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떤 모임에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그 모임에서 남자친구를 만났는데, 언니와 친하다 보니 언니의 남자친구까지 셋이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어느날 나는 어떤 불합리한 일을 당해서 화가 났고,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고 언니에게 하소연을 했다. 옆에는 언니의 남자친구도 있어서 내 이야기를 같이 들었다. 그 오빠는 가만히 듣고 있더니 “귀엽네~”라고 반응했다.
정말 내가 귀엽다기보다는 별거 아닌 일에 화가 나 있는 게 아이 같다는 뉘앙스였다. 나는 진지한데, 나의 고민을 어린아이가 부리는 투정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른 아량으로 문제 삼지 않았고, 곧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 오빠가 자리를 뜨고 나서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언니가 나를 무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말을 걸어도 대놓고 씹었고, 눈에 아예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화를 내거나 짜증내지도 않고 평범하게 있지만 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이다. 남자친구가 나에게 귀엽다고 한 발언 때문에 언니의 기분이 나빠진 것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억울한 감정보다도 나 때문에 언니가 화가 났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변명할 것도 없는데 변명하고, 사과할 것도 없는데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
보이지도 않는 존재인 나를 앞에 두고 냉정한 표정으로 있던 그 언니는 사과가 마음에 들었는지,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평범하게 나를 대했다. 본인이 왜 그랬는지, 아까 어떤 상황이었던 건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그냥 우리 사이에 갈등이 아예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 나도 일을 더 키우고 싶진 않아 그대로 넘어갔다.
내가 조금 덜 귀여운 사람이었다면, 사건이 다르게 흘러갔을까?
나는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어디가서 무섭단 소리를 더 많이 듣는다. 그때 당시에는 외모에 신경을 더 안 썼다. 카고 바지 같은 걸 입고 다녔고, 고도 근시 교정용 안경을 꼈고, 메이크업이라 봤자 겨우 선크림을 바를까 말까 할 정도였다.
결백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썼지만, 사실 내 외형은 이 상황에서 언급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귀여움이 치명적이든 소수에게만 먹힐 만큼 마이너하든, 귀여움에는 잘못이 없다.
언니는 그 상황에서 불안과 불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아마도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기분이 상한 걸로 쉽게 뭐라고 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을 거다. 그래서 그 불쾌한 감정을 해소할 다른 대상이 필요했다.
탓할 사람을 따로 두는 건 문제를 당장 눈앞에서 치워버리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그 사람을 응징하기만 하면 된다. 벌을 받은 사람이 생기면 잘못된 일을 개운하게 종료할 수 있다.
당사자들끼리는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서운하게 한 남자친구와 다음날 웃고 데이트하는 자신이 비참해지지도 않는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가끔씩 떠오르는 상처로 남았다. 처음에는 언니 때문에 상처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억이 되풀이되면서 내가 가장 원망했던 사람은 언니도, 오빠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가 가장 원망했던 건 나 자신이었다.
부당한 상황에서 맞서 싸우지 못하는 쫄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이 있었어도 언니와 잘 지냈던 속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내가, 나를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가 이들에게 만만해 보이는 행동을 했던 게 아닐까.
내가 이 둘 사이에 끼어 있던 것부터가 잘못이었을까.
내가 이야기를 했을 때 정말 귀여웠으면 어쩌지.
그때 당시 나에게 잘못이 있다는 언니의 암묵적인 주장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비뚤어졌거나 고장났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양육자 취향에 안 맞는 특성일 뿐이거나, 어리기에 능숙하지 못했을 뿐이었던 미흡함을 나에 대한 문제로 여기고 비난받아 왔다면 이런 공격에 취약하다. 별걸로 다 트집 잡히던 삶을 살아왔던 우리는 자기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반응에 휘둘리기 쉽다.
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상대방의 기분은 내 책임이 아니다.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는 행동을 했다고 내 잘못은 아니다. 객관적인 잘못도 없는데 자신의 기분이 상했다고 상대방에게 잘못의 원인을 뒤집어 씌우고, 그 감정을 미성숙하게 해소하는 게 잘못된 거다.
더구나 나를 이루는 특성이 거슬린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별, 절교, 결별, 의절 중에 하나를 해야 한다.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심을 품게 만드는 이와는 어떤 이득이 있더라도 상종하지 말자. 이는 나르시시스트가 자주 하는 가스라이팅 방법 중 하나이며, 결국엔 나를 좀 먹는다.
나에게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굳건히 믿고 대응했다면, 어떤 행동을 했어도 그게 상처가 되지 않았을 거다. 똑같이 사과를 했더라도,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것처럼 화를 냈더라도 괜찮았을 거다. 그리고 이 기억은 상처가 아니라, 황당한 에피소드의 ‘오징어 지킴이’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었을 거다.
상처로 기록된 많은 순간을 돌아 보라. 기억을 상처로 만든 건 결국 가장 중요한 순간에 돌아선 나였다. 이 세상에는 무조건 남탓을 하는 사람도 많고, 누구의 잘못이 아닌 일도 많이 생긴다. 그리고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책임이 떠넘겨지기 쉽다. 중요한 순간일수록 나를 더 믿어주자.
우리의 쁘띠 뽀짝 귀여움에는 잘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