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규 Dec 21. 2018

나는 어쩌다 법을 공부하게 된 걸까? (2)

2부: 형태가 없는 물처럼

나는 어쩌다 법을 공부하게 된 걸까?

2부: 형태가 없는 물처럼


<이 글은 1부에서부터 이어지는 글입니다>

그렇게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매가리 없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곤 하지만, 물 먹은 장작에도 가끔 불이 붙듯이 그 당시 나에게도 한 가지 열정이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만화였다. 만화라면 정말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수많은 명작들 중에서도 내가 단연 으뜸으로 꼽는 작품은 『슬램덩크』다.

북산팀의 주장이자 중심인 ‘고릴라’ 채치수, 비장의 무기인 3점 슛으로 위기 때마다 팀을 구하는 ‘불꽃 남자’ 정대만, 주인공의 라이벌이자 명실상부 팀의 ‘에이스’인 서태웅, 문제아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만화의 주인공 ‘천재강백호까지, 슬램덩크』의 가장 큰 장점은 등장인물들 모두 각자의 사연과 매력이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특이하게 안경 선배를 좋아했다. 안경 선배는 권준호라는 이름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중 내내 거의 안경 선배로 불린다. 농구 만화인만큼 '날쌘돌이', '리바운드왕', '감성 슈터'와 같은 농구 관련 별명이 하나쯤은 있을 법도 한데, 그는 끝까지 그냥 '안경 선배'다. 농구를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영광의 시절’이 찾아오니, 그건 바로 북산이 지역예선을 통과하고 전국대회로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능남과의 예선 최종전에서다. 경기 종료까지 1분이 채 남지 않은 순간, 아슬아슬한 1점 차 리드를 지키고 있는 북산에게 공격권이 넘어온다. 득점을 성공시킨다면 승리의 8부 능선을 넘는 것이겠지만, 실패한다면 경기가 단번에 뒤집힐 수도 있는 매우 긴박한 순간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상대팀인 능남의 유명호 감독 역시 작전타임을 요청해 선수들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 권준호에 대한 수비는 조금 느슨하게 하는 대신, 팀의 주득점원인 채치수나 서태웅에게 수비를 집중시키라고 지시한다.


어찌 되었든 이 중요한 순간에, 볼이 주인공인 강백호에게 넘어온다. 여태껏 경기를 '캐리'하고 있던 서태웅에게 패스를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겠지만 서태웅에게만은 죽도록 지기 싫어하는 강백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안경 선배에게 볼을 던진다.


<슬램덩크> 완전판 16권 중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순간, 3점 라인 앞에서, 그것도 노마크인 상태로 얼떨결에 볼은 잡아 머뭇거리는 안경 선배에게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해온, 그래서 그의 피나는 노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채치수는 외친다.


준호야 프리다! 쏴라!!


이때 안경 선배의 손끝을 떠난 공은, 작중에서 표현되는 3점 슛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굉장히 높고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리고 이 순간, 중학교 시절 그저 체력을 기르기 위해 농구부에 가입하던 그의 모습, 기초체력이 약해 기본기 연습만으로도 힘들어하던 모습, 아쉬운 패배를 거듭하며 농구에 흥미를 붙이게 되는 과정, 그 후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로 다른 원년멤버들이 모두 팀을 탈퇴하는 와중에도 채치수와 함께 끝까지 농구부를 지켜왔던 순간들이 차례로 펼쳐진다.


이 모든 회상이 끝나는 순간, 마침내 볼은 네트를 통과한다.


<슬램덩크> 완전판 16권 중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통합 6년을 꾸준히 노력했음에도 크게 주목받지도, 인정받지도 못했던 그였다. 부주장이라는 직책에도 불구하고, 1학년짜리 '농구 초보' 강백호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농구부를 떠나 양아치 생활을 하다 돌아온 정대만에게도 주전 자리를 내준 그였다. 그로서는 충분히 불만을 가질 법도, 그래서 팀을 떠날 만도 했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남았고, 주역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조연 역할에 모든 걸 쏟아냈다.

이처럼 길지만 화려하진 않았던 그의 농구인생에 찾아온 단 한 번의 영광의 순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안경 선배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 시간과 노력의 무게를 알지 못하는 동료 선수들과 관중들은 열렬한 환호로. 그 무게를 너무나 잘 아는 지인들은 환희 뒤에 불현듯 흐르는 설명할 수 없는 눈물과 침묵으로.


