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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 Feb 19. 2024

생(生)과 사(死)

 몽골을 여행하려면 하루에 적어도 4시간, 길면 8시간씩 8인승 푸르공을 타고 대지를 달려야 한다. 울퉁불퉁 끝이 안 보이는 길을 달리다 보면 평상시에 볼 수 없던 것들을 마주할 수 있다. 수백 마리 양 떼들, 티끌만 한 모래알이 모여 만든 언덕배기, 그 속을 가로지르는 낙타 군단. 이 속에서 몸을 한껏 웅크려 보기도 하고 근육 곳곳을 이완시켜 모종의 해방감을 맛보기도 한다.


 그렇게 길을 지나다 보면 땅 위에 존재하는 생(生)과 사(死)를 마주하게 된다. 막 걸음마를 뗀 것 같은 작은 양이 애를 써가며 무리를 쫓아가는 모습. 그와 반대로 언제 숨이 끊어졌는지 모를 거대한 말의 사체가 덩그러니 지면 위에 놓여 있는 모습. 그 사후의 육신은 닳고 훼손되어 구더기가 들끓고 주변에는 독수리 무리가 눈에 불을 켜고 도사리고 있다.


 이 덩어리에는 어떠한 안식도, 애도도, 하물며 작은 구속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포식자가 어느 날 우연히 운 좋게 마주친 배부른 한 끼 식사일 뿐이다. 평소 떠올리는 죽음의 형태와는 사뭇 다르다. 우연히 마주한 죽음의 실체는 생각보다 더 기구하고 파괴적이다. 모든 존재가 죽음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날것의 죽음은 그러기에 더 고귀하다. 사막으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 한 점 덕분에 흩날리는 가벼운 모래알만이 부드럽게 사(死)를 위로한다. 그 움직임은 땅 위에서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이 되어 존재를 마침내 종말시킨다.


 몽골에서 느꼈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 있는데 아마 이런 날 것에서 쟁취할 수 있는 자유라 생각된다. 이곳에는 구역질 나는 증오도, 미화된 도피도, 피상적인 이기도, 고결한 척하는 권력도, 낡아빠진 관습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땅 위에는 오직 생과 사만 있을 뿐, 그저 삶과 죽음으로 이루어진 산물이 한 세대를 넘고 여러 세월을 지나친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들어 가고,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휘발된다. 죽음 앞에서 어떠한 저항도 없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며칠 후면 다시 원래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모진 길도 거침없이 굴러가는 푸르공의 바퀴가 아닌, 사무용 바퀴 의자에 하루종일 앉아 몽골에서 찾은 낯선 감각을 차례차례 잊어가며 늘 그래왔던것처럼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을 테다. 그렇게 살다 보면 조금씩 다시 내 몸에 금이 갈 테고, 그 위로 고집스러운 단념을 애써 덧바르고 있을 때,


 그럼, 그때 낯선 자유가 있는 몽골에 다시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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