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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04. 2023

오늘도. 한번. 참았다.

매일의 미션이 소비 통제다. 



카드명세서를 보며 늘 생각한다. 


나보다 더한 사람은 언제나 있겠지만,
분명 나보다 조금 쓰는사람도 있을거다.
아니. 많을 거다.


라고. 


한번 위장이 격하게 아파보고, 또 체력이 격하게 축나는 어떤 순간들을 지나고 나니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으면 안될 음식, 똑같은 음식도 먹는 방법에 따라 내 몸에서 다르게 받아 들이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다. 먹고 마시고 자고 일어나는 모든 행위가 나의 건강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여러 순간을 겪고나서 생긴 루틴이다. 


내 몸의 손익계산서는 어느정도 셋팅이 끝났지만, 지갑을 위한 손익계산서는 아직 안정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지갑을 위한 손익 계산서는 다르다. 이건 이래서 사야할 이유가 있고, 저건 저래서 사야할 이유가 있다. 집이 어수선하기 짝이 없으면 그걸 정리할 정리용품을 고민하고, 잘 정리 되어있으면 빈공간을 채울 고민을 하게되는게 나란 인간이다. 무한히 버리고 채우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루틴이 생길거라고 굳게 믿지만 소득이 안정을 찾았음에도 지출은 여전히 안정을 찾지 못했다는것이 슬플 뿐이다.


얄팍한 포인트와 마일리지를 위해 나는 정기지출은 신용카드에 묶어두고, 최대한 체크카드 라이프를 유지하려고 노력중이다. 부정기적인 지출이 발생할때마다 3만번 고민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 하지만, 사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충동구매의 욕구가 살아있다. 


요즘 우리는 이사를 고민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집을 내놓았고, 소소한 투자의 결과로 얻은 수익을 실현하기 위한 액션으로 이사를 선택했다. 수중에 있는 돈의 용처는 어떤식으로건 '이사'라는 중차대한 미션 앞에서 모둔 지출은 멈추게 되었다. 어차피 억대의 빚을 지고 있는데 10, 20만원의 추가 지출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은 생각을 하다가도, 매달 20만원씩 모으는 적금이 순식간에 100만원을 넘기는걸 볼때마다, 100만원으로 시작한 주택 청약이 어느새 1,000만원을 넘기는 걸 볼때마다 작은 돈을 무시하면 안된다 아로새기는 요즘이다. 


요즘 나의 지출 고민 포인트는 아이의 아토피 피부염이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피부트러블로 스트레스를 꽤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 계절 지나고보니 일단 아이의 몸에 있는 '열'을 컨트롤 하는 것이 1번 순서요, 2번은 지속적인 보습이었다. 


겨울이 되서야 겨우 가라앉았던 아토피는 여름이 되자 다시 올라왔다. 지난해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시원하게 재우고, 목욕하는 물을 최대한 미적지근하게 해서 씻기고 있다. 온천의 맛을 경험한 아이는 이제는 시원한 물보다는 따뜻한 물에 더욱 애정을 보이고 있는 터라 설득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면 나는 그 다음 단계로 '보습'에 집착하게 되는데... 바세린도 발라보고 포포크림도 발라보고, 비판텐이랑 다른 로션도 섞어서 발라보고 정말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것도 이렇다할 시원한 결과를 보이지 않고 있는터. 


그 와중에 비싸더라도 좋아보이는게 있다면 계속 시도하게 되는게 부모의 마음인지라 어느순간 내 마음에 자리잡은 화장품이 있었으니.... 바디로션과 오일, 그리고 밤 3가지를 섞어서 바르면 좋다고 홍보하는 어느 오가닉 브랜드에 마음이 가 있었다. 용량도 300ml, 150ml, 30ml에 불과하거늘 3종을 다 구매하면 16만원이 넘는다. 그것도 무려 할인을 받아서 말이다. 거기에 바디워시까지 하면 뭐 20만원은 우습다. 


자신의 아이에게도 같은 조합으로 발라주고 있다는 판매자의 말을 보면서 홀랑홀랑 넘어가 흔들리기를 몇번이었던가. 그 모든걸 다 사기 무서운 나는 일단 바디워시부터 시작했다. 집에 이미 있지만 열이 많은 아이의 두피 냄세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6만원에 달하는 바디워시를 샀고, 나름 풀향기 가득한 상품에 어느정도 만족하고 잇는 터였다. 그리고 장바구니에 다시 바디 보습 3종셋트를 담아놓고 고민하고 있다. 


이제 날이 조금씩 추워지고 나면 또 가라앉을 테지만 나는 16만원 어치의 화장품을 통해 완치를 기대하는 얄팍함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안다. 완치따위는 없다는 걸. 그저 체온 관리 잘 해주고 시간이 약이라는 걸. 내가 저 조합을 안해본게 아니지 않은가. 이미 집에 쌓여있는 호호바오일과 바디로션을 섞어서도 수없이 발라본 나다. 그게 브랜드가 바뀌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게 없다는 것도 잘 아는데 이상하게 포기가 안된다. 


평소같았으면 벌써 질렀어도 질렀을 테지만, 이사라는 중차대한 미션앞에서 다시금 고민 하고 있다. 어차피 같은 결과를 맞이할 것인데도 지를 것인가. 아니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그냥 시간이 약이길 기다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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