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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Cho Oct 08. 2018

불혹의 신입사원의 어느 주말근무

KPOP 콘서트 티켓 배부의 날 - ‘나도 한국어해요’

오늘로서 입사한지 만 10개월에서 닷새가 모자른 시간이 흘렀다. 오리털 패딩입던 계절에 입사했는데 100여년 만의 기록적 무더위도 지나고 다시 찬바람 부는 계절이 돌아왔다.

시간 참 빠르다.

하루는 길어도 일년은 금방간다는 말이 정말인 것 같다.


금요일이던 어제 오전, J대리님께서 내일 삼성동에서 이벤트 당첨자들에게 KPOP 콘서트 티켓을 배부해야하는데 올 수 있냐고 물으셔서 ‘제가 필요하면 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오라하셨다. 원하면 티켓 배부 후에 콘서트도 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 KPOP을 사랑하는 다른 많은 외국인 팬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드리기 위해(사실은 주말에 좀 쉬고 싶었기에...하하)  그것은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토요일 낮 12시 반.

부랴부랴 코엑스 아티움 근처에 티켓 배부 데스크를 설치하는데 이미 수십명의 외국인들이 빗속에 줄을 서 있었다. 티켓 배부를 위해 주말 근무 나온 직원들은 나까지 아홉명. 각자 무슨 일을 할지 분배하는데, 내게는 줄 서 있는 외국인들에게 어떤 어권의 사이트 혹은 SNS 채널을 통해 이벤트에 응모했는지 알아서 해당 어권 티켓 배부자에게 안내를 하는 임무가 맡겨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언어는 영어와 한국어 뿐이라 일반적으로 더 넓게 통용된다 여겨지는 영어로 ‘which language do you speak?’ 하고 질문을 했는데 정말 많은 외국인들이 ‘저 한국말해요.’ , ‘중국어 사이트에서 응모 했어요.’ 등등 한국어로 내게 대답을 해왔다. 이런저런 많은 사람들을 안내하면서 오히려 영어로 질문을 하는 것이 상황에 맞지 않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티켓을 배부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출신 국가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미국,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 독일, 이스라엘까지 다양했고 그들의 언어도 다양했지만 오히려 이 다양한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즐긴다는 것이었기에 세계 공용어로 여겨지는 영어가 아닌 한국어를 하는 것이 더 적절하고 이치에 맞게 느껴졌다.

그래서 영어를 썼다 한국어를 썼다 왔다갔다 했는데 티켓을 받는 외국인 분들은 오히려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즐기고 기뻐하는 듯했다.


이 외국인 분들을 보면서 과거 학교에서 책으로만 배우던 영어로 영어권 사람들과 처음 대화를 시도했을때 의사소통이 된다는 걸 경험하고 기분이 좋았던 몇십년 전의 내 모습이 오버랩됐다.


근데 그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나는 몇 십년 만에 완전 다른 입장이 되었고 한국어의 입장도 참 달라졌구나.... 새삼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평생 언어를 공부하고 10년 넘게 언어로 밥벌어 먹고 살아오며 겪었던 시간을 영어로 덕 본 시간이라고 한다면 웬지 앞으로는 한국어로 덕 보는 시간이 올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콘서트 입장 대기 1시간 전까지 모든 티켓 배부와 안내를 마치고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했다.


이렇게 불혹의 신입사원의 어느 주말이 끝나가고 있었다.


KPOP 콘서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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