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동문, 선후배와의 네트워크로 일평생 편히 살 수 있었던 시절이 끝났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기업과 산업 현장에서도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무작정 신입사원으로 뽑지 않는다. 사실 기업은, 명문대 출신이건 아니건 백지 상태나 다름없는 신입사원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게다가 비즈니스 상황이 너무 빨리 변하다 보니 이들을 교육해 업무에 투입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은 명문대 입학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으며, 그들의 노력은 갈수록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는 중이다. 어렵사리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서 4년을 온 힘을 다해 각종 스펙 쌓기에 힘을 쏟아보지만, 취업의 문을 통과하는 게 녹록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나는 IMF 시절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곳이 마땅치 않아 대학생들이 만든 인터넷 벤처 회사에서 월 50만 원을 받으며 처음 IT 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몇몇 기업을 거쳐 마이크로소프트에 정착한 후,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재는 아시아 전 지역을 커버하는 리전 매니저로 기술 커뮤니티 리더들을 관리하는 팀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커뮤니티 리더를 관리하는 일을 하며 직간접적으로 만난 2,000여 명의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은 국적도 다양했다. 한국을 거쳐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아시아 전 지역의 전문가들을 만났으니 20개국이 훌쩍 넘는다. 이들은 주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거나 IT 엔지니어링 혹은 스마트 오피스 관련 분야에서 일하며 95%가 남성이다.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율이지만, 당당하게 활동하는 여성도 많이 만났다.
무엇보다 난 그들의 학력이나 학벌을 전혀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이 수년간 꾸준히 해 온 커뮤니티 활동과 그 활동을 통해 알 수 있는 그들의 전문 능력과 영향력만 철저히 검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보다,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해왔는지, 그것도 공동체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며 해왔는지를 눈여겨본다.
실력과 인성을 중요시하는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나이, 인종, 학력, 성별의 구분 없이 자신의 노력과 실력만으로 승부를 겨루는 문화가 있다. 물론 저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한 문화를 지향하는 전 세계의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커뮤니티를 만들어 오픈소스를 만들고 거대한 기업에 저항하고 협력하며 만들어진 문화이다. 그래서 세계 최고 IT 기업과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는 그런 문화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선한 (기술의) 영향력을 끼치는 커뮤니티 리더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내가 만난 커뮤니티 리더 모두가 높은 자리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먼저 배워 남과 함께 공유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자세로 공부하면 효율적으로 지식을 축적할 수도 있고, 전 세계 최고의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커뮤니티 리더십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할 때 어떠한 놀라운 변화가 생기는지 나는 지난 15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에 있으면서 생생히 경험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명문 하버드 출신의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가 이끌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십 수년간 끊임없이 추락했다. 하지만 이름 없는 인도의 대학을 나오고 마찬가지로 명문대로 보기 힘든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유학한 인도 출신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가 회장이 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는 추락을 거듭하며 시장에서 잊혀 가던 마이크로소프트를 또다시 혁신의 아이콘으로 만들더니 급기야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의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나는 이 두 회장의 시절을 모두 겪으며 오늘날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통, 공감, 개방성, 나눔이라는 문화와 태도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이는 학벌이 아니라 커뮤니티 리더십을 지닌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이다.
나는 이 브런치와 곧 출간될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를 통해 ‘포스트 학벌시대’에 필요한 인재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뜬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국내외에서 직접 만나거나 조사한 2,000여 명의 소프트웨어 전문가의 생생한 예를 통해서 말이다.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10위 회사 중 7개는 소프트웨어, 즉 IT 기업이 차지한다.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삶과 일터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4차 산업 혁명으로 불리는 일련의 혁신도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달로 촉발됐다. 소프트웨어 인재들, 특히 그들을 이끄는 커뮤니티 리더들의 힘, 다시 말해 커뮤니티 리더십은 급변하는 미래를 준비해야 할 우리가 모두 배우고 익혀야 할 능력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 브런치의 연재를 통해 간절한 꿈을 꾼다. 우리 기업 곳곳에, 그리고 사회 이곳저곳에 ‘소통, 공감, 개방성, 나눔’을 실천하는 커뮤니티 리더들이 많이 자리 잡기를. 그래서 학교나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가슴속에 소중한 배움의 열정을 품고 평생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를. 다른 사람과 함께 성장하기 위해 열정과 헌신을 다하는 사람들이 칭찬받는 사회가 되기를. 그리고 그런 기업과 학교가 많아지기를. 그렇게 해서 ‘포스트 학벌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새로운 리더십, 새로운 인재의 시대가 열리길 말이다.
* 이 포스팅은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의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상세한 설명과 예시는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