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무슨 죄니
공연일을 하는건 꽤나 많은 피곤함을 수반한다. 변수도 많고 힘든점도 많다. 그런 불안정함이 힘들어서 그만둔게 공연일이었다. 이번 의사들의 파업사태를 보면서 나는 공연 중 손에 꼽게 아찔했던 순간이 기억났다.
당시 내가 일하던 공연단체는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다. 구체적인 상황까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출연료나 스태프들의 페이가 제때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모두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지만 일개 사원인 나는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어쩌면 그 다음 순서는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고 있던 차였다.
공연은 지방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나는 서울에서 지방의 공연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었다. 대표님이 황급히 공연이 진행되는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자금 담당하는 선배는 뭔가 무척 바빠보였따.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약속된 게런티가 입금되기 전까지는 무대에 설 수 없다고 버틴 모양이다.
공연 게런티는 한번 나가는게 아니다. 연습 초반에 계약금 개념으로 한번, 공연이 시작되면 한면 공연이 끝나면 한번 뭐 이런식으로 여러번에 나누어나간다. 공연의 기간이 길어지면 이 횟수가 조금씩 더 늘어난다고 봐야 한다. 월급 개념으로 받는게 아니라 상호간에 정한 시기와 금액을 기준으로 지급된다. 그러다 보니 돈이 한번 밀리면 배우와 스태프들도 말도 못하게 힘들어질거다. 불규칙하게 들어오는 대신 상대적으로 목돈이 들어오는 구조다보니 이 돈을 기다리고 있는 사연들이 또 얼마나 많겠는가.
결국은 대표님이 기차 타고 내려가는 와중에 어찌어찌 조달한 돈으로 공연 시작 5분 전에 입금을 할 수 있었고, 배우들은 분장도 안한 채로 마이크만 겨우 차고 무대에 올라갔다. 배우들만의 불만이 아닌, 그 무대에 연결된 모든 이들의 고난이 쌓인 결과였으니 분장팀이라고 일을 하고 있었겠는가. 임금체불로 인한 스트라이크는 모두가 합심해 결정한 행동이었다. 메인 크리에이티브 스태프는 현장에서 빠져있는 상황에서 크루들의 임금체불도 함께 있었을테니...
그 이야기를 뒤늦게 들은 분장 선생님이 당시 담당 크루들에게 크게 한마디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연 하는 사람이 게런티 미지급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 스트라이크였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셨다. 그 상황에서 메인 선생님이라고 돈을 받았을리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배우를 분장도 제대로 안한체 세운건 아주 큰 잘못이라고 크게 혼내셨다고 한다. 관객들은 아무 죄가 없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어렵게 그 자리에 온 관객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한 것 아니냐. 단체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그래도 분장은 하고 단체행동을 했어야 했다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나는 그당시 돈을 주지 못한 제작사의 일원이었으므로 거기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당당할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공연 제작이나 홍보마케팅 쪽 일을 완전히 손에서 놓고 난 후에 공연계에서 내가 겪은 일들 중 큰 깨닳음을 준 순간들이 몇가지 있는데 저 날 분장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래도 분장은 했어야지'가 나에겐 오래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다.
내 행동의 결과가 단순하게 나 하나의 손해나 손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파급력이 있는 거라면 그것이 모두가 합의된 단체행동이라 할지라도, 생계에 적접 적인 영향을 주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한번은 더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날 배웠다. 내 업이 사명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고, 아직까지도 오래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이야기 중 하나다. 의사들의 파업사태를 보면서 생각한다.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저정도 수위의 단체 행동을 한다면 그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걸 단순히 그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기 어려운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이 사명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단체행동이라는게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는 좀더 고민 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배우가 무대에 서는 것이 사명이듯
의사는 환자를 지키는 것이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