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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나남편 Jan 17. 2020

리투아니아 실루바 성모님 발현 성지

리투아니아에서 일어난 기적

#리투아니아렌터카여행

#성모님발현성지실루바


실루바 성모님

오늘은 리투아니아 성모님 발현 성지 실루바에 다녀올 예정이다. 실루바는 빌뉴스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조금 외진 곳이 다 보니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오늘 하루 자동차를 렌털 하기로 했다. 빌뉴스 기차역에서 오전 8시에 차를 픽업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른 아침을 거른 채 숙소를 나섰다.


숙소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기차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기사님께 1유로에 산 회수권을 이번엔 자연스럽게 펀치 기계에 넣었다.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구멍이 뚫려 나오는 회수권.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날로그 소리가 듣기 참 좋다. 


현대 I20

기차역 앞 로터리 도로에서 렌터카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온라인으로 폭스바겐 골프를 빌렸는데 현대 I20가 세워져 있다. 골프 혹은 동급이라는 문구가 있었던 게 생각이 났다. 외제차 한번 몰아보나 했는데 왠지 속은 기분이 든다.


이번 렌털은 실루바를 다녀오는 것 외에 수동 운전연습이라는 목적도 있다. 3주 뒤면 90일 유럽 자동차 여행을 시작하는데, 자동차 리스비를 절약하기 위해 수동 자동차를 주문했다. 십여 년 전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한 후 수동 운전을 해본 적이 없기에 안전한 여행을 위해 사전 연습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연습을 위해 수동 변속 자동차를 빌렸다. 


간단히 자동차 외관 상태를 확인하고 서류에 서명했다. 혹시 몰라 풀 보험을 가입했다.


드디어 시작된 매뉴얼 운전. 어제 유튜브로 수동운전 동영상을 시청했는데, 막상 운전석에 앉으니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클러치를 언제 밟고 언제 떼야하는지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아직 몸에 익지 않은 탓에 자꾸 시동을 꺼트린다. 그렇게 시내를 벗어나기 전까지 뒤차들의 눈총과 재촉을 받으며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다행히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여유를 되찾았다. 왕복 4차선의 고속도로는 운행하기에 아주 깨끗하고 곧게 뻗어 있었다. 운전이 어느 정도 적응될 때쯤 리투아니아의 제2의 도시 카우나스 근처 휴게소에 들렀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에 빵과 커피를 사 먹었고 다시 실루바로 길을 나섰다. 점점 어둠이 짙어지던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이 끼었고, 잔잔하게 내리던 빗방울은 굵어지기 시작했다.


실루바 광장

고속도로를 벗어나 시골길을 따라가니 드디어 실루바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실루바 성지는 바실리카와 하얀 채플이 넓은 광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성모님이 발현한 장소에 하얗고 높은 채플을 지었다고 한다. 


원래 이 곳은 작은 가톨릭 성당이 있던 곳으로, 1457년 로마에서 가져온 성모님 그림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 유럽 전역으로 개신교 칼뱅주의 종파가 퍼져나가던 시절, 리투아니아에서도 많은 가톨릭 성당들이 문을 닫거나 재산을 몰수당했다고 한다. 그런 위기가 이곳 실루바까지 뻗치자 그 당시 주교 신부님이 그림을 비롯한 교회의 중요 문서를 철제 상자에 담아 비밀리에 땅에 묻고 피신했다고 한다. 


그러다 몇십 년이 지나 많은 사람들이 칼뱅교로 개종한 1608년에 이 동네 양치기 소년들은 아기를 안고 바위 위세 서서 슬프게 울고 있는 한 여인을 목격하게 된다. 겁에 질린 소년들은 동네에 이 사실을 알렸고, 다음날 칼뱅교 목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가 성모님 발현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소문이 온 나라에 퍼지자, 소문을 듣고 찾아온 맹인은 어느 신부님을 도와 땅속 깊이 숨겨져 있던 철제 상자를 되찾게 되고 이 땅은 원래 성당이 있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리게 되었다고 한다. 


바실리카 안에 모셔져 있는 성모님 그림

발견된 상자 안에서는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잃어버린 성모님의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그림과 함께 상자 안에 있던 서류들을 증거로 10년 이상 이어진 개신교와의 재산 분쟁에서 승소하여 빼앗겼던 가톨릭의 옛 땅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맹인이 지정했던 그 자리에 다시 성당을 세우게 되고 이 사건을 개기로 개종했었던 많은 사람들이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런 사연이 널리 알려지면서 1775년 교황 피오 6세에 의해 공식 성모님 발현지로 인정받게 되고, 1786년 후기 바로크 양식의 바실리카가 완공되었다고 한다. 이후로 이곳은 리투아니아 가톨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종교적인 장소가 되었고, 리투아니아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프로세션(행렬)에 참여해 이곳까지 성지순례를 왔었다고 한다. 성모님에 대한 성심이 큰 폴란드 출신의 교황 바오로 2세도 발트 3국이 독립을 다시 얻은 지 2년 뒤인 1993년 이곳을 방문해 미사를 집전했다고 한다.


성모님이 서 계셨던 바위

바실리카 안에는 상자에서 발견된 성모님 그림이 걸려있다. 성모님이 인자한 미소로 서계시는 광장을 사이에 두고 바실리카 건너편에 있는 하얀 채플에는 성모님이 아기 예수님을 앉고 서계셨다는 바위가 보존되어 있다. 주일 외에도 매월 13일이면 마리아를 위한 미사를 봉헌한다고 한다. 가톨릭에서 귀하게 여기는 성지에 직접 방문한 것에 기쁜 마음이 컸지만 미사를 드리고 가지 못함에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광장의 성모님

성모님께 배꼽인사와 다음에는 13일에 맞춰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드리고 빌뉴스로 돌아가 위해 차에 올랐다. 십자가의 언덕에서 처음 느꼈지만 지금까지 다녀온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종교혁명 이후 구교인 가톨릭보다 신교인 루터교나 칼뱅교를 많이 믿는 듯 보였지만 리투아니아만큼은 가톨릭에 대한 신앙심이 여전히 더 크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에는 실루바의 성모님 같은 기적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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