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온라인 서점 투어 ^^7
출판사에서는 온라인 서점을 일컬어 흔히 '4대 서점'이라고 부르는데 4대 서점이란 말 그대로 국내에서 가장 큰 4개의 서점, yes24, 알라딘, 교보문고, 인터파크를 가리킨다. (최근에는 쿠팡이 여기에 합세하고 있다)
책 출간 전후 편집자가 사무실 밖을 종횡무진 누비며 다녀야 할 곳이 산더미 같은데, 그중 빠뜨릴 수 없는 곳이 바로 이 온라인 서점이다. 물론 영업자가 있는 큰 출판사라면 영업자가 온오프라인 서점을 모두 다니며 책을 소개해주겠지만, 영업자가 없는 소규모 출판사의 경우 그 책을 가장 속속들이 알고 있는 편집자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전국방방곡곡을 돌며 모든 오프라인 서점을 다닐 순 없으니 전국 곳곳에서 오프라인 서점까지 운영하고 있는 대형 온라인 서점을 찾아가 상품 판매를 기획하는 사람, 즉 MD를 만난다.
편집자가 온라인 서점 MD를 만나 하는 일은 "이런 책이 나왔어요!"라는 걸 알리는 것이다. 즉, 여러분이 책을 사기 위해 온라인 서점에 제목을 검색했을 때 책 정보가 나오고 구매하기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것은 편집자가 MD를 통해 서점 측에 새 책이 나왔음을 알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에 훤히 공개되어 있는 MD 전화번호나 이메일로 책 나왔다는 무미건조한 메시지만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업무 시간 중 거진 하루를 짜내어 서울 방방 곡곡에 드래곤볼처럼 흩어진 온라인 서점을 투어 하는 이유는 "이런 책이 나왔어요!"에다가 "어때요?"를 덧붙이기 위해서다.
나는 콧구멍에 바람 넣는 걸 무척이나 좋아해서 사무실 문밖으로 나갈 일만 다리 떨며 기다리는 편이지만, 온라인 서점 MD를 만나러 나서야 하는 날이면 또 다른 의미로 다리를 떨어야만 했다.
햇병아리 편집자 시절, 과장님을 따라 처음 모 온라인 서점 MD를 만나러 갔을 때 받은 첫인상은 이 감탄사 한 문장이었다.
"아~ 이게 을이라는 거구나! ^^7"
*주의
온라인 서점 MD는 책 분야 만큼 인원 수가 많으며 개개인에 따라 다르고 온라인 서점에 따라 다릅니다.
온라인 서점 MD와의 미팅 시스템부터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가정생활 분야 MD는 한 명이고 이번 달에 가정생활 분야로 책을 출간한 출판사는 100개쯤 된다고 하자. 그중 약 30~50명의 편집자(또는 영업자)가 MD에게 우리 책 예쁘게 봐달라 또는 유사 분야의 책 시장 분위기는 어떠냐 또는 책 이벤트나 마케팅을 하려 한다 등등 여러 이유로 MD를 찾아온다. 그러면 하루종일 출판사만 만날 수도 없고 시간을 딱딱 정해놓고 배분할 수도 없으니 일종의 선착순 시스템을 만들었다.
쉽게 말하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만 미팅합니다! 먼저 오면 먼저 미팅 가능"
시스템이다.
마케팅에 쏟아 부을 시간과 자산이 충분한 출판사라면 MD도 사람인지라 자주 보는 사람, 자주 광고를 사주는 사람이 조금 더 좋을 텐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속한 출판사는 지금까지 굳이 MD를 거치지 않고도 책을 팔아왔던 곳이라 처음 MD를 만났을 때 "아, 내가 을이구나"란 걸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도 PTSD를 불러 일으키는 그날은 화창한 봄날. 역대급 촉박한 미팅을 가진 날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온라인 서점은 MD와 미팅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온라인 서점마다 '너희가 1시부터 3시하면 우리는 3시부터 5시를 할게'가 아니라 '우린 1시부터 3시' '난 2시부터 4시' '어? 나도 2시부터 4시.' 이렇게 되어 있어서 3-4시간만에 서울 랜드마크를 순회해야 하는 퀘스트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칫하면 서점 한 곳은 내일을 기약해야 하거나, 마지막 서점은 미팅 시간 마감을 앞두고 촉박하게 도착하기 일쑤다. 그리고 그날은 후자의 상황이 고용 계약서 잉크조차 덜 마른 내게 닥쳤다.
