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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나남편 Jan 02. 2020

라트비아 시굴다 여행

라트비아 리가 근교 여행

#시굴다 #라트비아여행 #리가근교투어 #Sigulda


시굴도 도착! Sigulda

리가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는 1시간 남짓 달려 우리를 시굴다 기차역에 내려준다. 말끔히 칠해진 주황색 기차역의 모습이 리가와는 사뭇 다른 깨끗한 느낌을 풍긴다. 본격적인 시굴다 여행에 앞서 정보를 얻기 위해 기차역으로 들어갔다. 역사에는 푸른 잔디가 옆으로 철도가 곧게 뻗어있어 싱그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풍경 구경 후 터미널 가장자리에 있는 인포메이션을 찾았다. 인포메이션은 매일 9시부터 19시까지 운영하며 시굴다 관광 정보를 제공하는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우리도 첫 번째 목적지 투라이다(Turaida) 성까지 가는 셔틀버스의 일정을 문의했다. 버스는 하루에 총 8번 왕복하고 요금은 일인당 0.5유로. 이곳에서 투라이다까지는 10분이면 도착한다.


거리상으론 많이 멀지 않은데 버스를 놓치면 오래 걸어야 한다. 앗! 그런데 지금 시계를 보니 막 12:05 차가 떠날 시간이다.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앗 저기 버스가 있다!




투라이다 박물관 리서브 Turaida Museum Reserve

셔틀버스는 기차역을 벗어나 Gauja 강을 건넌 뒤 투라이다 마을에 도착한다. 버스 정류장 옆 안내판에 Turaidas Muzejrezervats라는 곳에서 내리면 되는데, 이곳이 바로 총 43.63 헥타르(약 12만 평 이상)에 달하는 투라이다 리서브이다. 투라이다는 원래 '신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이 리서브에는 이름에 걸맞게 멋지고 푸른 정원과 천년 가까이 된 중세 성이 있다.


목제 성당

성인 입장료는 1인당 5유로, 국제 청소년증, 학생증이 있으면 3유로에 입장할 수 있었다. 공원에 들어가기 전 입구 옆에 있는 화장실에 먼저 다녀오자. 공원 안에는 간이 화장실 밖에 없으니 이곳에서 볼일을 보고 구경에 나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공원에서 투라이더 성과 정원이 가장 큰 볼거리인데, 우리는 우선 성에 먼저 가보기로 했다. 성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을 따라 숲길을 걷다 보면 왼쪽 언덕에 나무로 지어진 작은 성당이 나온다. 이 성당에는 투라이다의 장미라 불리는 여인의 무덤이 있는데, 라트비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불리는 비운의 주인공 중의 한 명의 무덤이 있다.


성당을 지나면 정원을 관리했던 정원사의 집이 나온다. 이 집에서는 이 지역에서 발견된 중세 이전 수렵활동에 사용한 사냥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정원사의 집을 지나면 바로 붉은 빛깔의 벽돌로 지어진 투라이다 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투라이다 성

원래 이 자리에는 나무로 된 요새가 있었으나, 1214년에 리가에 파견된 로마 가톨릭 알버트 주교에 의해 견고한 벽돌 형태로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그 후 점차 방어에 더욱 치중한 요새로 발전해 지금의 모습을 완성해 나갔다고 한다.


투라이다 성 첨탑

역시 이곳의 가장 큰 볼거리는 높게 솟은 탑! 원래 두 개의 탑이 서있었지만 하나는 반쯤 무너져 내렸고, 하나는 아직 보존되어 있다. 탑 꼭대기 층 전망대로 올라가 보자!


실내로 들어서니 두께가 2-3미터는 돼 보일 만큼 성벽은 두꺼웠다. 성을 지키는 첨탑으로 만들어졌지만, 설령 성이 함락되어도 탑에서 끝까지 항쟁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다면 두 개의 중간층이 나오는데 실내는 생각보다 넓고 아늑했다. 외부와 고립되어 있어도 충분한 식량만 비축되어 있다면 외부의 적들과 오랜 시간 농성할 수 있을 만큼 보안이 철저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오른 뒤 드디어 가장 꼭대기 층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투라이다 성 내부 모습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성채

널찍한 전망대가 자리 잡은 첨탑 꼭대기 층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훌륭했다. 푸르고 넓은 숲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가우자 강이 보인다. 적들이 저 강을 넘어 침략해 오는 것을 첨탑에서 감시했을 것이다. 사진에서 보이진 않지만 저 강 건너 시굴다 성이 서로를 감시하듯 서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콩알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우리가 많이 올라왔는지를 느끼게 해 준다. 이곳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여유 있게 풍경을 구경했다.

첨탑 전망대에서 내려와 투라이다 성의 예전 성터를 한 바퀴 돌아보고 두 번째 목적지 정원으로 향했다.


성에서 나와 정원사의 집 옆길을 따라가면 잘 가꿔진 푸른 정원을 만날 수 있다. 푸른 정원에는 다양한 예술 작품이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작품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산책이었다.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적당히 우거진 숲을 거닐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왜 이곳을 신의 정원이라 불렀는지 이해되었다. 



투라이다 장미와 구트마니스 동굴 Gūtmaņala

구트마니스 동굴로 가는 길

투라이다 성에서 마음에 평온을 찾은 뒤 다음 목적지인 구트마니스 동굴로 향했다. 이 동굴은 투라이다 투라이다 리저브에서 시굴다로 가는 방향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걸어가기로 했다. 


