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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우경 Jan 13. 2019

미원이라도 넣으랴?

- 며느리가 배워야지

미분 적분의 개념도 모른 채 대학을 갔다는 게 스스로도 대견하지만 이달치 대출이자 계산에도 써먹지 못하는 걸 배우느라 매일 밤 열시까지 학교에 갇혀 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 주기율표를 원소 하나 틀릴 때마다 매 한대씩 맞아가며 외웠는데 대체 그걸 어디다 써먹냐구.  

 
미적분 대신 부가세 계산방식을 배웠다면 어땠을까. 주기율 대신 염화나트륨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장아찌 비율 같을 걸 배웠다면. 우리가 배워 아는 그 모든 지식들 중에 삶에 진정 필요한 것들의 비율은 단언컨대 소주 도수 이하. 장을 담은 후 된장과 간장으로 나누는 장 가르기는 반드시 그 19.5% 안에 들어야 한다고 믿는데 아뿔싸, 배운 적이 없다.  
 
고백하거니와 오늘까지도 나는 된장과 간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랐다. 매일 된장찌개를 먹으면서도 장독에 메주 넣고 물 붓고 소금 넣은 다음의 일을 알지 못했는데 어머니는 보름 전부터 바람이 덜한 날을 기다리셨단다.  
-장 달일 때 냄새가 나거든. 이웃들에게 퍼지면 괴롭지.
그런데 오마니, 여기는 이웃도 없고 인적도 없는 골짜긴디요.  
 
보름 기다린 일 치고 일의 졸가리는 단순하다. 메주를 장독에서 건져 으깨고 장독에 남은 소금물을 끓이면 끝. 으깬 메주가 된장이고 끓인 소금물이 간장이다. 장 담을 때 메주를 고운 망에 넣어 담았으므로 망을 건져 메주를 꺼내고 으깨어 준비된 독에 넣고 원래 독에 남은 소금물을 솥에 옮겨 끓인 다음 새 독에 부었다. 뜨거운 간장이 독 표면으로 배어 나왔다. 독이 숨을 쉰다더니, 오. 나머지는 설거지와 뒷정리. 이제부터 필요한 건 오로지 오래된 시간.   
 
-이게 다야?
-왜, 미원이라도 넣으랴? 
 
밤꽃이 지는데 해마다 밤꽃이 질 무렵이면 어머니는 혼자 장을 가르고 간장을 달이셨을 테지. 이웃들이 있거나 없거나 바람 자는 날을 택하고 혹여 동티 있을라 마른 장작도 고르시면서. 그런 세월이 꼬박 40년. 생에 필수불가결한 배움들은 정작 가까이에 있었는데 나는 무얼 배우려 30년을 서울에서 떠돌았을까. 주기율 따위나 중얼거리면서, 장 가르는 법 하나 배우지 못한 채. 오마니, 이제 아들이 배울게요. 많이 가르쳐주시라구요.   
 
-응? 며느리가 안배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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