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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녀석 성휘 Mar 09. 2021

#24. 까미노 길 위의 한국, 한국인

스물세 번째날 :비야프란카델비에르소까지24km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폰페라다 (Ponferrada)에서 비야프란카델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까지 24km




 "버스터미널까지 같이 가줄까?"라는 나의 물음에 카미는 어린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산티아고행 버스는 아침 8시. 시간 관계상 까미노를 끝내지 못하고  버스로 이동하기로 한 그녀의 마지막 까미노를 같이 배웅해주기로 했다.
카미의 버스 스케줄에 맞춰서 슬로모션 움직이듯 아주 여유 있게 아침을 맞이했다. 다들 분주하게 서둘러 출동을 하지만 우리는 아주 여유 만만하다.
설렁설렁 7시쯤 숙소를 빠져나와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어차피 까미노 길과 버스터미널은 같은 방향에 있으니  여유 있게 오늘의 걸음에 워밍업만 시키면 된다.
 버스터미널 앞에서 커다란 포옹으로 카미와 헤어진 뒤, 혼자서 또 설렁설렁 걸었다. 폰페라다 시내를 벗어나기 전 문이 열린 바 Bar가 있기에 커피와 크루아상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이제야 위장도 몸도 충분히 예열이 된 것 같아 본격적으로 씩씩하게 걷기 시작했다.


 이 날따라 두 다리가 뇌하고는 연결이 안 되어있는지 빠른 발걸음이 평소의 나같이 않고 아주 자동으로 다급하게 움직인다. 누군가 그랬는데, 오래 걷다 보면 다리가 저절로 걸어가는 단계가 있다고... 내가 바로 그 단계인가 보다. 찰깍거리며 움직이는 증기기관차처럼 내 두 다리도 찰깍 찰깍 박자에 맞춰 아주 빠르게 걷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내 앞에서 어슬렁 걷고 있던 영국인 청년 을 만났다.
새미는 얼마 전부터 눈에 띈 얼굴이지만 제대로 된 이야기는 한 번도 나눈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통성명을 나눈다. 원래 건너 건너로 이름은 서로 알고 있었지만 서로가 이렇게 이야기해본 것은 처음이다.
 연한 코발트색의 눈 색깔과  창백한 금발에 길고 날씬한 몸을 지닌 새미는 그의 한 마디의 말로도 영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영국식 말투를 지녔다.
스페인에 세미나 겸 여행을 왔다가 충동적으로 까미노를 걷기 시작했다는 그 청년은 머릿속에 걱정이 가득이다.
"아주 큰 딜레마야. 원래 휴가 기간을 다 쓰고도 까미노를 끝내고 싶어서 집에 가지 않고 있거든, 아빠가 많이 기다리시는데 말이야"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한다는 새미는 '언제 올 거냐고', '일손이 모자라서 바쁘다'라는 아버지이자 보스의 재촉 전화에 심란해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아버지의 고민이 더 크실 것 같은데?"
"응? 왜?"
"보스로서는 일꾼이 빨리 돌아오길 바라고 있지만, 아버지로서는 너의 카미노 완주에 더 응원하고 계실 테니깐. 얼마나 큰 딜레마겠어."
"하하! 그러네"
 긴 다리로 쭉쭉 걷는 샘과  똥자루가 쳐져 짧은 다리로 다급하게 걷는 내가 오랫동안  그렇게 쭉 걸었다.