출간될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달리며 MD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팅 마감 시간 1분 전쯤에 도착할 것 같은데 조금 초과해서 미팅 가능할까요?"라며 가쁜 숨을 내쉬는 내게 "아니요"라는 간결한 답이 돌아왔다. 안 된다는 뜻이다. 고등학교 때 체육 선생님이 100m 달리기를 하는 내 뒤통수에 대고 "풍경 감상하냐!!"라고 소리치시던 게 떠올랐다. 그 아름답다던 여의도 풍경도 제치고 내달려 마감 시간 3분 전에 MD에게 책을 내밀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내가 저자와 11개월간 씨름하며 만든 책을 3초만에 영영사전 넘기듯 넘겨버리고 탁 소리나게 책을 덮었다. 그리고 시크하게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할 말 있으면 빨리 하세요. 2분 남았네요."
물론 모든 MD가 이런 식은 아니다. 어느 MD는 미팅을 요청한 출판사에서 나온 책까지 사전에 알아보고 어떤 분야의 책을 주로 내는지, 편집자가 앞으로 또 준비하고 있는 책은 어떤 게 있는지 양껏 관심을 주기도 한다. 또 어느 MD는 책을 꼼꼼히 보며 편집자가 설명을 하기도 전에 어떤 책인지 파악하고 어떤 식으로 판매할 것인지, 온라인 서점과 어떤 부분을 협업할 예정인지 등등 판매 부분에 있어서 도움이 될 답변을 요구하기도 한다.
편집자는 이 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자 가장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원고를 읽고 또 읽고, 저자와 긴밀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객관적인 눈을 잃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쌤 무적권무죄!'라는 깊은 우물에 갇힌다. 이때 적극적인 MD를 만나면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독자들의 요구, 요즘 독자들이 원하는 것, 유사 분야 책을 내는 출판사들의 행보, 마케팅 방법 등 여러 관점에서 이 책을 보게 된다.
MD도 결국 출판사와 목적은 같다. 책을 팔아야 한다. 다만, 출판사는 '우리 책'을 팔아야 하고 MD는 '잘 팔리는 책'을 팔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칫 온라인 서점은 '좋은 책'을 발견하는 곳이 아니라 '요즘 잘 팔리는 책'을 발견하는 곳에서 그치고 만다.
말 나온 김에 울분 좀 터뜨리자면 오프라인 서점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는 책은 베스트셀러고 그 다음 눈에 띄는 것은 돈 주고 광고를 산 책들이다. 책을 사려고 마음 먹고 들렀는데 눈이 닿는 곳마다 '베스트셀러' 딱지뿐이다. 내가 재밌을 것 같아서 이 책을 산 것 같지만, 사실 그 책이 내 눈에 띄었기 때문에 샀을 확률이 높다. "발각질 제거 모임 베스트셀러 16주", "나사에서 인정한 베스트 시집" "식약처에서 인증한 SF 베스트셀러" 이런 딱지에 시선을 빼앗기고 당당하게 표지를 보이며 누워 있는 그들의 위용에 압도되고 만 것이다.
책이 잘된 이유는 몇 개 없는데 안 된 이유는 수백 가지라던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 눈에 띄지 못한 책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제가 대중에게 전달되지 못했거나, 시기가 맞지 않았거나 편집이 별로였거나 표지가 별로였거나 제목이 별로였거나 카피가 별로였거나 폰트가 별로였거나 종이가 별로였거나 사주가 별로였거나...
그럼에도 p;ㅠ을 쏟아 부어 만든,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이 책이 노출조차 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은 너무나도 무겁다. 어딘가엔 이 책을 필요로 하는 독자님덜이 계실 텐데 언제까지고 이 책에 매달릴 처지가 못돼 관짝에 들어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 그렇다. 이 글은 우리 쌤이 쓴 책 X좋은데 왜 몰라 주냐는 울분에서 시작되었다.
쌤덜... 많이 못 팔아서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