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한 녀석 성휘 Mar 09. 2021

#23. 사랑과 전쟁의 까미노 (다 남의 떡이지)

스물두 번째날 : 폰페라다 (Ponferrada)까지  29km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폰세바돈(Foncebadón)에서 폰페라다 (Ponferrada)까지  29km


 지난밤 지낸 알베르게는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있는 곳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공간에다가 오락게임 테트리스하듯 빽빽하게 이층 목조 침대를 집어넣어 헤집고 다닐 틈도 없는 곳이라 답답한 느낌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내 침대는 바로 그 방의 문 앞이었기에 왕래하는 사람들의 소음과 빛으로 강제 기상을 해버렸다.  딱딱한 빵과 커피를 내 위에 밀어 넣고, 기부금은 넉넉하게 기부금 상자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선 출동이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을 귀염둥이 삼인방과 함께 나섰다. 반쯤 잠에 취해 좀비처럼 걸었지만 새벽 공기에 기분이 상쾌했다. 얼마 만에 새벽 공기를 맞으며 산행을 하는 것인지... 

 산기슭을 따라 경쾌하게 걸으면서 한국의 산이 생각났다. 아주 오래전 설악산과 지리산을 야간 산행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 오랜 일이라 기억조차 나지 않았던 그 기억의 파편들이 스페인 땅에서 스멀스멀 추억이 되어 밀려온다.  새벽 여명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경치를 보노라니 스페인의 산이 한국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같은 위도에 있어서 식물군이 비슷한 종으로 자라는 것이라고 인간미 없이 낭만적인 생각과는 거리가 먼 논리적 과학현상을 추리했다. 감수성이라고는 마른오징어보다 더 메마른 인간이다.  



철십자가(La Cruz de Ferro)



새벽 달빛을 따라 폰세바돈(Foncebadón)을  벗어나서  올라가면 철십자가(La Cruz de Ferro)라는 이름의 기념물이 나온다.

아주 오래전 선사시대에는 제단이 모셔져 있었고 후에 죽음을 신 메르쿠리우스를 모시는 제단이었다가 후대에는 갈리시아 사람들이 여행하면서 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그리고는 나중에 되어서야 십자가가 세워지면서 순례자들이 고향에서 가지고 온 돌을 놓고 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순례자들이 다양한 기념물들을 놓고 간다. 비록 녹슨 십자가이지만 수많은 정성과 마음이 모여 이젠 큰 에너지를 품고 있는  그곳에서 한 순례자가 십자가를 끌어안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마치 사연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그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서 대충 사진만 찍고는 그곳을 벗어나 길을 재촉하였다.







 혼자면 혼자 인대로 일행이 있으면 일행이 있는 대로 좋았다. 귀염둥이 삼인 방과는 이제 익숙해져 그런지 가끔씩 찾아오는 침묵도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사람들의 관계에 있어서 더 어려운 것이 바로 침묵의 시간이다. 침묵이 때론 대화보다 어렵다. 나의 침묵은 '사색'과 무념무상의 '멍'의 경계에 있지만 다들 그렇다시피 멍이라는 단계는 주로 스스로의 충전의 시각이다. 가끔 타인의 침묵에 불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나 삼인방이나 우린 타인의 침묵에 대해 서로 불편하고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존중의 시간이었기에 서로에게 믿음이 갔나 보다. 


넷이서 한참을 침묵과 수다를 교차하며 걷다가 몰리나세카(Molinaseca)라는 마을에 도달했다. 다리 밑으로 강물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 공원과 조경이 잘 꾸며진 아주 이쁜 마을이다.  거리상 어정쩡해서 그렇지 다음에 온다면 이곳에 꼭 하룻밤 지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작고 아담한 마을이었다. 우리는 거기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어제부터 우린 모두 피자가 먹고 싶었는데 마을 초입에 발견한 피자집 이외에는 다른 곳을 발견하기 힘들어서 가방을 마을 끝 지점에 벗어 놓고는 다시 마을로 되돌아 초입의 그 피자집에 들어갔다.

순례길에서 가끔 그렇게 배낭을 아무 구석에 확 처박아 놓고는 맘대로 다녔는데 한 번도 도난당한 적이 없었다. 사실 도난당하길 은근히 바랬는데 말이다. 필요해서 들고 다니는 배낭이지만 어떨 때는 그냥 확 버리고 싶다.

"다음에 까미노를 또 온다면 난 머리 빡빡 밀고 발가벗고 짐 없이 다닐 거야!!" 

구시렁거리는 내 말에는 반쯤 진심이 담겨있다. 



