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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Cho Oct 11. 2018

불혹의 신입사원이 된 그녀의 사연

이직의 역사 - 1. 정부에서 외신으로

내가 B 통신, 정확히는 B 기업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2년 가량의 경력을 쌓은 뒤인 2008년이었다. 처음부터 뉴스팀에서 일한 것은 아니고, 로컬라이제이션팀에서 번역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B 기업은 일반인들에겐 뉴스 통신사(외신)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금융정보 제공이 핵심 사업이다. 금융정보 제공과 더불어 이에 필요한 터미널을 대여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사실 구조적으로 보면 뉴스는 이 터미널에서 금융정보와 함께 제공되는 정보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뉴스라는 미디어의 고객접점이 더 광범하기에 일반인들에게 금융정보 제공사 보다는 뉴스 통신사로 이미지가 각인된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11년전인 2007년 가을, B 기업에 지원하던 때가 기억난다. 당시 나는 정부 모 부처에서 영문 에디터로 일하고 있었다.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지 얼마 안되는 초짜에겐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중요한 사안에 대한 통역과 번역 업무가 주어져서 너무나도 값진 경험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7년은 노무현 행정부 후기로 한국이 한창 세계 각국과 양자 무역협정을 맺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정부 실무진들과 함께 한-미 FTA, 한-EU FTA 등의 무역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 현장을 다니며 통번역을 하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상세하게 하겠다.)


사람보다 소가 더 많이 산다는 미국 몬태나주에서 열렸던 한-미 FTA 협상(몇차 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배너 사진



한-EU FTA 협상시 EU측 협상장소는 늘 EU 행정부가 있는 벨기에의 브뤼셀이었다. 덕분에 브뤼셀만 3번인가를 출장갔던 것 같다.


그러나 통번역사로서 그렇게 귀한 경험을 쌓고 있는 중에도 뭔가 내가 속한 조직에 그다지 소속감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 때는 전문 업무를 맡고 있어도 비정규 계약직이라는 나의 고용 신분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계약직 영문 에디터 외에 대부분은 그 부처에서 잔뼈 굵은 정규직 공무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좀 더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 출장을 좀 덜 다니는 곳으로 이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출장을 덜 다니는 곳을 원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좀 의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 때 나의 출장 스케줄은 한 주는 미국, 그 다음주는 한국 그리고 그 다음주는 유럽 식으로 매주 시간대(time zone)가 바뀌기도 했다. 그 같은 출장이 처음에는 일하는 것인데도 신이 나고, 나라 일이라 생각돼서 뿌듯한 맘이 들지만, 계속해서 그런 일정으로 일하게 되면 먼저 육체적으로 지치고 그 다음에는 주말이 사라져 친구도 만나기 힘들고 연애도 어려워져서 지속하기 어렵다. 게다가 통역사는 굳이 협상이 아니더라도 일행 중 누구라도 말을 시작하면 바로 일이 시작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출장 기간 내내 쉼없이 일을 하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일반 출장자들 보다 더 피로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직을 꾀하며 구직 사이트를 기웃거리다 문득 대학원생 시절 B 기업의 경력직 번역사 구인 공고를 본 기억이 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B 기업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3년 전에 봤던 동일한 포지션에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문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리고는 며칠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과천(당시 정부 청사는 과천에 있었다)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출퇴근길이 길어 지하철에서 앉아 졸다, 멍때리다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원한 회사에서 연락이 온걸까?’ 두렵기도 설레기도 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Is this Anna Cho?”

“Yes, this is she.”


B 기업이었다. 전화를 주신 분은 몇마디 질문을 하시더니 번역시험을 보러 언제 어디로 오라고 하셨다.


뒤돌아 보면 내 30대를 가득 채울 B 통신과의 인연이 그렇게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다.


B 기업에 입사해서 처음 썼던 모니터와 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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