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의 증상은 애바이애
첫아이를 가졌을 때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실신'과 '디스크'였다. 원인도 알 수 없는 반복적인 혼절. 미주신경성 실신이라 불리는 증산으로 인해 난 8개월 가까이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했고 7~8개월 언저리에는 디스크로 고생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걸 피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남편의 차를 타고 다니고 있다. 가만히 앉아있을 때 오는 증상이라기보다는 뭔가 이동을 하거나 순환이 잘 안 될 때 나는 증상이었다고 추정한다면 남편의 차에서는 거의 누워있다시피 하고 이동한다. 디스크가 안 오네 싶어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엔 다른 게 왔다.
임신소양증. 지난 4월 갑작스럽게 옆구리에 한가득 두드러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략 23주 차 정도부터의 일이다. 예전에도 약간의 피부트러블은 있었지만 극 초기에 잠시 스쳐간 것이었고 온몸을 긁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만큼 미친 듯이 가렵다. 임신 두드러기. 증상을 검색하니 흔하디 흔하게 임신소양증이다. 하. 뭐 특별한 거 없이 잘 지나가나 했는데 피부 트러블이 왔다. 살면서 이렇게 온몸에 한가득 트러블이 난 걸 본 적이 없는 인생이라 그냥 증상 자체가 충격적이다. 옆구리에서 시작한 증상은 가슴아래, 등, 허리, 골반에 이어 다리까지 스멀스멀 확장하고 있다. 병원에서 정기검진 하면서 선생님께 보여드리니 스테로이드제를 처방해 주셨고, 몸을 시원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소양증 때문에 아이를 빨리 낳고 싶어 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 말은 애가 나오기 전에는 끝이 안 난다는 이야기고. 약을 바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적응이 먼저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시원하게 하고 자기 시작했다. 너무 당연한 수순 아닌가. 옷을 얇게 입고 선선하게 하고 자니 극단적으로 가려운 건 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1주일이나 지났을까? 이번엔 콧물이 좀 나나 싶더니 그러다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온다. 목이 쉬어 바람소리만 나온다. 와.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나니 미치고 팔짝 뛰겠다. 주말에 회사 일로 나갈 일이 있었는데 나가서 할 일이라곤 다 말로 현장을 어레인지 하눈 것들이라 나가도 내 존재는 무쓸모다. 결국 팀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이미 4개월쯤에 기침으로 고생하다 병원 가서 한바탕 약 처방을 받고 온 전적이 있는 나다. 면역이 떨어지니 아무래도 감기에 걸리기 쉬운가 보다 싶었고, 이비인후과는 어차피 처방을 안 해주니 그저 코세척이나 하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다였다. 또 그 증상인가 싶었는데.. 그러기엔 뭔가... 목소리가 잠기는 법이 없던 데다가,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폐병쟁이 환자차럼 쿨럭거려서 증상은 정확하게 알아야겠기에 이비인후과를 갔다. 며칠간의 증상을 쭉 이야기하고 목과 코를 내시경으로 보신 선생님의 한마디.
급성 후두염이네요.
임신 개월수를 이야기했더니 안타까운 눈빛으로 코세척하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아마도 최근에 몸을 너무 차갑게 하고 잤거나 한 거 같고, 그래서 후두염으로 온 거 같다고... 차갑게.. 차갑게.. 시원하게.. 그래 내가 시원하게 하고 잤지... 기침은 임산부에게 참 좋지 않다. 콧물이나 가래는 그저 일상이 불편하고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기침은 복압을 올려서 아이에게 좋을 것이 없다. 그런데 이비인후과 약의 대부분은 임산부가 먹을 수 없는 것들이고, 항생제가 기본이다. 그 말은 난 약을 먹을 수 없다는 거다. 그런데 목의 증상을 낫게 하기 위해 따뜻하게 하고 자면 다시 소양증이 확 도질게 뻔하다. 목이냐 피부냐 사이에서 무엇도 고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수면장애나 잦은 요의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또한 큰아이 때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아이가 품에 온 것을 확인하고 난 늘 평소 수면시간보다 2~3시간 이상을 적게 잔다. 아이와 같이 누워있다가 10시에 잠들면 2시에 깨고(그마저도 요즘은 1시나 12시로 당겨지고 있다), 그게 아니면 6시에 깬다. 난 7시 15분쯤에만 일어나도 되는데 말이다. 찾아보니 깊게 못 자는 이런 증상도 결국은 임신 후 호르몬의 영향. 요의 역시 아이가 커지면 어쩔 수 없는 증상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후두염이 더해지니 아주 난리부르스다. 목이 마르면 기침이 더 날게 뻔하니까 하루에 거의 2리터의 물을 먹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는 물 두 모금 먹으면 10분 후면 바로 화장실에 가야 한다. 그러다 재채기라도 하는 날에는 요실금 증상으로 대책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이동할 때마다 화장실의 위치를 미리 스캔하는 것이 요즘 이동할 때 가장 중요한 이슈.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걸어가면 안 된다. 가만히 서있어야 한다. 애 낳아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 이유를. 정말 두루 망했다.
큰애 때는 뭔가 크게 빵! 하고 터지는 느낌이었다면, 요즘은 자잘하게 끊임없이 신경 쓰이게 불편하다. 다들 컨디션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하. 괜찮지. 애는 괜찮다. 그러니 이 정도 자잘한 일들은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매번 지배하는 이런 몸의 변화는 너무 괴롭다. 하지만 아이가 여전히 주수대로 순탄하게 크고 있고, 이벤트 없이 매번의 검진을 넘기고 있다. 그럼 다 괜찮은 것 아닌가. 그게 내 숙명이 아닌가.
오늘도 같은 인사를 들었다.
컨디션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자잘한데, 괜찮은 거죠. 이거면.
나의 대답도. 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