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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빵 Aug 20. 2023

[도서 리뷰] 일의 기쁨과 슬픔

이 또한 지나갈 현타의 순간들 모음집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 창비 | 2019.10.

내가 지금 읽는 게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헷갈렸다. 브런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장인들의 소소하지만 특별하고 낯설지만 공감가는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이럴 수 있다고? 싶으면서 이보다 더한 실화도 있었지 싶은 그런 이야기들.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 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단편 <잘 살겠습니다> 


이 책은 가볍고 산뜻하다. 연차를 짜내 떠나는 여행 길에서 1-2시간 가볍게 읽고 덮는 딱 그 정도의 책이다. 무겁게 남는 것도 없고 인사이트를 얻을 만한 것도 없다. 다만 덮고 나면 문득 떠오르는, 잘 살고 있는지 근황이 궁금한 적도 없었던 누군가가 떠오른다. 한때 가까운 직장 동료였을 수도 있고, 뒤통수만 보면 손바닥이 올라가던 상사일 수도 있고, 일을 하는 동안엔 질리도록 깐깐했지만 지나고 보니 덕분에 배우게 한 협업사 관계자일 수도. 


드라마나 영화엔 영웅도 있고 악당도 있지만 현실에서 웬만해선 그들을 마주치기가 어렵다. 뒤통수를 찰지게 때리고 싶던 악의 씨앗 같던 상사도 어버이날 아들이 서툴게 쓴 편지를 다음 해 어버이날이 지나도록 프로필 사진으로 해 두는 아들 바보였고, 사사건건 의견이 부딪혀서 서로 눈엣가시 같던 동기도 퇴근 후엔 맥주 한 캔에 게임 하는 게 인생의 낙인 내 또래에 불과했다.

 

현실엔 악당도 영웅도 없고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일하는 동료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걸 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나서야 희미하게 눈치챘지만, 이 책은 무척 당연하다는 듯이 덤덤하게 흘린다. 8편의 단편에 월급을 회사 포인트로 받아서 중고거래로 환전하기, 이해 안 되게 답답한 직장 동료를 보며 혼자 셰도 복싱하기, 좋아하던 전 직장 동료를 따라 일본까지 가서 차이기 등 별별 사건이 다 있지만, 이 중에서도 내 기억에 유독 남은 장면은, 아마 굉장히 별것 아닌 장면일 텐데, 평소 ‘저 인간 성격 좀 짜증나네'라고 느끼던 직장 동료에게 그가 좋아한다던 레고를 선물로 주던 장면이다. 그 레고를 보며 해사하게 웃을 그 동료 얼굴을 상상하니 한 순간에 별것 아닌 미움은 싹 가시고 동질감과 내적 친밀감이 물밀듯이 밀려오던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 순간이 지나고 또 의견이 부딪치면 저 조동이를 한 대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 장면을 좀 더 멀리서 볼 수 있다는 데서 스스로가 편해진다. 우리는 내일도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동안 꽤 많은 사람이 스쳐갔고 책을 덮으며 ‘한번 연락이나 해볼까' 하던 마음도 덮었다. 잘 살겠지. 어느 날 문득 청첩장을 건네겠다고 연락이 오면 나를 떠올린 데에 대한 고마움과 까닭모를 반가움에 돌려받지 못할 5만원을 부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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