 까미노 길에서 한국인을 아주 많이 만났다는 새미는 한국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은 지 나에게 연신 한국에 대해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가 한 질문 중에 제일 첫 번째는 '까미노길에 왜 그렇게 한국인이 많은 거냐?'였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다국적 순례자로부터 카미노 내내 들었던 것이기도 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프랑스길의 시작점인 생장을 출발할 때, 거기서 일하는 자원봉사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가 말하길 한국인의 비중이 랭킹 6위라고 했다.
그러니깐  2016년 기준으로 생장에서 출발한 한국인의 수는 6천 명이었으며 프랑스, 스페인, 이태리, 독일, 미국을 이어 순례자 수가 6위를 차지한다면서 놀라워했다.
나도 처음 듣는 소리라 엄청 놀랐다. 한국인이 그렇게 많다니..
스페인이 아닌 프랑스인이 1위인 것은 대부분의 많은 스페인 사람들은 스페인 땅인 론세스바이야스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라 했다. 다른 유럽 국가는 이해가 가지만 미국인이 그렇게 많이 오는 것도 의아했다.
궁금해서 미국 순례자에게 물어본 바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안내하는 큰 여행사들이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전국 도처에 있어서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걷고 있는 4월은 그리 성수기가 아닌데도 한국인을 꽤 많이 봤다.
희한하게도 난 20~30명밖에 보지 못했지만, 내 앞에 걸었던 친구 말로는 한국인을 100명쯤 보았다고 했고, 내 뒤에 있는 친구도 한국인을 100명쯤 보았다고 하니 교집합을 제외하고는 대략 70명 정도가 내 앞뒤에서 걷고 있는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페인까지의 거리적 접근성이나, 국가 내 종교적 비율로 볼 때, 한국 순례자의 수는 기형적으로 많은 것이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타국의 순례자들로부터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인 '왜 까미노 길에 한국인 순례자가 이다지도 많은 것이냐!'에 대한 예상답안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들 중에는  '한국에서 크게 유행한 영화나 소설 때문이라고' 오해하는 이도 있었는데 내가 아는 바로는 그리 히트 친 영화나 소설이 없는 것 같다. 어쩜 내가 안 봤을 수도 있겠지만...
브라질의 유명한 작가 파울루 코엘류순례자라는 책 때문에 브라질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정작 내가 만난 브라질 사람들은 파울루 코엘류를 싫어하는 이가 많았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코엘류가 순례길을 다 완주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었기 때문이란다.
코엘류를 싫어하는 브라질 청년 안드레가 나에게 나의 의중을 물었을 때,
"그의 책은 '연금술사'밖에 안 읽어봤어. 근데 나 그 책 좋아해. 그리고 또 다른 책 '순례자'는 아직 안 읽어봐서 정의 내리긴 뭐 하긴 하는데, 근데 순례길을 안 걸었는데도 그 정도 베스트셀러를 만든 거면 대단한 작가 아니냐?"라는 나의 대답에 안드레는 삐졌다. 지가 싫어하는 이를 내가 같이 싫어해야만 하냐?
이야기가 어찌 되었던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 순례길에 대해 히트 친 영화나 소설이 없던 것 같다. 
 다만, 우리나라도 순례길을 표방한 제주도의 올레길이 히트를 쳤고, 그 이후로는 각 지역단체에서 둘레길 등과 같은 각종 트레킹 루트를 도처에 만들었기에 걷기가 한국인들에게 일상이 되었으며 결국 원조 할머니 맛 집을 찾아온 심정으로 여기 카미노 순례길을 온 것이라 생각된다.
이 토픽에 대해 다른 한국 순례자들과도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의견은 나와 동일하였다.
 (아! 그리고 이후 차승원 님, 유해진 님의 예능 방송인 '스페인 하숙'으로 인해 순례길이 대중적으로 회자되었다.)





  유난히 한국에 대해서 궁금했던 새미는 아주 많은 질문을 해댔다.
"한국의 인구가 얼마야?"
"오천만 명 이상. 아이슬란드 크기만 한 나라에서 오천만 명이 살아. 런던 면적의 반도 안 되는 수도 서울에는 인구 천만이 넘게 살고. 너네 동네는 인구가 얼마냐?"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 3만 명이 다일 걸?"
영국 버밍엄 근교에 사는 새미는 천만이라는 숫자에 당황했다.
"생각해봐. 그 좁은 땅덩어리에 그리 많은 사람이 사는데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딪히겠어. 그러니 한국 사람들은 서로 몸이 부딪혀도 'Excuse me'라는 말을 잘하지 않아. 혹시 한국 사람들과 몸이 닿았는데도 '실례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무례하다고는 생각하지는 마, 표현이 서툰 거니깐"
"나, 한국인들이 무례하다고 생각 안 했는데?!"
"그러니까 만약에. 어찌 되었든 문화가 많이 다른 거니깐"
"한국 가보고 싶다"
"놀러 와, 아주 재미있는 곳이야"