 피자는 너무 맛있었다. 냉동피자 같았는데 어찌나 맛있었던지 일인일 피자가 모자라 또 두 판을 시켰다. 특히나 까르보나라 피자가 너무 맛있어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점심을 먹고는 다시 길을 나서 걸어 내려오는데 내 발바닥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아 삼인방을 먼저 보내고는 혼자 뒤처져 걸었다. 폰페리다에 도착해서도 마을 초입에 있는 바에 들려 또 휴식을 취했다. 이놈의 발은 격일로 말썽이다. 전날까지도 고통에 멀쩡했는데 이날은 터진 왼발에 찌릿찌릿 자극이 왔다.  바에 앉자 바텐더 아저씨랑 옆자리의 동네 아재들과 약간의 수다를 떨었다. 아재들이 불이 났다고 뭐라 뭐라 그러는데 솔직히 그때는 뭔 말인지 잘 못 알아 들었는데, 폰페라다의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이해가 되었다. 

수도원을 개조한 그 알베르게에는 아주 큰 마당이 있었는데 그 마당에 특별 재난 소방관의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그들의 출현은 멀리 보이는 산에 산불을 끄기 위해서이다. 헬기와 비행기로 물을 나르고 있는데 바람이 너무 심해서 다들 두 손 놓고 추이만 살펴보고 있었다. 


"누나, 저녁에 제육볶음 할 거니깐 저녁식사 같이해요"라는 삼인방의 초대에

"얘들아, 아무래도 누나가 안드레랑 오늘 썸을 탈 것 같다"라는 말로 거절했다.

그런데 안드레 와의 데이트라 예상했던 그 시간에 복병이 출현했다. 

독일 처자 까미가 찰싹 달라붙은 것이다. 


사실, 까미의 등장이 싫지 않았다. 당시 내가 정말로 안드레를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까미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겠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안드레의 들이댐이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고 그다지 남자에 관심이 없는 상태라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다.

게다 까미는 이날이 까미노의 마지막 날이었다. 대학생인 까미는 잠깐 시간을 내서 걷기 시작한 것인데 까미노에 빠져 수업도 제치고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수업을 미루다 미루다 결국 한계에 부딪혀 이날을 마지막으로 카미노를 끝내고 다음날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프랑스 부모 밑에서 자란 독일 태생의 그녀는 독일어와 프랑스어가 모국어였고 얼굴도 이쁜 데다가 스타일도 좋았다. 키가 늘씬하게 크면서도 굴곡이 커서 까미노 길의 젊은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에 무심했다. 어쩜 그래서 더 인기가 많았나 보다.

"누나, 아무래도 안드레가 누가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라고 삼인방의 두 남자들이 나를 옆에서 부추겼을 때,

"언니, 까미가 언니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라며 삼인방의 유일한 홍일점인 ''이 냉정히 상황 판단을 해주었다.

 그렇다. 까미가 그녀의 마지막 날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은  나를 무척 좋아하고 따랐기 때문이다. 

내 입으로 내가 이런 말을 이야기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까미노 길에서 난 은근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그 타깃층이 나에겐 엑기스가 전혀 없는 연령대였다. 주로 할배들이 나를 무척이나 이뻐했고, 아니면 이십 대 초반의 어린 친구들이 잘 따랐다.

내가 '우쭈쭈'하고 사람들을 이뻐해 주는 타입인데 그걸 어린 친구들이 은근히 즐겼다. 그래서 덩치만 큰 어린 친구들이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내 옆에서 치대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미국 여자 대학생 친구는 내 무릎에 앉아 둥기 둥기까지 하고 놀았다.

까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핸드폰의 사진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길래 뭐냐고 같이 보자고 들여다보니 그녀가 찍은 내 사진이다.

 길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난 재미 삼아 행위예술처럼 기이한 동작들을 취하곤 했는데 그런 사진을 보면 난 주접의 최고봉이다. 까미가 그런 나의 사진을 보고는 낄낄거리는 것이다.

"나중에 집에 가서 우울하거나 꿀꿀할 때 내 사진 꺼내봐!"라는 나의 조언에 그녀는 함박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까미의 등장으로 안드레와의 단둘만의 데이트는 훨훨 날아갔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단둘이 시간을 가질 시도는 다시는 안 했다. 

안드레에 대해 사족을 달자면, 외향으로는 딱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타입이다. 게다 자상하기 그지없다. 여러 면에서 우리 엄마가 쌍수 들고 환영할 타입이다. 

그렇다고 아직 장가도 안 간 친구에게 내 새아버지가 되어 달라 할 수 없진 않은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검색을 할 때,  자주 검색이 되는 책이 있었다.

'남자 찾아 산티아고'라는 책이었는데, 작가가 까미노 길에 괜찮은 남자들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다는 이야기다. 

