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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찬 Oct 30. 2023

군대 갈 적에

사람들은 습관처럼 오해한다.


내가 군대 갈 적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 같은 인간은 군대에 가면 적응을 못한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자살할 거라는 말까지 들었다. 사람들은 나를 대신해 내 군 생활을 걱정했고 나는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어서 빨리 이 병신 같은 곳에서 벗어나 군대로 도피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간 군대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나는 항상 최선보다 최악을 상상하는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내가 상상한 것에 비해 너무 별 것 아니어서 허무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습관처럼 오해한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나를 다 안다는 듯이 걱정한다. 나는 훈련을 받는 것보다 사람들의 조언을 가장한 면박이 더 힘들었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훨씬 편했던 거 같다. 특히 생체리듬이 박살 난 나에게 강제로라도 올바른 루틴(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을 만들어주면서 그간 없었던 생기까지 생겼다.


소위 말하는 부조리들은 내 과거의 경험과 비교해(대학교 때 엄청난 부조리가 있었다) 귀여운 수준이었고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그리고 군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유치한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별것도 아닌 것에 엄청난 자부심과 엄살을 부리는 것 같았다. 마치 복장만 다르지 질풍노도 중학교 교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내 군생활을 걱정하는 편협한 사람들에 맞서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더 열심히 생활했는지 모른다. 군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일은 다 자처해서 했고 분대장부터 시작해 이발병이니 종교병이니 심지어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특급전사 타이틀도 땄다. 말년병장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에 다시 또 무기력에 빠졌지만 말이다.


내 동기들은 군 생활을 하면서 종종 울기도 하였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훈련소 마지막 주 공중전화박스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오열을 하던 동기생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처음에는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길래 저렇게 울 수가 있지라는 불만 섞인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불만은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내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눈물을 흘릴 수 있고 그 눈물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내심 부러웠으니까. 힘들어서 울 수 있는 사람들은 약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건강한 사람이라는 걸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거 같다.


그리고 불현듯 내가 이때까지 얼마나 외롭게 살아왔는지 느껴지기도 했는데 나는 군대에서 정신 차려 회복되는 우울이 아닌 아주 근원적인 우울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하기도 했다. 군대 가면 정신 차린다는 말은 아쉽게도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나는 군대에서나 사회에서나 똑같이 존재론적으로 아파했다.


그렇게 전역을 하고 몇 가지 깨달았던 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그렇게 큰 격차가 없다는 점과 사람들이 걱정할만큼 내가 사회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이지만 깨달았던 거 같다. 그리고 나의 무기력은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쉬이 달라지지 않는 뼛속까지 무기력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새삼 웃음이 나왔다. 


전역하고 한 달도 안 돼서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보통은 3개월 정도는 군대버프라는 것을 받는다고 하던데 나는 그 2년가량 동안의 일이 마치 지난주 일인 것처럼 금세 잊혀졌다. 그렇게나 열심히 외웠던 총기 번호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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