데가르송-띠어리 등)과 현대카드(뮤직라이브러리), 아모레퍼시픽(본사)이 지역 문화생태계와 공존을 건축적으로는 모색했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나아가 안정된 크리에이터들도 실내공간을 넘어 리모델링이나 신축 등의 건축행위로 지역성을 확보해 간다는게 너무 반갑다.
녹지로 미군부대의 존재를 눈만 가린 것처럼 로컬리티의 조건이 화려한 인테리어에 눈을 뺏겨서는 안된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반드시 건축행위를 통해 로컬리티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된다는(당장은 아니어도 계획해야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크리에이터의 공간적 안정성이 지역성을 만드는 현실이 가려져서는 안될 일이다.
돈으로 평가받는 착하고 나쁜 건물주가 아니라, 지역성을 고민하는 건물주, 자기 브랜드를 해당건물에 운영하면서 건물과 지역에 애착을 만드는 건물주, 임대자와의 파트너십을 고민하는 건물주. 이런 ‘건물주’란 단어의 인식전환은 필수고, 안정적 로컬리티는 공간 안정성을 확보한 로컬크리에이터들의 적극적인 의지에서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형성, 성장, 확대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