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쎄오 Feb 12. 2024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패턴 편)

231106 기존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패턴의 힘


사람은 뭐든지 경험해 봐야 실감한다. 경험 전에 책으로 익히는 것과 실제 겪어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요즘 남자들의 육아 참여도가 높은 편이고, 나도 스스로 열려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육아는 경험해볼 길이 없으니 잘 몰랐다.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말이 여기에 딱 맞는 것 같다. 아기가 딱 태어났을 때, 아빠로서 어떤 육아를 해야할 지 전혀 감이 없었기에 공부할 엄두도 못냈던 것 같다.(물론 핑계이다. 출산육아대백과 안에 다 있긴 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최소한 이런 것쯤은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개념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패턴인데, 나름 150일간 좌충우돌 육아를 겪은 아빠의 입장에서 패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아기의 하루를 크게 보면 먹, 놀, 잠으로 구성된다. 신생아는 하루에 16~18시간을 잔다고 하니 잠의 비중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먹는 시간이다. 일반적으로 한 번 모유수유를 하는 데 20~30분이 소요되고, 수유 횟수는 하루에 6~8회 진행된다. 나머지 자투리 시간이 노는 시간인데, 신생아는 사실상 스스로 놀 수 없기에 수유 후 트림시키고 부모와 상호작용하는 시간을 포함한다.



생후 50일정도가 지나면 패턴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먹+놀+잠으로 구성된 사이클을 여러 번 반복하며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렇다면 사이클의 기준점을 '먹'으로 잡을 때, 먹과 먹 사이의 시간인 먹텀은 신생아 시기에는 약 2시간 정도이고, 50일경에는 약 2시간 반~3시간, 100일이 지나면 4시간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 사이클에 대해 알기 전까지는 '굳이 인위적으로 텀을 조절해가면서 패턴을 만들어야 하나? 그냥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의 조리원 퇴소 후 지구를 집으로 데려온 이후부터 그 생각은 나이브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신호가 배고픔이고 어떤 신호가 졸린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비단 배고프거나 졸린 것 뿐 아니라 아기가 우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다양하기 때문에 도저히 맞춤형 대응이 어려웠다.



또한 내가 생각했던 '패턴 없음'이 지구에게도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 자궁 속에 있다가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서 스스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상태이다보니 먹기, 놀기, 싸기, 자기 등에 대한 개념이 잡혀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므로 지구가 스스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라도 패턴은 필요했다.



먹놀잠 패턴은 아기가 수유를 한 후 충분히 소화할 시간을 가진 후 잠이 드는 이상적인 방법인데, 실제 적용시 쉽지 않은 이유는 엄마 젖 혹은 젖병을 문 채로 잠드는 소위 젖물잠 현상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젖을 빠는 행위 자체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다 보니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그러면 충분히 수유를 못 한 상태에서 소화도 못 시키고 잠들기 때문에 수면의 질도 낮아져 빨리 깨고, 그러다 보니 피로는 해소되지 못하면서 수유텀은 점점 짧아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곤 한다.



그래서 가급적 먹놀잠 패턴에 의거해서 지구를 케어하려고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시간적으로 언제 울면 배가 고플 확률이 높고, 언제 울면 졸려서 잠투정을 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판단이 용이해졌다. 대응도 더 정확한 방법으로 할 수 있다 보니 지구를 더 잘 달래게 되고 이는 패턴이 잘 유지되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특히 잠에 있어서 패턴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분명 자야 할 시간인데 자지 않고 떠나가라 우는 경우에는 잠투정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기는 잠에 드는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그 불편함을 울음으로 표현한다. 이 때, 부모가 확신을 가지고 토닥이면서 아기를 재워야 하는데, 이 울음이 졸려서라는 확신이 없다면 계속 배가 고픈 것은 아닌지, 배앓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등 이런저런 걱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더더욱 아기는 잠과 멀어지게 된다.



한 때 지구가 한밤중에 한 시간을 넘게 울 때가 있었다. 배고픈가 싶어 분유를 줘 보기도 하고, 배앓이인가 싶어 배앓이에 좋다는 젖병을 새로 사기도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장통이 더해진 잠투정이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어쩔 줄을 몰라 안았다가, 업었다가, 뉘였다가 하면서 오히려 지구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잠투정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편안한 환경에서 잠에 드는 것을 도왔다면 훨씬 빨리 재울 수 있었을 텐데.




물론 패턴은 절대 항구적이지 않다. 아기가 커 가면서 계속 바뀌고, 또 아기마다 특성이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패턴이 무의미함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정반합의 과정을 위해서는 우선 '정'이 있어야 하고, 그에 기반한 '반'의 출현이 결국 '합'에 이르는 도화선이 된다. 우선 패턴이 있어야 그것을 내 아이에 맞게 더하고 덜어냄으로써 적절하게 운용할 수 있는 것이다.




150일이 지난 지금도 나름 현재에 맞는 패턴을 유지하려 하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이클과 방향으로 지구의 하루가 흘러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패턴으로 인해 지구를 이해하기 용이해졌고 지구와 보다 매끄러운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패턴이 우리를 도와주길!




매거진의 이전글 분리수면을 시작하다(D+15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