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겁나남편 Feb 03. 2020

빌뉴스 프리워킹 투어

볼거리 많은 리투아니아 수도

#리투아니아 #빌뉴스 #우주피스 #프리워킹투어 #새벽의문 #올드타운

빌뉴스 셋째 날이 밝았다. 실루바에 다녀오기 위해 빌렸던 자동차를 반납하러 아침 일찍 기차역으로 나왔다. 차량 반납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날씨가 여전히 흐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 우리는 두발로 빌뉴스의 이른 아침을 느껴보기로 했다.



새벽의 문 The Gate of Dawn

빌뉴스 남쪽 성문, 새벽의 문

천천히 숙소로 걸어가던 중 발견한 새벽의 문.


빌뉴스가 외부 침입에 맞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던 시절에 만들어진 다섯 개 성문 중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문으로, 바깥으로는 외부의 침입을 방어할 수 있는 방어 장치가, 안으로는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작은 가톨릭 채플이 있다. 이 채플에는 17세기에 그려진 작가 미상의 아기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 님 그림이 있는데, 많은 기적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해서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님도 이곳을 방문하셨다.


마침 채플에서 아침 미사가 진행 중이어서 우리도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채플은 20명이 겨우 앉을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았지만 성전이 보이지 않는 복도까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미사를 위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 틈에 들어가 미사를 드리며, 지금까지 잘 여행한 것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도 잘 다닐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아침 미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 오늘은 오전 10시에 우주피스 공화국 천사의 상 앞에서 시작하는 빌뉴스 프리워킹 투어에 참가하기로 했다.




우주피스 공화국 Uzupio res publika 

우주피스 공화국은 리투아니아 국가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국가이다. 헌법, 대통령, 군대, 국기까지 갖고 있는 꽤 잘 갖춰진 국가이며, 헌법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는 전 세계에 유례없는, 민족을 뛰어넘는 신개념의 국가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정말 대단한 독립 국가 같지만, 사실 일 년에 한 번 4월 1일 만우절에 축제를 여는 예술가들의 가상 국가이다.


이곳은 원래 빌뉴스 외곽 Vilnia River 건너편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모인 예술가들이 1998년 4월 1일 이곳을 그들의 국가로 선포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런 덕에 이곳은 빌뉴스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고, 거리에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마침 이곳에서 빌뉴스 프리 워킹투어가 있다고 하여 약속 장소인 천상의 동상 앞으로 찾아갔다.


영어에 능숙한 젊은 리투아니아 가이드와 십여 명의 관광객이 모인 뒤 투어는 시작했다. 투어는 천사상 옆 서점에서 우즈피스 도장받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우주피스의 헌법 설명. 서점 앞 벽에 걸려있는 은색의 판이 바로 우주피스 정신이 담겨있는 헌법이다. 세계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헌법을 볼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한국어 번역은 없었다. 다음에는 꼭 있기를... 


총 41개로 이루어진 우주피스 국민이라면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읽으며 그들의 재치와 유머도 느껴졌지만, 이곳만의 자유로운 철학이 담긴 헌법이 인상 깊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지만 행복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누구도 이해할 권리가 있지만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누구나 어떤 권리도 갖지 않을 권리도 있다.
Dog는 Dog 일 권리가 있다.
Cat은 주인을 사랑할 의무는 없지만 필요할 때 도움을 주어야 한다.


특이하게도 헌법은 강아지와 고양이의 권리와 의무를 담고 있다. 그들 또한 이곳의 시민이라는 의미이다. 유머러스 하지만 뼈가 있는 말들. 요즘처럼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필요한 가치를 담은, 시대를 앞서간 헌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헌법의 벽을 지나 예술가들이 처음 모여 우주피스의 설립을 의논한 장소들과 예술가들을 후원하기 위한 건물, 그들의 본부를 구경하였다. 우주피스 구석구석 자유로운 영혼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숨어 있었다.


그중 낙서가 가득 담긴 벽이 우리의 이목을 끌었다. 너무 많은 낙서가 겹쳐 내용을 알아볼 수 없지만 몇 개의 강렬한 메시지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합법화하라는 낙서들... 그들이 요구한 합법화의 주제가 무엇이든 분명 우주피스 헌법이 잘 반영된 그 무엇일 것이다.


짧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우주피스 공화국 투어를 마치며 다음에는 꼭 그들의 축제일인 4월 1일에 이곳에 돌아와 이곳의 자유로운 영혼들과 마음을 나눠보리라 다짐했다.




