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함꼐한 반려견과 이별하는 방법
레미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초등학생 때이다. 어느 공장 사무실 찬 바닥 위에서 홀로 지내는 아이를 안쓰럽게 생각한 엄마는 공장 주인 허락을 받고 우리집으로 데리고 왔었다. 어찌나 새하얗고 순하던지 단번에 우린 각별한 사이가 될 거라는 확신을 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 이야기를 자주 레미 귀에다 대고 말했고, 모두가 잠든 밤엔 레미는 졸린 눈을 게슴츠레 떠가며 항상 내 옆에 지켜 주었다. 내 생에 첫 온전한 사랑이었다.
레미가 하늘로 간 그 날, 갑자기 상태가 안좋아져 응급으로 수술하다 심정지가 왔고 눈도 차마 감지 못한 채로 레미는 그렇게 숨을 멎었다. 이미 시작된 사후경직 때문에 순백색의 털로도 감춰지지 않는 육신의 창백함이 내 주위 모든 것을 얼려버렸다. 나이를 많이 먹은 레미가 하루하루 좀 더 오래 머물다 가기를 바랬지만 그에게 죽음이 도래하고 있음을 마냥 외면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레미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이 온다면 기쁜 마음으로 레미에게 온 영원의 시간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빌어주어야겠다고 분명 수십 번 수백 번 다짐했는데 급작스레 찾아온 죽음은 모든 걸 잊게 해버렸다.
이별이란 것이 매번 낯설지만서도 그가 남기고 간 이별은 약간은 버거울 만큼 생소했다. 레미와 떠나고 난 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을 되짚어보다 기억에 남는 잔상들이 뚜렷하지 않아 더 설움이 북받쳐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레미가 남기고 간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단어로 나열해보자면 사랑, 행복, 숭고, 이해, 위로 등 온통 긍정 투성이다. 이러니 어찌 슬픔으로 끝을 마무리 할 수 있겠는가. 레미와의 마지막을 슬픔으로 장식하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해보고자 했다. 내가 레미를 만나 오랜 시간 행복했던 것처럼, 어느 모를 누군가의 행복을 바래보다 뭔가를 해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생겼다. 곧장 책상에 앉았다. 가족을 기다리는 동물들과 인간이 서로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여러 생각들을 종이에 마구 끄적였다.
그렇게 애써 미뤄두고 있는 개발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가족을 기다리는 동물들을 임시 보호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무작정 연락해보기도 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차곡차곡 레미가 나에게 남겨준 행복을 모아 전달해줄 날들이 곧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의 질긴 감정을 조금씩 꼭꼭 씹어가며 소화시키는 중인 것 같다. 느린 작별 인사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레미는 마지막까지 내가 삶을 좀 더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고 갔다. 레미와 나 사이엔 행복만 있었음을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