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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찬 Feb 10. 2024

택시 안 단상

젠장,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은 왜 이렇게 달콤한 것일까


택시를 탄다. 13000원에서 15000원. 출근길 비용이다. 예전에는 택시 타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돈이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몇 배의 손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철저하게 시간관리에 실패한 것이고 성실한 대한민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돈이면 비싼 점심을 먹으며 비교적 하루를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데 나의 게으름으로 하루를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나를 패배자처럼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어쩌다가 택시를 탄 날에는 하루 종일 마음이 심란했다. 사회인으로서 부적격한 사람이 된 거 같았다. 너는 문제아야 아무도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하진 않았지만 교무실에 불려나간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어떤 배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보통 택시는 늦장을 부리거나 급할 때 타기 때문에 어쩌다 택시를 타게 된 날이면 왠지 모르게 자포자기 심정이 되는데 그럴 때 택시의 안락한 소파가 마치 안정제라도 된다는 듯 나를 진정시켰다. 어쨌거나 지각을 면할 수 있다는 그 강력한 안정감이 쾌락으로 작용했고 초초했던 마음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사라지는 듯한 그 특유의 느낌이 자꾸만 나를 중독시켜 갔다.


그래서인지 어디를 갈때마다 내 정신과 몸이 택시의 편리함을 기어이 기억해 냈고 내 시간관념은 택시를 탄다는 가정 하의 약속 시간을 잡기 시작했다. 나는 서서히 택시 중독자가 되고 있었다. 가끔 약속 장소에서 누군가 어떻게 왔냐고 물어볼 때면 택시를 타고 왔다는 말이 왠지 부끄러워 버스를 타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지 않는 뻔뻔한 어른이 돼버렸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마치 전용기사를 부르듯 택시를 잡으며 여유롭게 스케줄을 점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택시는 나 같은 무기력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서비스고 다른 소비 활동에 비해 매우 높은 만족도를 준다고 합리화를 했다.


특히 출근길 택시는 아침의 급박한 느낌을 완화해 주기 때문에 나같이 긴장이 높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편리한 기능이었다. 마치 현대 사회의 텔레포트 같다고 느껴졌다. 이동하는 소파라니 나에게는 최고의 서비스인 것이다.


택시를 탄다. 13000원에서 15000원. 출근길 비용이다. 택시 안에서 나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마음을 예열하고 잠깐의 여유를 가진다. 기사 아저씨의 실없는 농담소리와 창문 밖으로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 죄책감이 들지만 택시 안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왜 그리도 평화로운 건지. 악마 같은 포근함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퇴근길에는 택시를 타지 않을 것이라는 담배 같은 위안을 하면서 잠깐 눈을 붙인다. 젠장. 건강에 좋지 않은 것들은 왜 이렇게 달콤한 것일까. 어쨌거나 눈을 뜨면 나는 무사히 도착해 있을 것이다. 내 인생도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어떻게든 돼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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