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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Apr 08. 2023

[동시필사] 시인 '김용택 시' 따라쓰기

  <동시 왼손 필사 1일차>

‘동시’하면 ‘어린 아이들이 읽는’, ‘어릴 적 읽었던’것을 연상한다. 어른인 나는 동시도 좋아하고 동시같은 그림책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마음에 각이 서고, 내가 사람으로 힘들 때, 상황이 힘들 때 동시 한 편을 읽고 마음을 잡기도 한다.

  2020년 코로나 창궐로 힘든 와중에 사람에게 치여 마음에 철옹을 세워 나를 지키기 위해 애썼다. 처음에는 사람을 비난했고, 사람이 미워 그 주변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부정적 애씀은 오히려 나를 옭아매고 자유롭지 못하게 했었다. 오히려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터진 둑 처럼 쏟아지는 고통은 마음의 공허를 가져왔다. 이 때 다른 방법으로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필사였다.


  5월 생인 내게 주는 선물로 김종원 작가의 신작 ‘인문학적 성장을 위한 8개의 질문’을 통필사를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흩어진 내 마음을 잡기 위해 1시간~2시간 가량 소제목을 그 날 그날 필사를 하기 시작했다. 소제목 마다 같은 분량의 페이지가 아니었다. 적은 날은 습관처럼 했는데 책을 펼치자 마자 놀래서 이틀로 나눠쓸까를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손으로 필사를 했다. 5월 20일에 시작한 필사는 8월 3일에 책 한권의 필사, 통필사를 마쳤다.


  그때의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생계를 위협받음과 동시에 인격적 모독의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구한 책 한 권 필사는 아침을 여는 창문과도 같았고, 오염된 공기의 흡입을 막는화생방용 방독면 같았다. 필사를 하면서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나를 아끼게 되었다. 인위적으로 지키기 위한 높디 높은 인공 옹벽은 풀과 나무가 자라고 누군가 거닐 수 있는 나즈막한 담벼락이 되어있었다. 이런 자연스러움이 내 무기인 것을 왜 그리 잃지 않기 위해 난리 부르스를 쳤는지.


  두꺼운 책 한 권의 필사 재미는 평소 그림책을 즐겨 읽는 내게 동시 필사로 마음이 옮겨갔다. 누구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쓴 필사였고, 나를 지키기 위해 쓴 필사에서 몽글해진 나, 예전의 나로 옮겨 온 나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한 동시필사로 바뀌었다. 평소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모아 필사하기 좋게 출간된 ‘마음이 예뻐지는 윤동주 동시 따라쓰기’책을 보자마자 따라쓰기 시작했다.  앞서 썼던 필사에 비하면 동시 필사는 짧아도 너무 짧다. 짧지만 굵직한 깨달음을 주는 동시를 그냥 필사하면 밋밋하고 단조로울 것 같았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연필을 사용해서 왼손으로 따라쓰면 좋겠다 싶었다.  1분도 걸리지 않을 짧디 짧은 동시는 5분이 걸리고, 10분도 걸렸다. 지우개로 썼다 지웠다 하면서 왼손으로 꾹꾹 눌러쓰는 재미가 있다. 유치한 생각은 뒤로, 아이같이 맑은 마음이 올라와 좋았다. 쓰고나서 보면 한 줄에 고르게 있지 않고 오르내린 삐툴한 글씨들이 제법 귀엽다.


  한 여름의 아침을 동시필사로 시작한 날로부터 52일차 되던 때 왼손 동시필사는 마쳤다. 이 때의 기분은 앞서 통필사 헀던 것과 다른 감정이 들었다. 누구를 이기기 위해, 누구를 더 미워하기 위해, 나를 지키고 더 단단하게 가두기 위해 쓴 필사에서 감사하기 위해, 나를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위해 쓰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을 발견한 나는 필사 예찬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 뒤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고 마음에 평화가 오면서 필사는 하지 않았다.


  코로나도 끝난 2023년 요즘, 내 마음은 미친 갱년기처럼 거의 두 달은 업다운이 심했다. 입은 웃고는 있지만 마음은 편하게 웃지 못하는 내가 되었었다. 완경 이후 3년이 지난 이 시점에 나타난 호르몬의 흐름은 평정심이 중요한 내게 이상증후로 나타나 곤욕을 치렀다. 신기하게도 딱 두 달이 지난 이 시점에는 거의 예전의 나로 돌아왔다. 거의 80% 정도로 돌아왔다. 아직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나 또한 남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몇 달 전의 나로 돌아와 무척 기쁘고 반갑다.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고 같이 공감하려면 내가 단단하면서 부드러워져야한다. 이런 나를 다시 다지게 도와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간단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동시 필사를 다시 시작했다. 오늘이 1일이다. 이번에  ‘마음에 꼭꼭 김용택이 사랑한 동시 따라쓰기’로 말랑말랑하게 가려고 한다. 눈물의 감정에 호소하는 말랑함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달래주고 안아줄 손수건을 건네줄 수 있는 말랑함이다.


김용택 시인이 말 한 글에 공감한다.

'시는 마음입니다.
시는 느낌입니다.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감동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힘들고 고단할 때, 남을 미워하지 않고 나를 위하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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