"북한은? 북한 가봤어?"
"아니, 나는 못 가. 그런데 너는 갈 수 있어. 내 영국 친구도 북한 여행 갔다 왔는데 4박 5일인지 3박 4일인지 이백만 원 내고 패캐지로 갔다 왔어. 아주 신기방기 이상한 경험이었다고 하더라"
"이백만 원? 너무 비싼데? 그런데 한번 가보고는 싶다"
새미에게 내 영국 친구가 겪은 북한 방문기를 소상하지만 짧은 영어로 담백하게 들려줬다.

여행하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는 데, 그것은 내가 아는 상식과 남이 아는 상식의 간극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 밖에 나와보니 세계 많은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북한을 알고 있지만 대부분은 한국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북쪽?', '남쪽'에서 왔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젠 귀찮아서 그냥 처음부터 남한에서 왔다고 하지만...
난 북한 사람들이 여행도 안 다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러시아나, 베트남, 중동에서는 북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물론 우리처럼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도 나름 여행하고, 유학하고, 일하고 , 생활한다 들었다.
세계 아주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북한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남한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근래에 들어서야 대한민국에 대해 조금씩 알기 시작했으니 뭔가 참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외국에서 뉴스를 보면 세계정세를 다루는 꼭지에선 매번 북한이 등장한다. 외국 매체에서의 한반도는 위기일발의 화약고와 다름없는 형세니 그럴 수밖에...
 
잘난 척은 여기까지다. 호기심 청년 새미와 더 대화를 나누다간 바닥난 나의 지식이 금방 뽀롱 날 것 같아
갈증을 핑계로 새미와는 길 중간에 헤어졌다. 휴~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도 버거운데 정치적인 이야기는 뇌가 녹아내리게 만든다.
일단 맥주를 한잔 마셔야겠다.






  잠시 휴식 후 혼자 걷다가 중간에 엠마를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밤 체했는지 속이 안 좋아 호텔에서 하룻밤 쉬었다는 그녀의 얼굴은 못 본 며칠 사이 확 상해져 있었다. 
도란도란 그녀와 대화를 나눌 줄 알았는데 그녀가 나에게 말하는 본새는 뭔가 이상했다. 그녀는 내가 어디 마을에 머물 것인지 어느 알베르게 숙소에서 지낼 것인지 꼬치꼬치 캐묻는 형상이었다. 뭔가 형사한테 취조당하는 기분이다.

"'비야프란카 델 비에르소'까지 갈 생각인데 잘 모르겠어. 안드레가 거기서 보자고 했는데 상황 봐서"
"어디서 지낼 건데?"
"몰라. 안드레가 무슨 숙소라고 가르쳐줬는데 까먹었어. 나중에 메시지 확인해 보면 돼"
"안드레가 너한테 메시지를 보낸다고?"
"응. 자주 보내"
"아, 그래서 넌 우리가 어디서 지내는지 다 알고 있었구나?!"

'우리'라니? 왜 그녀가 '우리'라는 단어를 썼는지는 모르겠다.
엠마랑 어울리긴 시작한 것은 하비안드레가 그녀와 어울렸기 때문이다.
하비안드레가 참 좋았다. 그리고 그들도 나와 어울리는 것을  참 좋아했다. 편안하고 자상한 아재들 앞에서 난 온갖 재롱과 주접을 다 떨었고 그들도 나에게 맞춰줘서 우린 늘 어린아이들처럼 놀았다. 
하비와 곤드레는 늘 나를 초대해주었기에 매번은 아니어도 많은 시간을 그들과 같이 지냈는데 그중 엠마와 같이 있었던 시간도 많았다. 하비, 안드레, 엠마, 나. 모두 혼자 온 것이니 자연스럽게 뭉친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녀는 '우리'라는 범주에 하비 안드레만 넣고 싶었나 보다.

