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와 절교한 적이 있다. 1년 정도 엄마와 만나지 않았고, 전화나 문자도 모두 받지 않았다.
엄마의 기분이 상할 만한 이야기를 꺼낸 건 나였기에, 이 사태가 나 때문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닌 일이었지만, 엄마가 분명 기분 나빠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때 나는 치사한 보복의 하나로 엄마가 기분 나빠할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말했다. 아니, 잠깐, 보복이라니. 이 단어를 쓰는 것조차 감격스럽다. 엄마에게 버림받을까 봐 밤잠을 못 이루던 어린 나는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참 많이 컸다. 이제는 내 집이 따로 있어 엄마에게 쫓겨날 걱정이 없으니 이런 일도 벌인다.
엄마는 며칠 후 ‘이제부터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너네끼리 알아서 잘 살아라’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다. 너희 같은 딸들은 필요 없으니, 다시는 자신을 볼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익숙한 패턴의 문자를 한동안 심드렁하게 바라봤다. 이 협박의 역사는 유구하다. 내가 크고 엄마가 힘이 약해지면서 협박으로 삼는 게 점점 보잘것없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협박의 최신 버전은 내가 엄마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메시지를 주며 무시하는 거였다. 이때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엄마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화해를 먼저 시도하면 말 그대로 재앙이 시작된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나는 잠자코 엄마의 부름을 기다려야 했다.
엄마의 마음이 풀리기까지 5개월이 걸렸다. 그 사이 어버이날에 보냈던 봉투는 나에게 다시 돌아왔고, 늘 초라했던 내 생일은 더 쓸쓸히 지나갔다.
엄마가 나를 호출한 건 추석 연휴를 앞둔 시점이었다. 화해의 단계이다. 여러 번 겪어 봐서 어떻게 진행될지는 뻔히 알고 있었다.
엄마의 기분이 상한 이후로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던 밥상은 진수성찬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맛있게 먹어야 하고, 엄마의 설교를 조금 들은 후 웃어야 한다. 그러면 평화의 단계로 넘어간다. 이 단계가 되면 엄마는 며칠 동안 세상에 둘도 없는 다정한 사람이 된다.
평소였다면 엄마의 부름을 거절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나는 지쳐 있었고, 엄마를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엄마는 화해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번 화해는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미루기로 했다. 그동안 엄마가 수십 번은 요청해 왔을 절교를 이번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에는 나도 신경이 많이 쓰였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부모와의 관계가 탈락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감정은 빠르게 정리되고 삶은 오히려 그전보다 안정되어 갔다. 상처를 입고 있을 때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건 그곳에서 도망가는 거였다. 엄마의 장단을 계속 맞추는 건 상처 받는 나를 보호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화해는 거절하고, 힘든 관계에는 결단을 내렸다. 결정을 내린 이유가 얼마나 합당한가를 판단하거나 재지 않았다. 그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만 고민하고, 그 행동을 실천으로 옮겼을 뿐이다. 이것이 진짜 나를 지키는 용기다. 내가 시도해 봤던 어떤 실천보다도 가치 있었다.
엄마가 아직도 과거와 같은 패턴으로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면 절교는 고려해 볼 만한 중요한 옵션이다. 절교라는 단어를 쓰기는 했지만,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결심까지는 필요 없다. 우선 안전을 느낄 만큼 거리를 두고 나서, 엄마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엄마와 어느 정도로 가깝게 지내면 좋을지 거리감이 생길 수도 있고, 다시는 만나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이 들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괜찮다. 진짜 자신을 위한 거라면 어떤 형태의 답이든 옳다. 이때 엄마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길 바란다. 엄마를 위해 나의 안전을 양보하지 말라.
지금 나는 엄마와 가끔 만나고 있고, 더 상처받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날 이후로 우리의 관계는 많이 달라졌다.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나를 상처 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무기력하던 과거와 달리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