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재회한 어느 날의 이야기
기억을 더듬어 지난날을 회상한다. 1년 전, 스위스에서 보낸 여름. 나는 황홀경에 도취되거나 모든 장면을 마음에 새기곤 했다. 인터라켄의 낡은 호스텔에서 만난 해먹, 다정하고 따뜻한 동행들, 쌀이 있는 저녁 식탁, 거실의 나무 피아노, 여러 도시에서 스쳐간 많은 여행자와 잊지 못할 순간들을. 그로부터 세 번의 계절이 흘렀다. 우리는 그 해 여름을 그리며 마음을 모았다. 아마도 지도의 한가운데쯤. 인터라켄에서 그랬던 것처럼, 목적지는 중심에 있는 기차역이 된다.
9개월간 지구 탐험을 마친 그는 말한다. “이집트에서 만난 사람들이랑 방콕에 갔어. 그리고 밤에 다 같이 클럽에 갔다가 퇴짜 맞은 거야. 그때 우리는 전부 슬리퍼 차림이었거든.”
세 개의 선택지를 내밀자, 두 남자는 고민에 빠진다. 건강한 음식을 먹느냐, 다양한 메뉴의 음식을 먹느냐. 카모메 식탁이 순위에서 밀려나면서 목적지는 근처 레스토랑이 된다. 비가 오는 탓에 택시의 힘을 빌린다. 대흥동에 도착하자 빗줄기는 공기 중에서 작게 부서지고 세 사람의 말소리가 거리를 덮는다. 공원에서 느릿느릿 길을 찾기 시작한 우리. 앞장서서 걷는 사람은 길치인 나였다. 키 큰 소나무 몇 그루를 지나 반가운 간판을 발견한다. 골목 끝에 이런 가게가 있을 줄이야.
구석구석 심어진 식물들과 벽에 걸린 그림이 감탄사를 만든다. 편안한 분위기는 이야기 꽃을 피운다. 윤오 오빠가 요리를 배우게 된 계기가 스위스의 어느 저녁까지 닿는다. “거의 신부 수업을 받고 있다. 진짜 스위스에 있을 때만 해도 마늘 까는 것 밖에 못 했는데, 하다 보니까 별 거 없대?” 식탁 위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은 행복을 안겨 준다. 토마토와 특이한 아이스크림의 조화가 꽤 마음에 들기도 했고.
점심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로 향한다. 갈색빛에 압도당하며 나무로 된 문을 연다. 예쁜 조명과 갖가지 천들, 자나 장미와 레이스 장식의 옷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따로 있었다. 카페 안의 손님이 단 세 명뿐이었던 것. 벽 전체를 메운 악보 옆으로 감미로운 음악이 흐른다. 화려하진 않지만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시간. 다시 만난 우리의 식탁 위로 달콤한 순간이 시작된다. 플랫 화이트와 말차 케이크, 사랑스러운 조합이다.
반가운 재회에 감격하며 지난 필름을 한 장씩 꺼낸다. 대화의 반을 차지하는 건 아른거리는 스위스의 한 때. 기차 안에서 만난 그와 콘 옥수수가 세 사람의 웃음이 되고, 그 뒤로 흩어진 나라의 조각들이 쏟아진다. 포르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드리드로 가는 야간열차에서 얼마나 굶주렸는지, 그때 먹은 스테이크는 내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 그런 사소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그다음을 장식한다. 먹구름이 있는 하늘에 감사하며 말한다. “여긴 어쩌면 흐린 날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몰라.”
퇴색된 기억에 선명한 빛이 돌기 시작한다. 지난 추억과 온기를 나누는 것. 이것이 내 여행의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