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잼써 Feb 20. 2024

엄마에게 신장을 주려다 죽은 둘째 딸을 기리며


며칠 전 설이었다. 각자 여러 곳에서 바쁘게 살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저마다의 이야깃거리를 들고 왔다.


조카의 취업이 아직 됐다는 이야기, 고모네 부부가 일전에 어떤 일로 심하게 다퉜고 그 일로 인한 갈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을 전해 들었다.


그렇게 전해 들은 이야기들 중에, 그야말로 '친구의 친구'에게 전해 들은 아주 짤막한 사실을 적어 본다.




한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어릴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둘, 막내 아들이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신장이 아주 오래 좋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에게 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다. 첫째 딸은 자신의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막내 아들은 군대에 있어서 신장을 내어줄 수 없었다. 


그래서 둘째 딸이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둘째 딸은 수술 후 깨어나지 못했고, 어머니의 신장 수술도 실패로 끝났다.


그 후 (죄책감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어머니는 둘째 딸의 흔적을 다 지웠다. 물건뿐 아니라 사진도 전부 없애 버렸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막내 아들과 아머니는 겉으로 보기에 잘 지낸다고 한다. 첫째 언니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내가 아는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들은 이야기를 전부 그대로 적어 보았다.


황당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쏟았다.


가족들 사이에 사연과 감정은 너무 깊고 복잡할 테니, 완벽하게 타인인 내가 넘겨 짚어서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다. 


그렇지만 그 복잡함과 뒷이야기와 상관 없이, 둘째 딸의 죽음이 슬펐다. 20대가 겪어도 될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수술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둘째 딸의 상황은 감내하기에 너무 무거웠을 거다.


좋은 사람인 척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도 아마 그 딸의 아픔 중 나와 겹치는 점에 눈물을 흘렸을 거다.





그날 밤, 잠이 잘 안 왔다. 불을 끄고 누웠는데도 얼굴도 모르는 그 둘째 딸이 자꾸 생각났다. 한참을 뒤척이고 있는데, 갑자기 방구석에서 밝은 빛이 나왔다. 체중게에서 나오는 LED 불빛이었다.


우리집 체중게는 올라가면 화면이 밝아지며 몸무게가 표시되평소에는 화면 자체가 꺼져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런데 원인 모를 문제 때문에 가끔 0kg으로 표시되면서 화면이 켜진다.


그러면 나는 농담으로 귀신이 몸무게를 재보는 중이라고 한다. 물론 귀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늦은 밤에 체중게가 켜져도 썩 무섭지 않다. 체중게 오류가 심해질 때도 있는데, 이사 오고 나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0kg의 무게를 표시해주는 체중게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귀신이 왔나?'


만약 귀신이 온거라면, 그 둘째 따님이 오셨길 바랬다.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짧게나마 기억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걸 알고 갔으면 했다. 


그리고 어떤 선택으로도 내몰리지 않는, 아주 가벼운 상태로 존재하길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날 사랑하지 않았대. 다행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