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인 합숙캠프를 꿈꿨지만 나도 함께 한 밀착캠프가 되고 말았다
도이수텝(Doi Suthep) 국립공원에서의 1박 2일 야영을 하는 날이 왔다. 도이(Doi)는 태국어로 산이라는 뜻인데 도이수텝에서 보는 치앙마이 야경이 유명하다. 도이수텝은 아이들이 지내는 쁘렘 국제학교에서 대략 41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해발 1676m라고 한다. 동네 뒷산 보내는 수준이 아니었거늘 나도 함께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만 친정엄마는 혼자 쁘렘 수용소에서 이틀을 보내야 했다(쁘렘의 부지 자체는 넓으나 외진 곳에 있고 달리 할 것이 없다. 유배지와 같아서 엄마랑 나는 쁘렘 수용소라 불렀다). 친정엄마를 두고 가는 내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만 야영에 보내자니 그건 더 불안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간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산에 가기 전 강을 따라 보트를 탔는데 보트 타면서 보게 되는 것을 그리는 과제가 있었다. 과제가 영어로 써 있으니 영어 까막눈인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과제를 설명해주니 그제서야 열심히 관찰하고 신나게 그렸다. 아로•노아가 그리는 건 좋아하는 편이고 잘 그리니까 선생님들 반응이 좋았다. 그러니 또 자신이 붙어서 아이들도 신나 했다.
점심을 먹고 이동했다. 여러 차례의 커브길을 돌고 돌다 머리가 핑 돌 때 즈음에 비로소 도이수텝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와! 탄성이 먼저 나왔다. 대자연! 공기가 확 달랐다. 산장에 짐을 풀고 액티비티가 시작되었다. 보물찾기를 하듯 나뭇가지, 5가지 색깔의 꽃, 돌, 부드러운 것, 깃털, seed pod 등을 찾는 건데 이것 또한 영어를 알아들어야 가능한 것이다. 내가 없었으면 아이들은 당연히 겉돌았을 것이다. 뭘 찾으라는 거야 하고. 설명을 해주니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찾았다. 깃털이라곤 전혀 없어서 다른 팀은 못찾고 있었는데 눈 밝은 노아가 깨진 알에 묻은 깃털을 찾아 이겼다! 노아는 ‘I am done!’이라며 기세 등등해 있었다.
산에 널린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것도 있었다. 치킨 먹다가도 남은 닭뼈로 공룡뼈 만드는 노아에게 역시 강한 분야이다. 노아는 독수리를 만들었다.
문제는 저녁 식사 후 게임시간이었다.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거다. "뭐래는 거니?"라고 하니 아로 왈, "엄마,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겠는지 아시겠죠?"
정말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게임의 룰을 영어로 이해해야 게임이고 뭐고를 하는데 그냥 멀뚱멀뚱 있었겠구나. 영어캠프가 아니라 액티비티 캠프여서 영어가 필요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생존영어 + 눈치 + 감이면 무난히 해낼 거라 생각했다.
무식해서 용감했다. 합숙캠프가 만만한 게 아니었다. 애들이 눈치껏 할 수 있는 인생의 경험치가 높은 것도 아닌데 영어도 안 되는 애들을 합숙캠프로 보내버렸으니 말이다. 게다가 연령도 안 되는 노아까지.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은 대개가 태국 내 다른 국제 학교를 다니다 온 아이들 또는 영어권에서 온 아이들이라 영어가 유창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룰을 알려주니 잘 했다. 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 새 어둑해졌다. 밤엔 전등을 켜고 깜깜한 산길을 걸었다. 유소년 캠프라기보다는 청소년 캠프 수준인데 내가 없었으면 아이들이 너무 힘들었을 거 같다. 그래도 내가 보조자로 있으니 아이들도 즐겁게 어울리고 아로는 금새 자신감에 취해 "엄마, 나 선생님 앞에서는 영어가 자동으로 나와요"라고 하더니 나중엔 "엄마. 한국어 생각이 안나요."라며 오바를 했다.
낮에 나뭇가지와 잎으로 독수리를 만들어 2등을 한 노아도 신이 났다. 뜬금없이 나한테 ‘등’이 영어로 뭐냐고 하길래 업어 달라고 하려는 건가 싶어서 back이라고 알려줬다. 그랬더니 친구한테 가서 I am two back!!이라고 한다. 자기 독수리 작품이 '2등'이라는 걸 말하려고 했던 거다. 오늘의 영어. I am two back(나 2등이야).