이후 그녀가 나에게 묻는 질문들에게서 뭔가 불편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마치 질투와 시기의 감정으로 둘러 싸인 사춘기 소녀의 질문 같은 것이었다. 궁금하거나 순수한 의도가 아닌 뭔가 캐내려고 하고 꿍꿍이가 가득한 의도된 질문들 말이다.
난 그렇게 머리가 좋지 못하다. 그리고 계산적인 질문이나 의도된 질문에 머리 써서 돌려 대답할 줄 모른다.
그냥 단순 무식한 것이 내 스타일이다. 
그녀가 소유욕을 가지고 덤비는 이유가 하비 때문인지 곤드레 때문인지 아님 둘 다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알바는 아니고 그런 거 가지고 승부욕을 태울 전투력이 전혀 없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나 하비안드레가 정말 좋아. 둘 다 내겐 까미노가 준 선물이야. 둘 다 아주 좋은 친구들이 될 것 같아"
나의 말에 순간적으로 변한 그녀의 얼굴 표정이 희한했다.
그건 마치 '네가 과연 그럴 수 있을 것 같아?'라는 표정이었지만 그때 난 그녀의 표정에 별 개의치 않은 척했지만 불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동화책에나 나올 것만 같이 생긴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희한하게도 오늘따라 걸음이 빠르고 추진력이 좋은 엔진을 장착한 거 마냥 쉬지 않고 걸어왔다. 사실은 발이 지 혼자 움직여서 몸이 이끌려서 온 것이다. 보통 이런 추진력은 방귀 뀔 때 생성되는 것인데 방귀 한번 안 뀌고도 이리 빨리 걸었으니 요상하고도 이상한 날이다.
비야 프랑카 마을에 도착하니 2시도 안되었다. 더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마을이 너무 이뻐서 그냥 멈추기로 하고 안드레가 가르쳐준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알베르게에 오니 안드레가 보이지 않지만 알게 뭐냐, 이 좁은 바닥에서 언젠가는 보겠지.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나니 엠마가 도착하는 게 보였다. 그녀도 여기서 묵나 본데 어찌 알고 여기 왔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유치해지고 싶지는 않다.
질문을 꺼낸 것은 오히려 그녀였다.
"너, 산길로 오지 않고 찻길로 왔지?"
중간에 갈림길이 있었나 본데 난 모르겠다.
"몰라, 난 그냥 노란 화살표만 따라왔는데!"
"너 짧은 길인 찻길로 온 거 아냐?"
"모르겠어. 그냥 막 걸어왔어. 근데 그 길이 찻길은 아닌 것 같아.  막 포도밭 있는 데를 통과해서 왔는데."
찻길로 온 들, 산길로 온 들, 뭔 상관이냐. 난 격렬하게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인 것을..
그런데 그녀가 나에게 말하 듯 혼자 지껄이는 말이 뭔가 빈정 상하게 했다.
"너 분명 찻길로 왔을 거야, 안 그러면 이렇게 빨리 올 리 없어"
   








 갑자기 엠마가 불편하게 느껴진 탓도 있지만 시에스타(스페인의 낮잠 시간)로 상가가 문을 닫기 전에 얼른 쇼핑을 해야 될 것 같아서 도망치듯 알베르게를 뛰쳐나와 광장 시내로 나갔다. 9유로나 되는 기능성 양말을 사고 동네 산책을 하려니 깐 광장의 한 식당 야외 테라스에서 하비안드레가 식사를 하는 것이 보인다. 이틀 만에 보는 하비인지라 반가워서 깡충깡충 뛰어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나도 같이 합석해 식사를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엠마가 뒤따라 나타나 같이 동석을 했다. 나를 향한 의문의 눈빛과 함께
이날부터였다. 엠마의 질투심과 시기를 내가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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