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롤 Apr 11. 2020

어쩌면 가장 우아한 계절

봄을 산책하는 다정한 시간에 대하여

이미 몇 번은 울렸을 알람 소리에 깨어 하루를 연다. 키위 샐러드를 먹고 머리를 묶는 것. 아침 준비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식탁을 치운 후에는 급히 집을 나서야 한다. 정해진 일과를 다 소화해내려면 어떠한 게으름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 책장 위에 꽂아둔 책을 외면한 채 악보를 읽거나 낯선 언어를 해석하다 보면 해가 지곤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잠시 모른 척하고 산더미 같이 쌓인 숙제를 다 해내는 일. 어쩌면 어른이 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내 24시간은 이토록 짧다.

그런 일주일에 예외가 있다면 아마도 수요일. 유일한 음악적 일탈과 아침 산책이 허락되는 날이다. 악보에 적힌 음표 대신 코드로 노래를 만드는 것. 몇 개의 공식과 색다른 리듬을 배우는 것.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평범한 일상에 작은 활력이 된다. 수업이 끝난 후, 조금 식은 커피를 들고 계단을 내려간다. 짙게 채색된 소나무 그림을 지나 축복의 길에 닿는다. 온몸을 감싸는 평온 한 조각에 느긋하게 걷는다. 어깨의 긴장을 풀고 여유롭게. 토스트를 입에 욱여넣고 채플실을 향해 뛰었던 새내기는 어느덧 두 번째 졸업을 준비하고 있다. 몇 해가 지나는 동안 내 마음은 어떤 형태로 변했을까. 또, 얼마나 많은 계절이 흐른 걸까.







그립고 애틋한 마음 위로 꽃비가 내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영원 같은 찰나에 머물기로 한다. 쏟아지는 비가 나를 엷은 분홍색으로 물들여주길 바라면서. 이 계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만개한 조팝나무와 바닥에 흩뿌려진 벚꽃 잎,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싹들. 목련은 가지 끝에 겨우 매달려 있는 듯 하지만, 곧 자유를 찾으리라. 머지않아 눈부신 초록이 될 테니까.



어느 봄날, 교차로에서 깨닫는다. 인생은 숨 가쁜 달리기 시합이 아니라는 것을. 아름다운 계절이 분주한 삶에 가려진다는 건, 꽤나 비극적인 일이다. 그러니까, 천천히 오래 걷고 더 많이 사랑해야지. 바다가 그리워질 때는 호숫가의 물소리를 듣고 먼 도시의 열기가 그리운 순간에는 낯선 동네에 찾아가 길을 잃기도 하면서.



어쩌면 가장 우아한 계절은 ‘지금 이 순간’ 일 지도 모르니.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단편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