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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준 Jun 11. 2020

어서와 결혼은 처음이지??-제1화-

제1화 온도차이

한 남자의 온도

때는 2018년 9월 끝무렵 아주 화창하다. 하늘은 저 멀리 손도 닿지 않을 듯 높아져 버렸고, 바람에는 갈색 향기가 묻어 있었다. 날씨는 선선하고 긴팔을 준비해야 할 만큼 서늘한 느낌이 났다. 쓸쓸함의 기운이 나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래서인지 달콤할 것 같은 가을 갈색 향기는 내게 은행 냄새의 지독함과도 같았다.

2018년은 내가 재단과 함께 예술가 교사로서 중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을 때였다. 함께 협업하는 예술가 선생님 두 분과 함께 팀을 꾸려 아이들에게 중요한 예술체험과 미적 체험을 알려주는 수업이었다. 한창 수업을 하고 있을 때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 괜찮은 사람 있는데 소개받을래?"라는 말이었고, 이 말은 내가 집에서 택배를 뜯을 때보다 더 큰 희열을 주는 말이었다. 당연히 "오케이"라고 외치고, 그녀의 연락처를 받았다. 수업이 끝나고 받은 연락처로 문자를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직업의 특성상 퇴근시간이 일정치 않다. 하지만 많은 직장인들의 6시 퇴근보다는 일찍 끝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날도 일을 끝내고 팀원들과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소개받은 고병준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다. 금방 올 거 같았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약 5시간 후에 오후 10시가 막 넘는 시간에 "네 안녕하세요."라는 아주 짧은 답장이 왔다. 처음에 그 문자를 읽었을 때는 "뭐지 이거 트릭인가?"라고 생각했다. 분명 누군가의 음모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잠겨"네 안녕하세요. 퇴근 잘하셨나요?"라고 보낸 뒤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음모론자가 되어 잠이 들었고 다음날 퇴근길 즈음 문자를 한통 받았다. "네 어제 퇴근 잘했어요." 나는 또다시 음모론자가 되어 "어제 퇴근을 오늘 퇴근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누군가 날 놀리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오늘 보낸 문자를 내일 저녁에 되서야 알수 있는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를 주고 받다보니 왜 이렇게 답장이 느린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 여자의 온도


2018년 9월 무더위가 가시기 전 가을이 다가오려다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8월만큼 더운지라 많이 지쳐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근처다. 태어나기를 이 동네에서 태어나 아직도 이 공간 안에서 존재한다. 길을 지나면 대부분 낯익은 동네 사람들, 한 블럭마다 인사를 하는 나의 모습에서 동네 유지의 힘을 볼 수 있었다. 내 직장은 양재에 있다. 그래서 상암동에서 양재까지 출퇴근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에너지를 다 소진했다. 그러다보니 출근해서 해야 할 업무 이외의 모든 일에 집중을 못했다. 물론 업무에도 집중을 잘했을까? 하는 질문이 생기긴 한다. 일상과 출퇴근에 지쳐 있던 어느 날 지인에게서 "괜찮은 사람 있는데 소개 받을래?" 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지라 "그래" 라고 말하고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 일이 바빠 내 마음에 소개 받은 일을 한쪽 구석에 밀어두었다. 업무를 하면서 핸드폰 볼 시간이 없어 퇴근하며 핸드폰을 만질 수 있었다. 하지만 퇴근 할 때 루틴이 있어 영어 라디오를 꼭 듣는다. 한참 집중해서 들으며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핸드폰 다른 어플에 집중 했다. 소개받은 사람에게 연락이 온 것을 그제서야 확인 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소개받은 고병준이라고 합니다." 라는 문자가 왔다. 답장을 하려는 찰나 언니네 귀염둥이 조카 3인방이 왔다. 그래서 조카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다시 답장을 보내려고 핸드폰을 열었을 때 저녁 열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네 안녕하세요." 라고 답장을 보내고 그대로 손에 핸드폰을 쥔 채 잠이 들었다. 다시 아침이 되면 나는 서울북서쪽 끝자락 상암동에서 남동쪽 양재까지 서울 한복판을 가로질러 출근 전쟁을 치뤄야 한다. 그렇게 나의 가을 에너지는 방전되기전 배터리마냥 충전 해달라는듯 깜빡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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