십여 분 걸었을까? 드디어 사람이 모여있는 동굴이 나타났다. 구트마니스 동굴은 발트 3국을 통틀어 가장 큰 동굴로 유명한데, 사실 동굴이라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작았다.


절벽 한 구석에 움푹 들어간 동굴은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쉼터 정도의 규모였다. 고등학생 대여섯 명이 이 쪼그려 앉아 숨어서 담배 피우기 적당한 사이즈였다. 


구트마니스 동굴

그럼에도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안타까운 러브스토리가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1601년 스웨덴과 폴란드가 라트비아를 사이에 두고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가우자 강 기준으로 북쪽인 투라이다 성에는 스웨덴 군이, 남쪽 시굴다 성에는 폴란드 군이 주둔하며 서로 대치하였다고 하는데, 투라이다 성에는 투라이다의 장미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인 마야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폴란드가 주둔하고 있는 시굴다 성의 정원사인 빅토르와 사랑하는 사이였고, 그들은 밤이면 이 구트마니스 동굴에서 비밀 연애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한 폴란드의 탈영병 야쿠보브스키는 그의 구혼을 거절한 마야에게 분노하여 빅토르인 척 가짜 편지로 마야를 이 동굴로 유인해 겁탈하려 했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가짜 편지에 속아 평소와 다른 시각에 동굴로 찾아온 마야는 야쿠보브스키의 나쁜 의도를 눈치채고 순결을 지키기 위해 그에게 한 가지 제한을 하는데, 


만약 내 목에 걸려있는 이 마법의 스카프를 칼로 내리쳐 찢을 수 있다면 당신의 아내가 되겠어요.
하지만 이 스카프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나를 보내주세요.

   

그 당시 중세 사람들은 마법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야쿠보브스키는 그녀를 얻기 위해 힘껏 스카프를 칼로 내려쳤고, 결국 그녀를 죽이고 말았다고 한다. 그 충격으로 그는 숲으로 들어가 자살을 했다고 하는데.. 


평소처럼 마야를 만나기 위해 동굴을 찾은 빅토르는 그녀의 시체를 보고 놀라 투라이다 성에 그녀의 시체를 안고 갔지만, 되려 살인범으로 몰리게 된다. 나중에 야쿠보브스키의 만행을 지켜보았던 동료의 증언으로 빅토르는 누명을 벗을 수 있었지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을까.. 

조금은 진부하지만 구트마니스 동굴에서 살해된 마야의 재판 기록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은 맞는 것 같다. 그런 탓에 많은 사람들이 '투라이다의 장미'를 애도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동굴 앞에서 홀로 멋진 색소폰 연주를 하고 계신 어르신. 그의 연주는 동굴에 울려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시굴다 중세 성 Medieval Sigulda Castle 


투라이다에서 시굴다로 돌아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마지막 목적지인 시굴다 성으로 향했다. 성으로 가는 길 성당 하나를 만났다. 가톨릭 성당인가 하고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지만, 조금 다른 분위기가 풍긴다. 알고 보니 루터교 교회라고 한다. 독일에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루터교가 많이 보였다. 



시굴다 중세 성(좌), 신 성(우)

루터교 성당을 지나 드디어 도착한 시굴다 성. 이곳에는 두 개의 성이 있는데 13세기에 처음 지어진 중세 성과 19세기에 새로 지은 고딕 양식의 세련된 성이 서로 마주 보며 자리 잡고 있다. 중세 시굴다 성은 한쪽 벽면에는 궁수들이 활을 쏘았을 법한 망루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여러 궁수가 활을 쏘았다면 쉽게 다리를 건널 수 없었으리라.


중세 성으로 들어가는 다리에서 티켓을 판매한다.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티켓 부스에 잠시 몸을 웅크렸는데 티켓을 판매하는 직원이 '안녕하세요'라는 서투른 한국 인사를 한다. KPOP에 관심이 많다는 직원. '감사합니다'라는 한국말을 들려주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멀리 보이는 투라이다 성

성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예전에 병사들이 훈련을 했을만한 넓은 공터가 있었다. 갑자기 심해진 빗줄기를 피하기 위해 공터 건너편 강 쪽을 지키고 서있는 첨탑으로 향했다.  


소나기였는지 금세 비가 그치고 다시 푸른 하늘이 나왔다. 첨탑 전망대에서 저 멀리 투라이다 성이 보인다. 리가 주교에 의해 동시에 건설된 이 두 성은 이후 한때 서로 적군이 머무르며 대치하는 요새로 쓰였다니.. 누구도 미래를 예상할 수 없기에 역사는 항상 재미있게 흘러가는 것 같다.


시굴다 성의 모습

첨탑을 나와 중세에 지어진 성채 구경을 마쳤다. 관광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많이 가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넓은 정원을 갖고 있는 투라이다에 비해 볼거리가 많지는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부인도 느꼈는지 부인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미안 부인 오늘 힘들었지? 이제 우리 리가로 돌아가자~


인심 좋은 시굴다

리가로 돌아가기 위해 시굴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 어느 집 앞에 작은 사과 박스가 놓여있다. 옆에 작은 메모

에 FREE라고 쓰여있다. 마당의 사과나무에서 열린 사과를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먹으라고 모아둔 것이었다. 시굴다 주민들의 여유 있는 인심이 부인을 다시 활기차게 만들어줬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맛있는 사과를 하나씩 물고서 밝은 걸음으로 시굴다 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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