뭐라? 남자가 많다고? 난 그 이야기가 금시초문이었다. 사람이 많으니 남자가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중에 나를 위한 훈남이 있다고는 믿지도 않았고 상상도 안 했었다.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서평을 달순 없지만 그 책의 결말이 어떠할지는 나의 경험으로 확연하게 예상할 수 있다.

"없. 다.!!"

 누군가를 위한 남자가 있을 수 있었겠지만 나를 위한 훈남은 없었다. 남자들의 연령대가 대부분 60대 이상 아니면 20대들만 득실득실했고 나를 위한 30~40대의 남자들은 없었다.  있어도 유부남이었다. 사실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유심히 보고 다니지도 않았다. (근데 산티아고에 도착해보니 내 또래의 남자가 엄청 많더라. 다들 어디로 숨어 다녔는지. 길에서 왜 보지 못했니.)

그 와중에 내가 계속 마주치는 내 또래의 남자라고는 안드레 밖에 없었다. 걷는 거리가 서로 비슷한 탓에 계속 부딪히고 엮겨었기에 까미노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러니 자연스레 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마 안드레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래 여자들 중에 자주 본 면면은 소수였고 그중에 나를 제일 많이 봤기에 내가 제일 만만했을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그에게 난 까미노 길에서 처음으로 포옹과 볼 키스로 자신을 맞아준 첫 여자라고 했다.  나를 초반부터 봤으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그런지 내가 그와 같은 숙소에서 만나는 날은 그는 내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상황을 즐기긴 했다.  뭐 워낙 선택이 폭이 제한된 상황이다 보니 우린 서로에게 '꼽등이'냐 '바퀴벌레'냐라는 상황만 존재했지만 말이다.



연애도 부지런해야 하고 성격에 맞아야 한다. 안드레는 까미노 초반부터 나에게 이것저것 메시지를 많이 보냈는데 주접이나 재롱만 떨 줄 알지 꽁냥꽁냥 아기자기하지 못한 성격의 나는  그의 메시지에 늘 투박하게 답장만 했다.

일단 외국어로 자판을 두드리는 게 귀찮아서(난 말은 할 줄 알아도 글은 서툰 까막눈이다) 또 그런 성격이 못되어서 '응', '알았다', '나중에 보자'로만 답장하기 일쑤였다. (사실 내 안에 상남자가 있다)

그리고 사실 당시에는  안드레가 별 이성적으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장관리였는지 아님 진짜로 나에게 관심이 있었는지, 아님 원래 그의 성격이 두루두루 자상한지 모르겠지만 안드레가 나에게 물밑작업을 하던 행위를 이날 이후로 서서히 줄이기 시작했고, 간사하게도 난 그게 못내 섭섭해지기 시작했다. 

왜 그거 있지 않은가? 자신에게 막 들이대던 남자가 딱 멈추면 섭섭하고 궁금하고 아쉬운 느낌... 

나도 그랬다. 그래서 산티아고에 막판에는 나도 주접스럽게 들이대고 치대 기도 했다. 뭐 등산화로 보기 좋게 까였지만...

그렇다, 떠나간 버스는 대머리라 머리끄덩이가 아닌 머리카락 한 올도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천만다행이었다. 안드레와 그놈의 '썸'조차 타지 못했던 그 시간이 결과적으로 정말 다행이었다. 

결론적으로 그와 남녀관계가 아닌 친구관계로 지낸 것에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다. 까미노의 절대 시간 중 제일 많은 시간을 공유한 친구이니 나에겐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인데 그 존재를 인간관계가 아닌 이성관계로 무너트리는 과오를 범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인 것 같다.

 여하튼 까미노가 끝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친하게 연락하며 지낸다. 전쟁을 같이 참여한 것도 아닌데 뭔가 전우애 같은 끈끈한 감정들로 인해 아직까지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카미노를 걸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 눈이 맞은 커플로 봤고, 썸을 타는 커플도 봤고, 미래를 약속하는 커플도 봤다. 물론 그 와중에 본국에 있는 애인에게 차이거나 차는 사람들도 봤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걷기만 하는 단순한 행위를 하며 사람들은 원초적 본능에 충실해지고, 생각도 많아진다. 그리고 가끔  그 많은 생각들 속에서, 느끼는 것이 아닌 생각으로 인해 생긴 가짜 감정들에 속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에 속아 카미노에서 눈이 맞았지만 막상 돌아와서는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된 사람도 봤다. 

오죽했으면 누군가 '사랑과 전쟁'의 까미노라고 했을까?!

여튼, 다양한 감정과 인간관계에 대한 특별한 배움도 까미노의 일부인 거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22. 귀염둥이 삼인방과의술례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