빌뉴스 올드타운 Vilnius Old Town

Anne 성당(좌), Bernard 성당(우)

우주피스를 벗어나 작은 강을 건너면 빌뉴스의 올드타운에 들어선다. 그리고 앞에 두 개의 멋진 성당이 보이는데, 왼쪽은 고딕 양식의 Anne 성당, 그 옆에 바로크 양식의 더 큰 Bernard 성당이다. 얼핏 보아도 Anne 성당이 투박한 Bernard 성당에 비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는데, 프랑스 제국의 나폴레옹 1세가 러시아 원정 때 Anne 성당을 보고 파리에 가지고 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칭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성당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고 한다. Anne 성당을 지은 건축가는 Bernard 성당을 지은 건축가의 제자였고, 둘이 비슷한 시기에 성당을 짓기 시작했는데, 제자의 작품이 훨씬 아름답다고 느낀 스승은 제자의 능력을 시기해 제자를 성당 높은 곳에서 땅으로 밀어 죽였다고 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Bernard 성당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Anne 성당이 더 매력적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오싹한 사연의 두 성당을 지나 올드타운으로 들어가면 기념 명패가 많이 걸려있는 Literatu Street라는 좁은 골목을 만난다. 벽에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에 관한 기념품이 걸려있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지만 사실 크게 우리의 관심을 끄는 작가는 찾아볼 수 없었다. 


Literatu Street의 좁은 골목을 지나 사람이 많은 Pilies Street에 들어섰다. 이 거리는 올드타운의 메인 거리로 길을 따라 많은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를 만날 수 있다. 항상 관광객들이 많은 거리이다. 투어가 끝나면 우리도 이곳에서 점심을 사 먹기로 했다.


Pilies Street를 끝에는 엄청나게 넓은 대성당 광장과 빌뉴스 대성당이 나온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모양의 성당 입구 위로 3명의 성인상이 자리 잡고 있는데, 소련 점령기에는 이들을 모두 치웠다가 독립 후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꽤 넓은 광장에 성당과 벨타워만 있는 것이 조금 생뚱맡게 보이지만, 매년 크리스마스면 이곳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마켓으로 가득 찬다고 한다.


이 광장에는 성당 말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상한 단어가 쓰여있는 붉은빛의 타일이다. 타일에 쓰여있는 'STEBUKLAS'는 기적이라는 뜻의 리투아니아 단어로, 1989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발틱 3국이 독립을 위해 200만 명의 사람이 손잡고 만들었던 인간 띠, 발틱웨이가 이 타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때를 기념하고자 이곳에 기념 타일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타일은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타일이 당신을 안내할 것이라는 미신과 타일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3바퀴를 돌고 점프한 뒤에 손뼉을 친 뒤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손해 볼 것 없으니 가이드 말에 따라 우리 모두 돌아가며 소원을 빌었다.


소원을 빌고 리투아니아 대통령 궁과 유태인이 모여 살았다는 동네 등 시내 구경을 이어갔다.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가톨릭 국가답게 성당이 유난히 많았다. 빌뉴스는 한때 북유럽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괜히 그런 얘기가 나온 게 아닌 것 같았다. 발트 3국 중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와 종교관은 확실히 다름이 느껴졌다.


어느덧 투어는 시내를 벗어나 어느 푸른 언덕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투어의 마지막 코스로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올드타운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주인을 마냥 기다렸다는 듯 반기며 가이드에게 강아지 한 마리가 달려든다. 아마 이곳에서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우리 모두 3시간가량 열심히 설명해준 가이드에게 약간의 팁을 주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투어를 마친 우린 올드타운 메인 거리인 Pilies Street로 돌아가 아까 봐 두었던 식당 파티오에 앉아 리투아니아 전통 음식을 맛보았다.



세 개의 십자가 언덕 Hill of Three Crosses

식사를 마치고 시내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로운 오후를 보냈다. 시간은 어느덧 해질 녘이 되어 석양을 구경하기 좋은 빌뉴스 십자가의 언덕으로 향했다. 빌뉴스 올드타운 북동쪽에 높은 언덕이 하나 있는데, 그 언덕에는 올드타운 어디서나 보이는 거대한 세 개의 십자가가 놓여있다. 


이 십자가는 14세기 이곳에 선교하러 온 14명의 선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리기 위해 1613년에 처음 나무 십자가로 세워졌다고 한다. 이후 이 십자가는 몇 백 년 동안 빌뉴스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고 하는데 종교를 탄압했던 소련에 의해 잠시 제거되었지만, 독립 이후 빌뉴스의 사람들의 신앙을 마음속에 되새기기 위해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약간의 등산이 필요하지만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시내가 멀리까지 잘 보이고 석양을 바라보기에 딱 좋은 언덕이었다. 석양을 구경하기 위해 올라온 다른 많은 커플들과 함께 우리도 이곳에 잠시 앉아 서쪽으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내일은 또 뭐 할까? 


작가의 이전글 공포의 전염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