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썩 긍정적인 편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훨씬 부정적이었다. 집안 분위기도 그랬다. 칭찬은 일절 없고, 지적과 비판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적과 비판을 피하기 위해 움직였다. 학생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인생이 망하기 때문에 공부를 했고, 엄마에게 맞지 않기 위해서 집안일을 했다.
인터넷에 나오는 “이렇게 살면 인생 망한다” 같은 종류의 글을 읽으며,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삶을 살아왔다. 내 인생의 교차로에서는 ‘망하는 길'과 ‘그렇지는 않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으니 늘 절박했다.
시간 낭비하지 말자.
잘못되지 말아야지.
위기 의식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니 작은 위기도 민감하게 감지해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 위기를 꼭 의식했어야 할 상황은 많지 않았다. 별문제가 없는 평화로운 상태였어도 난 늘 걱정을 사서 했다.
남들은 물 밖에서 경치를 즐기는 호수 앞에서도 나는 호수 안에 물고기가 똥을 싼 걸 치우러 가야 한다면서 기어코 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냥 냅두면 되는 것을!
내가 직면하는 건 절경이 아니라, 얼음장같이 차가워 온몸을 조여오는 물이었다. 한숨이라도 잘못 쉬면 기도로 물이 들어가 숨을 턱하니 막고 숨을 못 쉬었다.
이 많은 것들은 나를 믿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나태해질까봐.
사실 잘하는 거 하나도 없을까봐.
남들이 다 무시하는 형편 없는 삶을 살까봐.
안주하고 발전 없는 삶을 살까봐 늘 걱정했다.
도대체 그게 왜 그렇게 걱정이 되었을까. 이게 사실이라고 해도 큰일도 안 나는데.
나는 빚을 진 것도 아니고, 벌여 놓은 일도 없다. 내가 책임질 건 오로지 나 자신과 어디서 얻은 선인장 하나뿐인데.
좀 나태하게 살고, 잘하는 거 없이 평범하게 살고, 살짝 무시 당하고(무시하는 사람이랑 좀 싸우고), 적당히 발전 없는 삶을 살면 안 되는 거였을까.
이렇게 산다고 무슨 큰일이 나는 걸까?
긴 직장생활을 끝내고 지금은 백수 생활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보통 아침 6시 정도에 기상하고,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적어도 나태한 백수는 아닌 거 같다.
그리고 계속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책을 위한 원고도 조금씩 쓰고 있다. 잘하는 거 하나도 없어서 원고가 책으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내가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쩔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