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늘도 못 알아듣는 건데
"What did you say where..?"
콜을 하는 와중에 영국인 S가 눈을 실눈을 뜨고 물어본다. 컴을 앞으로 당겨 보고 있는지 구글 미트 화면에는 그의 커진 얼굴과 표정에 짐짓 진지함이 사무친다.
아니, 저기요, 집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무슨 말씀하시는 거죠? 저는 어디 장소 말한 적 없는데요.
휴우, 자, 괜찮아, 당황하지 말자. 이럴 땐 다시 눈을 똥그랗게 크게 뜨고 대범하게, 배에 힘을 넣고 아주 크게-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다시 한번, 반복.
휴우, 됐다. 오늘의 전략이 먹혔다.
사실 매번 콜마다 이 모양이다. 나는 콜에서 몇 마디 하지도 않는데, 매번 S에게 듣는 말 중 하나는 "What did you say..?"라거나, "I'm sorry, I'm not following you." 처음에는 너무 좌절하다가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전략을 세웠고, 먹혔다. (꺄아!)
아니, '더 크게, 천천히, 또박또박'이 한 달 만에 도출한 전략이라니,
써 놓고 보니 웃기기도 한다마는, 진짜 이것만큼 효과가 있는 방법이 없다.
진짜다!! 그냥 웃으면서 크게, 천천히, 또박또박. 진짜 이게 절반 이상이다. 유창성도, 다양성도, 정확성도 아니고, 그냥 크게 또박또박 말하는 이것이야말로 세컨드 랭귀지를 할 때 핵심이라니. 다소 어이없지만, 이게 제2 외국어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난 프로페셔널인데, 초등학생처럼 또는 우스꽝스럽게 보일까 봐 걱정해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밀어붙여야만 한다... 자, 봐봐 다시 한번 말할 테니까 잘 들어!!!라고. 마치 못 알아들은 너의 잘못인 것처럼...
크크, 오늘도 S가 나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는 건 일단 재껴두고,
아래 말만 마음에 두기로 한다.
어디, 다음에도, 또 못 알아듣기만 해 봐.
그럼 그때도 또빡또빡 천천히 말해주겠어...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