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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쉬룸 Feb 25. 2024

글태기

언제오나 했다. 

한창 글이 잘 써질때는, 회사에서 2-3편을 하루에 발행하기도 했다. 

요며칠은 문득 '아, 오늘 브런치에 글 안썼네.' 하고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걸리는걸 보면 나에게 글태기가 온 것이 확실하다. 

언제였더라.. 과거에도 나는 이랬던 적이 몇번 있다. 무언가 스피드를 내서 한참 하다가 시들시들해지면서 설렁설렁..그렇게 글을 끄적이지 않는 시간을 꽤나 오래 가진 적이 있었다. 


내게 무언가 큰 일이 생긴건 아니지만, 무언가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상황이 있긴했다. 먼저 그 일들을 해결해야 글감이 떠오를 것 같았고, 나는 현실의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시간이 나면 자꾸 잠만 자려고 했다. 오늘도 오전 내내 침대에서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천장만 바라보다가 이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글을 써본다. 


연애 이야기를 쓰려고 하다가 눈물이 하도 흘러서 또 스트레스를 받길래 가벼운 주제로 넘어가 본다. 나의 연애 이야기는 내 마음의 상처가 조금 더 아물었을때, 그때가 되면 써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제 10개월이 넘어가는 그 사건으로부터 나는 왜 해방되지 못했을까. 이다. 


과거에 얽매이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아갈 수 있겠지만 과거가 자꾸만 나를 과거로 당겨올 것이다. 이럴 때는 마치, 기억을 지워주는 영화 속 여주인공이 되고 싶은 심정이다. 무언가에 얽힌 그 시점으로 돌아가서 그 '무언가'와 관련된 모든 뇌의 기억들을 찾아내어 삭제하고 싶다. 


사실 인간은 어느정도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기에 자기를 괴롭히는 일련의 사건들은 희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능력이 있다고는 읽었으나, 나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추억의 한 페이지에 남은 사건이기에... 

내 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인간도 컴퓨터처럼 delete버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삭제해서 휴지통에 넣고, 휴지통을 비워버려야지.

(그렇지만 미련 철철 넘치는 나란 사람. 정말 삭제할 수 있을까?ㅎㅎ)


나는 기억력이 좋다. 한번 본 시도 곧잘 외우곤 해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암송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고 

대학시절에는 수석으로 졸업하기도 했다. 모든 것을 외우다 보니 시험은 쉬웠다. 

면접을 보던 시절에는 예상질문 리스트에 대한 답변을 모조리 외워버리기도, 

화장품 회사 면접을 볼 때에는 그 회사에서 밀고 있는 제품에 들어있는 영양기능을 가진 화학물질의 이름을 모조리 외워버리기도 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긴 이름이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 상처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늘 생생하게 담겨있고, 

이런 기억들이 나를 끝끝내 괴롭히기도 한다. 


암기력이 좋은 사람이 특별하게 잘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곤 하지만..

딱히..없는 것 같다. 

그저 암기력으로 주위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을 기억했다가, 생일에 그것을 챙겨주는 역할정도 할 수 있겠지..


'이제 와서 시험준비를 할 것도 아니지만.' 이라고 마음을 접어보다가 

'그래도 언젠가 석사를 할 수도 있지.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나의 이 능력이 참 좋게 쓰여지겠자.'하고 

셀프위로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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