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의 역할
우리 집 대장님이 말씀하시길 야옹이들 꼬리는 건강함과 튼튼함의 상징이란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영양분이 끝까지, 끝까지 밀고 나아가 마침내 닿는 곳이 꼬리라는 것이다. 집사가 팔불출임을 고려하더라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과학적 근거와는 관계없이 길고 튼실한 꼬리를 가졌다는 것을 야옹이의 건강하고 튼튼한 삶의 지표로 삼기로 했다.
얼핏 꼬리만 보면 너구리로 오해하기 쉬운 김호시는 몸에 비해 굵은 꼬리를 자랑한다. 털빨을 제외하고 꼬리를 만져보면 쉽게 안다. 가느다란 탐탐이의 꼬리에 비해 호시 꼬리는 서너 배가 더 굵다. 꼬리를 수직으로 빳빳하게 세워서 이리저리 다니는 탐탐이와는 달리, 호시는 꼬리가 너무 무거운 나머지 수직으로 올라간 끝부분이 다시 내려와 자기 등에 닿아버리고 만다.
한때 창문에 해먹이 달려 있던 시절, 적당한 햇빛과 까슬한 촉감 그리고 유리창에 몸이 닿을 때의 시원함 때문인지 해먹 위는 야옹이들의 핫플레이스였다. 두 야옹이가 해먹 위에 올라가면 해먹과 유리창 사이 틈으로 꼬리가 삐져나오곤 했는데 집사는 그 장면을 무척 좋아했다.
가끔 두 야옹이 모두 해먹 위로 올라가는 날이면 두 개의 꼬리가 앞서 언급한 '틈' 사이로 삐져나왔다. 야옹이들을 등빡빡이로 만들 때 호시는 자신의 시그니처인 너구리 꼬리를 남겨두었지만, 탐탐이는 끝부분만 남겨 야자수 꼬리를 만들곤 했다.
빠지는 털을 감당 못 할 때가 되면 대장님과 집사는 이발기를 들고 야옹이들의 등 털을 빡빡 민다.
"다 같이 살아야 하니까"
비정기적으로 누구의 꼬리가 더 멋진지 시합이 열린다. 야자수 꼬리와 너구리 꼬리의 승부다. 호시와 탐탐이는 꼬리꼬리한 사이다.
야옹이들의 꼬리는 하나의 언어라고 할 만큼 많은 것을 표현한다. 관심, 경계, 귀찮음, 흥분, 화남 등의 감정을 드러낸다. 한 몸처럼 움직이기도 하고, 마치 두 개의 의식이 있는 것처럼 따로따로 움직이기도 한다.
왼쪽 사진은 탐탐이가 기분이 아주 좋은 나머지 침대에서 해먹 위로 한달음에 점프해 발톱을 갈고 있는 모습이다. 꼬리 털이 펑- 하고 터진 상태다. 오른쪽 사진은 호시가 탐탐이와 장난 같은 싸움을 하고 화가 나서 구석에 엎드렸을 때 모습이다. 순둥이 호시 묘생에서 꼬리가 가장 부풀었던 순간이라 집사에게는 무척 귀한 사진이다.
지금부터는 꼬리의 특수한 용도를 알아보도록 하자. 호시의 꼬리는 직선과 곡선을 표현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중력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중력을 거스르려는 두 가지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래 맞다. 꿈보다 해몽이다.
야옹이들은 타고난 유연성을 이용해 자기 몸을 나침반으로 사용한다. 뒷다리는 수직 위로 올라가 있는데 꼬리는 아래로 내려가 있고, 동시에 앞다리는 옆으로 뻗을 수도 있다. 단 정확성은 담보하지 못하므로 재미로만 이용해야 한다.
수직 스크래처 위에서 충분한 일광욕을 마치고 내려갈 때 하차 신호로 사용하기도 한다. 언제 아래로 내려갈지 모르는 까닭에 어마어마한 인내심을 갖고 면밀한 관찰과 순발력을 통해서만 얻게 되는 귀한 장면이다.
'저길 어떻게 들어가지?' 생각이 들 정도로 좁은 공간에 가끔 기어들어 갈 때가 있다. 상상력의 범위를 벗어나기에 집사는 감히 찾아볼 생각조차도 못 하는 곳이다. 불러도 나타나지 않고 한참을 찾아도 야옹이가 안 보이면 집사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기 몸만 숨길 줄 알지 거대 꼬리는 숨길 줄 모르는 김호시 덕분에 집사의 불안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불안한 자세로 호작질할 때 균형을 잡기 위해서 꼬리를 사용한다. 앞발을 손처럼 사용하려고 이족보행을 할 때 꼬리는 훌륭한 균형추 구실을 한다.
호시와 집사는 가끔 게임을 하곤 한다. 이번 종목은 '제로'다.
"3!!!"
앗싸! 집사의 승리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는 아무 관계도 없지만 야옹이들의 꼬리는 불처럼 타오르거나 꽃처럼 활짝 필 때가 있다. 참고로 오른쪽 사진에서 탐이의 얼굴이 있는 곳은 호시 밥그릇이다.
집사가 밥을 줄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호시와는 달리 탐탐이는 정해진 밥때를 거르면 분명하고 확고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한다. 집사 밥은 건너뛰어도 탐탐이 밥은 거르면 안 된다. 탐탐이 꼬리꽃은 밥때가 되면 활짝 핀다.
야옹이들을 기록한 수많은 사진이 있다. 대부분 기록으로 존재하는 사진이지만 가끔 집사의 다른 기억이나 경험들과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장면'들이 있다. 이 장면은 집사가 매우 좋아하는 호시탐탐의 초기 사진이다. 시간이 느긋하게 흘러가는 듯한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집사가 좋아하는 노래인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 떠오른다. 들국화와 어떤 날의 앨범에 실려 있다.
호시 꼬리에는 햇빛 떨어지고, 집사 눈에는 꿀 떨어지고...
그렇다. 보는 대로다. 야옹이의 꼬리에는 집사 눈에서 꿀이 떨어지게 하는 기능도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