잘 때가 되자 산 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밖에 비가 와서인지 개미들이 죄다 산장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뜨거운 물도 안 나오고 찬물 샤워에 개미떼와 함께 밤을 보내야 한다니. 개미 몇 마리 수준이 아니라 민족의 대이동마냥 떼를 지어 벽면을 기어 다닌다. 그 장면이 어마어마해서 선생님에게 말했더니 개미들도 비를 피해 들어오는 것 뿐이고 물지는 않을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개미약 같은 걸 주지 않나 기대했는데 불교국가라 그런지 개미 한 마리 죽이지 않는 듯 했다. 하루 하루 자는 게 도전이다. 그래도 전날보다는 만 배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다음 날, 개미떼의 공격을 받지 않고 무사히 살아 남았다. 한 쪽 벽면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새까맣게 개미떼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기적이다. 아침엔 망원경을 주고 새를 관찰하는 탐험을 했다. 새소리가 나는 나무를 찾아 새를 관찰하며 새소리와 새의 모양을 매치하는 것이었다. 탐험에서 돌아오니 하얀 줄로 테두리를 만들어 놓고 제기같은게 바닥에 놓여 있었다.
'아이고..이건 또 무슨 게임이길래...'
트라이도스 캠프의 게임은 정교하게 잘 디자인 된 것이긴 했다. 환경교육과 관련된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었다. 다만 내가 얼른 캐치해서 애들에게 알려주기가 어렵긴 했지만 아로•노아는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다. 아로가 봐도 선생님들이 게임을 잘 만드는 거 같단다.
점심을 먹고 이제 돌아가겠거니 했다. 친정엄마도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도이수텝 사원을 간단다. 하필 비가 쏟아졌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설마 갈까 싶었는데 선생님들은 당연하다는 듯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아이들도 군말 없이 따라가더라.
산 속에 비가 내리니 내려가는 길은 흙탕물이 되었다. 양말과 신발이 홀딱 젖은 채 어렵게 산길을 내려왔거늘 이젠 또 사원으로 올라간단다. 계단이 300개는 되어 보였다. 우산 쓰고 올라가게 하기는 되려 불편해서 어른용 우비를 사서 밑단을 잘랐다(나중에 보니 사원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나 전원 모두 빗 속에 300여개 계단을 올라갔다).
사원에 오르니 아로는 몸이 찝찝하니 눈이 풀려 있었다. 마침 배낭에 아쿠아 슈즈가 있어서 갈아 신기고 바지도 갈아 입혔더니 컨디션이 회복되었다. 사원 안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했는데 벗은 김에 사원에서 내려올 때도 맨발로 내려왔다. 정말이지 이건 청소년 캠프같았다. 사정 봐주는 것 없었다.
‘왓 프라탓 도이수텝’은 볼 만한 사원이긴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사원 안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는데 비 쏟아지는 타일바닥에 맨발로 다니자니 미끄러질까봐 걱정되었다. 그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겠지만 추억이라는 이름의 개고생으로 기억될 것이다.
사원을 본 후에야 숙소로 향했다. 도착하니 5시 정도가 되었다. 씻고 밥 먹을 줄 알았는데 도착하자마자 수영할 사람은 수영장 가고 남아서 쉴 사람은 쉬라고 했다. 딱 한명만 남고 죄다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아로•노아도 수영장으로 직행했다. 정말이지 다들 에너지가.
내일도 야외활동이 있다는데 게임 룰이 눈치로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해를 하면 재밌지만 못하면 지루할 터인데, 내일도 내가 아이들 통역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일일 스탭으로 동행해도 되는지 물어보니, “You definitely go!”하며 반색을 한다.
사실 중국인 아이가 하나 있는데 맘에 안들면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선생 팔을 물기까지 했다. 영어는 유창해서 언어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 아이와 중국어로 대화하며 마음을 좀 달래줬다. 그런데 내가 그 아이를 중국어로 커버해준 것이 선생님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오히려 내게 고맙다고 했다.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말 안통하는 우리 애들과 그 중국인 아이만 내가 커버해도 큰 짐을 더는 셈이 된 것이다.
이렇게 나는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아이들 캠프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과의 형평성도 생각해야 하니 우리 아이들만 챙기기보다 다른 아이들도 챙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많이 했다. 캠프에 온 아이 중 home sick이 심해서 캠프를 중단하고 돌아가기로 한 아이가 생겼다. 왜 가려고 하냐고 물어보니 게임이 너무 싫단다. 게임이 두렵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그 아이가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나도 영어를 잘 못해서 게임이 두렵다며 아이에게 공감을 해줬다. 대화 끝에 캠프를 포기하려던 그 아이도 마음을 고쳐먹고 결국 캠프 완주를 했다(3탄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