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되는 게 최고다
임신의 끝은 출산이다. 그리고 출산을 위해서는 아주 평범한 경우 병원을 통한 출산이 기본이다. 초산에 제왕절개를 선택한 나는 입원 후에 제왕절개를 해야만 했다. 수술비, 입원비, 각종 약제와 처치 비용을 계산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1인실과 다인실 사용 여부였다. 1인실은 1박에 30만 원이 넘고, 2인실은 1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제왕절개 수술을 하면 퇴소 5박, 길면 6박을 입원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후기를 보니 이런저런 부대비용 다 감안하면 1인실에 260만 원 정도, 2인실로만 가도 100만 원 안쪽으로 들어간다.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1년간 수입이 없는 상황을 감안하면 큰 금액이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엄마에게 상의를 했다. 엄마는 그 정도 차이면 2인실로 가도 되지 않겠냐 하셨다. 엄마가 100만 원은 내줄 것이니 돈을 아껴서 잘 버티도록 해야 하지 않겠냐 하셨다. 나는 그 말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현실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2인실. 나의 1년의 현실은 150만 원에 2인실로 가는 것이 맞았다. 운이 좋아 혹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1인실처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통통한 꿈도 꾸어보았다.
다행히 예정일보다 10일 정도 당겨 잡아둔 수술날까지 뱃속의 아이는 잘 버텨주었다. 수술일 하루 전, 저녁 6시에 입원을 하려 올라갔고 배정받은 입원실에는 이미 누군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코로나의 영향인지라 대부분의 병실은 침상별로 커튼을 쳐두었고, 누가 봐도 쓰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살림과 짐이 한가득이었다. 창가에 있는 비어있는 침상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창가가 낫겠지 싶었다. 그렇게 5일만 잘 버티면 괜찮겠다 싶었다.
때는 8월 1일이었고, 연일 35도가 넘는 폭염에 시달리는 시기였다. 그러니 에어컨을 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난 에어컨이 세면 감기기에 비염에 콧물에 난리가 날게 뻔한데 에어컨이 아주 차갑다 못해 얼음 같더라. 그런데 같이 쓰는 사람이 혹여 더울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버텼다. 그리고 양수가 터지고 아이가 타오고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되니 더없이 난처해졌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에 얼어 죽게 추우니 기침이 난다. 제왕절개 수술한 사람이 기침을 한다는 것은 배에 쉼 없이 자극이 들어갈 것이라는 뜻이고, 그럼 난 죽는다는 의미다. 배에 힘이 안 들어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그 와중에 기침을 하면 배근육이 너무 당겨서 죽을 수도 있다. 그건 진통제로 해결되지 않는다. 약 먹어 해결되는 류의 통증이 아니다. 선생님께 에어컨으로 인해 기침이 나니 기침약을 처방해 달라고 했다. 갑상선 수술할 때도 비슷했다. 전신마취의 여파로 기침이 났고, 그럼 근육이 땅겨 아프니 약을 처방해 주셨던 적이 있었다. 회진 오신 선생님꼐 말씀드렸다. 기침이 나니 약을 처방해 달라고.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옆 사람으로 인해 에어컨을 줄일 수는 없었고 밤에 자다 깨서 슬그머니 일어나 낮추면 아예 에어컨이 돌아가지를 않았다. 전체 고장은 아니지만, 온도조절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더워 에어컨을 켜면 얼어 죽고, 그렇다고 끄면 쪄 죽는다. 더우면 염증이 날까 걱정이고, 추우면 기침으로 배가 아플게 뻔한데 그 와중에 옆 배드의 사람은 에어컨 온도를 높여놓으면 다시 낮추기를 무한 반복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병실 침상에는 개인 조명이 하나씩 있긴 했지만, 그래도 방 전체 조명은 필요하다. 밤이 되면 적당한 타이밍에 끄는 건 인지상정이나(조명 스위치가 입구 쪽 베드 바로 옆이었음), 불 좀 꺼도 될까요? 묻는 법도 없고, 새벽 2시까지 남편 되시는 분은 뭔 입시 준비를 하는지 동영상 강의를 PC스피커로 틀고 듣고 있었다. 헤드폰도 있건마는 옆에 사람이 있건 말건 늦은 밤까지 열심히 영상강의를 보시는 통에 그마저도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병실 입구에 짐이 있는 데로 늘어져있어서 오가는데 불편한 건 애교였다.
더위와 냉기 사이에서 무한 루프를 타던 중 옆 베드 분이 나가시고 잠시 주춤하는 사이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내가 입구 쪽으로 옮겨 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는 생각이 한숨이 낫다. 새로 들어온 사람은 그래도 처음 봤던 환자보다 좀 나았다. 불을 끄거나 에어컨을 조절하며 괜찮은지 묻기도 하고 해가 떨어지면 조심조심 움직였다. 사람들이 오갈 때 불편하지 않게 짐도 잘 추슬러 놓으셨지만 온도에 대한 문제는 쉬이 해결되지 않았다.
두 산모 모두 자연분만을 하신 분 같았고, 퇴원이 빨랐다. 짐을 챙기는 기색을 확인하자마자 간호사실로 달려가 베드 위치를 바꿔 달라 부탁했다. 남은 시간이라도 좀 온도에 덜 시달리고 자고 싶었다. 옮기고 보니 문제가 더 명확해졌다. 이 방에 에어컨도 문제이지만, 커튼도 문제였다. 커튼이 바람을 막고 있으니 입구 쪽 베드에는 에어컨 바람이 1도 오지 않았다. 에어컨을 온도를 자꾸 낮추는 마음이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에어컨 온도를 낮추기에는 창가 쪽 자리의 비극을 너무 잘 아는지라 난 가능한 한 밖에 나가있는 쪽으로 선택했다.
1인실은 비싸고, 2인실에 운이 좋아 누가 오지 않는다면 1인실처럼 쓸 수 있다는 얄팍한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2인실은 쉬지 않고 계속 누군가로 채워졌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수없이 많은 산모들의 선택이 2인실이었으니 2인실은 빌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1인실을 갔어야 했다. 그저 걷기 불편하고 화장실에서 끙끙대는 모습을 누가 보는 게 싫다 정도가 아니라 내 불안정한 컨디션에 맞게 입원실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피곤한 일이었다. 그게 돈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저녁마다 큰아이가 와서 편하게 엄마를 부르지도 못하게 했다. 같이 저녁을 먹을 때는 세상 조용해야 했고, 밥 먹기가 바쁘게 TV가 있는 라운지(?)에 나가야 했다. 온도조절도 여의치 않고 아이가 떠드는 소리도 방해될까 걱정되어 방에 있기가 더 어려웠다. 에어컨을 켜고 끌 때마다 수없이 생각했다.
1인실이어야 했다.
150만 원은 내 몸 컨디션을 위해 아까운 돈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