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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안의연구자 Feb 09. 2022

취생부인 뎐 #1


썬(배우자)이 술을 먹는다 하니 생각나는 일. 이 일은 기억해 둘 가치가 있다.

때는 결혼을 앞두고 있던 어느 겨울날.

난 술을 먹고 성수동 어딘가에서 잤고 역시 어디선가 술을 먹다 늦은 썬은 살림이 조금씩 구비되고 있던 신혼집(신림동)에서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연락을 한 썬,

“나 방 안에 갇혔어. 빨리 와봐.”

이게 무슨 소린가. 셀프 감금이라니.


당시 계약했던 그 집은 안방 문이 고장나서 닫으면 밖에서만 열 수 있었는데 술기운으로 정신 없던 썬이 그냥 닫아버리고 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방 안에 있는 사람을 대신해 방 문을 열어주기 위해 성수동에서 신림동까지 가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방문을.

 

2호선을 타고 반 바퀴를 돌아 신림동으로 가니 잠긴 건 방문만이 아니었다. 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지만 그 정신에도 걸어둔 현관문 걸쇠가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현관문에 붙은 광고 스티커 속 열쇠 가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냥 실톱으로 자르세요.”


실톱으로 자르라고? 난 전문가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 길모퉁이에 있는 철물점에서 실톱을 사와 열심히 걸쇠를 자르고 있는데, 같은 2층에 사시던 허리가 꽤나 굽은 할머니가 와서 한 마디 한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살면 못 써.”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이해를 못하고 실톱질에 계속 집중하려는데 할머니가 어디선가 아주머니 한 명 - 나중에 알고보니 1층에 사시는 분이었다- 을 데려 왔다. 아주머니가 묻는다.


“누구세요?”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내가 대범하게도 대낮에, 한가하게 그리고 뭔가 짠하게 실톱질을 하는 빈집털이라니. 아직 이사를 하지 않았을 뿐 이 집에 살기로 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쉽게 믿어주질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집을 계약했다는 사람이 집에 들어가려고 실톱질을 한다는 게, 내가 들어도 말이 안 될 말이었다. 그렇게 일이 꼬이던 중 계약할 때 만난 적이 있는 집주인이 내려왔다. 사태를 해결해 주리라 생각했던 집주인이 말했다.


“누구세요?”

“네? 저 계약한 사람인데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


그 집주인은 내가 이사를 한 뒤에도 길에서 인사를 하면, 누구.. 하는 반응을 보여

나를 위축시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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