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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Jun 22. 2024

사내정치질에 휘말리지 않는 방법

직장생활을 하면서 피할 수 없는 인간 부류 중에 하나가 정치질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행위를 흔히 '사내정치'라고 부른다. 사내정치는 개인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 내에서 합의되지 않거나 인정되지 않는 방법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적 목표는 조직 내에서의 물질적 보상, 지위, 권력, 영향력 등이 일반적이다.


사내 정치질을 하는 사람은 개인적 목표를 위해 파벌을 만들고, 소문을 퍼뜨리고, 거짓말을 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뒷담화를 하고, 이간질을 하고, 침소봉대하고, 아부를 한다. 그리고 그런 행위들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이런 정치질에 포섭되면 피곤해진다. 파벌에 가담한 사람, 말을 옮기는 사람, 누군가를 왕따 시키는 데 참여한 사람, 몰려다니며 뒷담화를 하는 사람이 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런 버라이어티 한,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을 하는 직장생활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사내정치 따위에 몸을 담고 싶어 하진 않는다. 조직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속옷을 뒤집어 입은 듯 찝찝한 일인 데다가, 다툼이나 싸움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그 뒷감당을 하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다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내정치의 한복판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격렬한 쟁투에 휘말려 생채기를 잔뜩 얻고 난 다음에야 자신이 사내정치에 몸을 담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불필요하고 소득 없는 일에 엮이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자세와 태도가 절실하다.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마라.

사내정치에 휘말리는 가장 흔한 계기가 남의 일에 발을 담그는 것이다. 동료 직원이 다른 직원과 다퉈서 열을 내고 있거나, 상사한테 깨지고 속상해 있으면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그래도 한솥밥 먹는 동료니까 나라도 챙겨줘야지 않을까 싶어 이말 저말 들어주고, 푸념받아주고, 맞장구쳐주다 보면 어느새 공동의 적이 생기고 콜레스테롤 충만한 끈끈한 피를 나눈 동지가 된다. 


적이 생기면 정치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질의 주동자나 동조자가 되어버린다. 태어난 날은 달라도 한날한시에 죽자며 천지신명께 품의서를 올린, 도원결의를 한 정도의 사이가 아닌 사람의 일이라면 신경 안 쓰는 게 좋다. 비슷한 처지면서 왜 안 챙겨주냐고 징징거리는 사람이라면 아예 상종을 하지 않는 게 필수다. 그 징징거림은 "나랑 같이 정치질할 사람 손!"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듣는 것에서 끝내라.

누군가가 당신에게 회사의 비밀, 동료의 비밀, 누군가에 대한 평가 따위의 가십을 이야기를 한다면 듣는 것에서 끝내라. 그것을 누군가에게 옮기는 순간 정치질의 늪에 발끝을 담근 것이다. 그런 얘기를 굳이 우리에게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착하고 성실하고 가끔 딴짓하는 것 빼면 별 볼일 없는 직장인이다. 그런 우리에게 대단한 기대를 하면서 비밀과 가십을 속삭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냥 여기저기 말을 옮겨달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 뜻을 받들어 말을 옮기고 다닌다면, 자연스럽게 사내정치투쟁의 동지로서 포섭이 되고 만다. 그런 접근에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알았다는 뿌듯함을 가질 게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뭘로 봤길래 이런 얕은 수로 사내정치에 끌어들이냐고 분노하는 게 맞다. 비밀이니 뭐니 하지만 우리 귀에 들어올 정도면 정보로서의 대단한 가치도 없다. 그냥 듣는 것에서 끝내는 게 제일이다.


주변의 일에 일일이 반응하지 마라.

직장생활이라는 것은 한 달에 한번, 숫자로 표기되는 단말마의 기쁨을 위해 매일의 지루함을 참아내는 일이다. 그렇게나 지루하다 보니 작은 사건이라도 생기면 오감이 집중된다. 지루함을 끊어내는 데는 가십거리가 될만한 이벤트만큼 제격인 것이 없다. 그 이벤트 자체는 문제가 없다. 다만,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사내정치로 발을 들이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내정치가들은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예민하다. 정치병 환자에 가까운 그들은 사건에 대한 반응조차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반응한 사람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해석에 의해 사내정치에 뛰어든 것으로 간주해 버릴 수 있다. 쉽게 말해 사건에 대한 반응을 정치질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의 반응이 그들에게 호의적으로 느껴지면 편을 먹자고 할 것이고, 닥치고 불호라면 적대성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의 의도나 승인 여부에 관계없이 사내정치가들의 해석에 따라 우리도 사내정치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억울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석)한다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적절한 처신으로 사내정치에서 발을 빼는 수고를 들이는 수 밖에는 말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반응의 정도를 낮춰서 정치병 환자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처음부터 줘 버릇하면 금방 습관 된다.


평가에 가담하지 마라.

평가라는 게 직장생활의 재미 중에 하나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기획서가 되었든, 영업결과가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간에, 어쨌든 평가라는 것은 평가의 대상보다 평가자가 우월하다는 전제가 깔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평가를 하고 있노라면 우월감이 주는 우쭐함과 어깨뽕에 기분이 적잖이 좋아진다. 그 좋은 걸 하지 않기는 쉽지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평가라는 것이 사내정치에서는 아주 흔한 전술의 도구라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한다. 

 

평가의 기본은 객관성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장에서 유희삼아 하는 평가는 완전한 객관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단지 '객관적인 척'을 평소보다 한소끔 더 가미하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평가는 사내정치의 도구로서 쓰임새가 기가 막히다. 적절히 객관성의 탈을 씌우고 나서 뒷담화, 비난, 폄하를 신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어설픈 객관성으로 포장된 평가는 그만큼 해석의 여지를 남기게 된다. 우리는 최대한 객관적 측면에서 평가했다고 우겨봐야 정치적으로 해석해 버리면 그만이다.


혼자서 속으로 0점을 주든 120점을 주든 상관없다. 코인노래방에 혼자 들어가서 세상 저런 참담한 기획서는 첨 봤네, 이제 봤더니 개뿔 능력도 없었네, 영업실적이 저 지경인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네 따위의 고함을 지르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사람들과 무리 지어 있으면서 누군가를, 무언가를 평가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누군가의 눈에는 정치질로 보이기 십상이다.


한쪽 편들지 마라.

누군가(사내정치가로 평판을 얻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더)가 어떤 사건이나 사물, 인물에 대해 생각이나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어느 편이 될래?'라는 의미가 들어있을 가능성을 염두해야 한다. 우리가 그저 생각의 차이, 의견의 차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사내정치가들은 우리 편이냐 아니냐의 근거로 여긴다. 섣불리, 쿨하게 얘기했다가 불편한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묵묵부답이 제일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그나마 해석의 여지를 덜 남기는 방법이다. 사내정치질에 중독된 사람이라면 뭔가 숨기고 있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까지 막을 재간은 없다. 때로는 순간순간을 잘 모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처세다.




안 그래도 삶이 피곤한데 사내정치까지 신경 써야 하냐고 투덜거릴 수는 있겠다. 사내정치질의 공세 따위 타격감 별로라고 한다면야 굳이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직장 생활하라고 강요하진 않겠다. 하지만 기질상 딱 부러지게 자신의 스탠스를 정하거나 심지를 드러내는 게 불편한 착해빠진 직장러에게는 위의 방법을 추천한다. 약삭빠른 처세술에 가깝다고 느껴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사내정치에 엮여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보다야 적절한 처세술이 몇 배는 낫다. 직장인은 같은 값이면 덜 피곤한 게 최고다. 더 피곤하다고 월급 더 주는 회사는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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