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패
실패라는 어둠이 내려앉을 때 누군가는 그 실패를 벗 삼아 나아갈 길을 찾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 실패가 교훈이되 성공으로 가는 문이 열리기도 한다. 나에게 실패는 교훈이나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니다. 그냥 실패는 실패다. 실패가 성공으로 가버리는 순간 성공의 기분에 심취해 더 이상 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게 바로 "효도"다. 나에게 있어 효도는 항상 실패다. 35년을 살며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많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들이 발판이 돼 현재 나를 만들었고, 나는 실패가 성공의 열쇠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매번 나에게 있어 효도는 실패다.
2010년 무더운 여름 건강이 좋지 않아 식당을 접으신 어머니가 소일거리라도 할 겸 공공근로를 신청하셨다. 매일 아침 거리의 쓰레기를 주우며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하셨다. 나는 2010년 당시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 집에서 하루하루 지겨움과 싸우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한마디로 실패의 실패의 실패를 거듭하고 번 아웃된 상태였을 것이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일을 마치신 어머니가 숨을 헥헥거리며 급하게 집으로 들어오셨다. 천천히 와도 되는데 굳이 나와 함께 점심을 먹고자 서두르신 모양이다. 어머니의 손에는 계란과 닭가슴살이 들려있었다. 나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점심을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지라 어머니의 "점심 금방 해줄게"라는 말을 흘려듣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 손으로 직접 차려 먹을 수도 있지만 귀찮아서 빈둥빈둥거리고 있었다. 밖에서 요리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제 밥 먹어"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점심을 먹으러 나와 삶은 달걀과 퍽퍽하게 익어버린 닭가슴살을 보고 어머니를 나무랐다. "이게 뭐야 이렇게 할 거면 점심 안 먹어" 버럭 화를 내며 어머니께 화를 냈다. 평생 나에게 슈퍼맨이자 든든한 멘토였던 어머니의 눈가가 흔들리고 어린아이가 울듯 입을 삐죽거리셨다. 난 어머니의 울컥하는 모습을 봤다. 그러면서 "나는 네가 좋아하는 거 사서 부리나케 달려왔는데..." 하며 말을 흐리셨다. 그날 내가 어머니께 왜 화를 냈는지도 모르고 밖으로 뛰쳐나와 한적한 공원으로 달려가 눈이 빨개질 정도로 울었다. 마음이 진정되자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다.
이 A4지 반 페이지도 안 되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나를 매번 효도에 실패하게 만든다. 벌써 10년이나 지난 이야기가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사과를 했고 용서도 구했고 감정도 다 풀었다. 그런데 아직 나에게 미해결 된 과제처럼 효도라는 것이 실패로 남아있다.
그런데 나는 항상 효도에 실패하고 싶다.
효도에 실패해야 그다음 효도를 성공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하지만 효도에 성공이 아닌 실패를 하고 싶다. 그래야 그다음 효도를 성공하기 위해 애쓸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직업에서 성공을 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다른 성공을 하기 위해 또다시 나아가야 할 길을 찾는다. 혹은 성공한 삶을 계속 유지하려고 애쓸 것이다. 효도는 현상유지가 없다. 잘해도 잘해도 항상 부족하고 미해결 된 과제처럼 남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효도에 성공하고 현상유지를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효도에 성공할까 봐 두렵다. 35년 이후의 삶에서 나는 항상 효도에 실패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효도할 때가 되면 부모님이 그것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돌아가신다고... "그전에 성공해야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매번 실패하는 삶 속에서 효도에 성공하기 위해 실패하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실패는 좋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실패한 사람에게는 애써 위로를 해주며 "그것이 발판이 될 거야"라고 말한다. 나는 효도에 있어서 만큼은 실패가 성공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직업에서 높은 성취를 이뤄 가정도 꾸리고 재물도 많이 모았다. 마치 효도에 성공했다는 듯 의기양양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었다. 그렇게 재물로 부모님 관광도 시켜드리고, 용돈도 많이 준다는 것을 자랑처럼 여긴다. 나는 관광시켜드린 것을 더 좋은데 모시지 못해서 실패했다 느끼고, 용돈이 아무리 많아도 더 많이 못 드려 실패했다 느꼈으면 좋겠다. 그래야 "자식으로서의 도리는 다 했어"가 아니라 더 잘해드려야지 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번 더 잘해드리려 효도에 실패한다. 실패를 극복하지 않고 유일하게 실패하고 싶은 것은 바로 "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