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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조한 글쓰기 Jan 29. 2022

내가 500만 원을 버리는 이유

상가 임대 종료 후, 임대인과의 원상복구 관련한 싸움

2020년 3월, 상가를 임대했다. 코로나 악재가 겹쳐 휘청였고, 결국 2년간 손해만 보고 접기로 결정했다. 특히 이 가게를 맞아서 운영하셨던 어머니의 맘고생이 심하셨다. 그래서 더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 판단했다.


상가 주인에게 작년 12월,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작년 6월부터 가게를 부동산에 내놨고 임대인에게 통보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이는 새로운 뉴스는 아니었다.


우리 가게는 임대하면서 여러 곳을 손봐야 했다. 전에 시설이 워낙 낡았었기 때문에, 거의 다 손봐야만 했다. 가장 큰 공사는 천장 공사였다. 요즘 트렌드와 달리 천장이 낮게 막혀있어, 공간이 전체적으로 좁아 보이고 답답했다. 그래서 천장 오픈 공사와 시설 정비에 공을 들였다.


임대를 마치면, 임차인은 원상복구의 의무가 있다. 이 원상복구는 이전 임차 컨디션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임대인과의 조율을 통해, 어떤 수준까지 복구할지 결정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임대인은 처음부터 갑질이 심했다. 복구의 조율을 거부했으며, 무작정 상가 입주 시의 상태로 원상 복구를 원했다. 나는 특히 천장 공사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굳이 돈을 들여 나빠질 이유가 없었는데 말이다.


원상복구에 대출까지 받아야 한다며, 읍소도 해봤다. 굳이 필요없는 비용이 많이 나오는 방향으로 진행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월세 한달치를 더 드릴테니, 불필요한 공사를 줄이자고 설득했다.


임대인의 태도는 무례했다. 본인은 그런 거 모르겠고, 귀찮으니 일단 해놔라는 말투였다. 오픈 천장도 다음 임차인이 누가 올지 모르니, 일단 막아놓으라고 우겼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굳이 원하니 그 부분도 공사 견적에 포함했다.


복구공사에만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 나왔다. 망해서 나가는 사람에게 잔인한 현실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갑자기 임대인이 복구에 대해 협의를 하자며, 미팅을 요청한 것이다.


만난 자리에서 어이없는 말을 꺼냈다. 자기도 견적서를 받았는데, 이 금액을 자기한테 현금으로 주고 그냥 나가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임차인이 혹시 현재 시설을 쓸지 모르니, 굳이 처음부터 공사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이에 다음 임차인의 철거 부분이 확정되면, 그 부분에 대해서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공사 비용을 먼저 지급하고 공사를 하나도 안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임대인은 거부했다. 그리고 인심 쓰듯 85% 수준만 내고 나가라는 것이었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완성되었다. 임대인은 일부러 공사 규모를 키운 것이었다. 그래야 마지막에 뜯는 돈의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망해서 나가는 사람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그런데 원상복구는 해야 되니, 보통은 임대인의 요구를 들어줬을 것이다.


상대방의 패를 알았으니, 이제 대응하기 시작했다. 우선 원상복구를 빡세게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안 해도 되는 구조 공사까지 원상복구 범위에 넣었다. 왜냐하면 워낙 예전 건물이라 입주 기준의 구조는 임대인에게 불리했다. 내 입장에서도 복구를 안 했다가 괜히 트집 잡혀 보증금을 못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결정은 임대인과 관리소장에 통보했다. 대놓고 짬짜미였던 둘은 당황했다. 왜냐하면 최소 500만 원 이상, 임차인의 비용이 증가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인테리어에 1500만 원을 내는 결정과 임대인에게 1000만 원을 내는 경우 중 선택이었다. 보통은 임대인에게 할인해달라고 읍소할 것이다.


이런 결정은 임대인과 관리소장 모두 피해가 간다. 우선 상가 내 공사가 커지기 때문에, 주변 상가의 민원이 발생한다. 그리고 공사로 인해, 신규 임대가 나가기 어렵다.


만약 임대인이 현재 시설을 기준으로 숨겨진 후보 임차인이 있었다면, 이러한 결정은 당황스러운 것이다. 그들의 계획대로 그냥 돈 주고 나갔다면, 돈도 벌고 시설도 그냥 쓰는 1석 2조였을 것이다.


500만 원은 정말 아까운 돈이다. 그러나 내가 그동안 미친 듯이 돈을 벌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었다. 다시는 돈 때문에 억울하고 싶지 않았다.


이후 갑자기 관리소장에게 전화가 왔다. 임대인이 편의(?) 봐주니, 협의하고 나가는  어떻겠냐는 것이다. 그것이 임차인인 나에게도  아끼고 좋은  아니냐고 설득했다. 그는 관리소장이 아니라, 브로커에 가까웠다.


언제부터 임대인이 나의 비용에 신경썼단 말인가? 불과 이틀전만해도 월세 한달치를 더 주겠다는 말도, 대출받아 공사해야한다는 말도 철저히 무시되었었다. 없어보이니 더욱 갑질해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임대인에게 주느니 인테리어에 주겠습니다.
처음부터 법대로를 강조했으니,
저도 법대로 할 것입니다.
추가 비용 500만 원?..
그냥 불태워 버리는 한이 있어도,
망한 사람 삥뜯는 사람에게 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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