<슬램덩크> 완전판 16권 중


사실 내가 이토록 안경 선배에 빠지게 된 이유는 그가 순전히 인내와 노력의 아이콘 이어서만은 아니다. 찬찬히 뜯어 살펴보면 안경 선배는 전교권에서 노는 모범생에다가, 일반인 기준으로 봤을 땐 상당한 농구 실력자이며, 성격 또한 좋다. 뿐만 아니라, 깽판 치는 정대만에게 얼굴을 한 대 얻어맞고 안경이 벗겨지는 장면에선, 여태껏 두꺼운 안경 뒤에 숨겨왔던 꽃미모를 드러내며 반전 매력을 선보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그는 비록 농구 코트라는 무대 위에서는 조연 역할에 불과했지만,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주연 역할을 맡아도 손색없는 '엄친아'였던 것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 수차례 『슬램덩크』를 정독하면서 얻은 이 섬광 같은 통찰 덕분에 일찍부터 안경 선배를 내 청소년기의 롤모델로 삼았었다.


그런 안경 선배를 닮아가려던 노력 덕택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창의적인 답이 안 떠올라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중,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더 이상 내 어머니를 절망에 빠트릴만한 충격적인 시험지는 받아오지 않았다. 초등학교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발전을 이루어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하루아침에 전교 1등을 노리는 학생이 된 건 아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코트 위의 안경 선배와 같은, 붙박이 주전은 아니지만 교체 멤버 정도는 되는 위치였던 거 같다. 그래도 그 정도까지라도 성적을 끌어올린 덕분에, 나는 어찌어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내가 입학하게 된 대학교는 미국의 히트 시트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How I Met Your Mother)』를 통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웨슬리언 대학교 (Wesleyan University)였는데, 웨슬리언은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어학 등 교양과목에 중점을 둔 학부 중심의 소규모 4년제 대학을 일컫는 리버럴 아츠 칼리지 (Liberal Arts College) 중 하나였다.


웨슬리안 대학교 / Wesleyan University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의 기원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가게 되는데, 고대 그리스에선 자유 시민들이 갖추어야 하는 필수적인 교양 학문의 범주에 문법, 논리, 수사학, 기하학 심지어는 음악과 천문학까지도 포함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리버럴 아츠 칼리지들은 이러한 전통을 지켜 학생들에게 다방면의 교양과목을 수강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


리버럴 아츠 칼리지가 교양과목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든 고대 그리스 때부터 그 명맥이 이어져온 교양과목이 든든한 뼈대 역할을 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분야의 교양과목 위주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균형 잡힌 교육을 받게 함으로써, 학문적 지식과 배움은 대학에서 얻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의 과업이라는 가르침을 주려는 목적도 있었다. 평소 지식인으 살지는 못하더라도 교양인으로는 살고 싶었 나에게, 이런 리버럴 아츠 칼리지의 학풍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직 어떤 특정 학문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나는 이렇게 자유와 다양성을 숭배하는 분위기 속에서 비교적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전통음악인 '가밀란 (Gamelan)' 수업부터, 불교의 교리가 서구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탐구하는 수업까지, 4년 동안 정말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이란 잡학은 다 접해본 것 같다. 그중에서도 내가 특히 빠져든 과목은 졸업을 1년 남기고 수강한 중국 한시 수업이었다.


중국 한시 수업을 진행한 교수님은 왕 아오 (Ao Wang) 교수님으로, 북경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딴, 아무리 많게 봐야 30대 중반 정도로밖에는 안 보이는 젊은 교수님이었다. 왕 교수님은 평균보다 작은 키에 가시처럼 마른 체형이라 객관적인 외모는 별 볼일 없었지만, 늘어뜨린 장발 뒤에 보이는 웃음기가 감도는 얼굴이 오묘한 분위기를 내는 분이었다.

이 교수님의 학창 스토리 역시 유별난데, 교수님의 큰 형은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수재여서 중화인민공화국 23개의 성 중 하나인 산둥 성(山东省)의 전체 수석으로 북경대에 입학했다고 한다. (참고로 산둥 성의 인구는 1억 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두 배 정도 된다.) 너무나도 뛰어난 아버지나 형을 둔 남자아이들이 흔히 그러듯이, 교수님 역시 형의 위상에 한껏 주눅이 들어 공부에 별 흥미를 붙이지 못했고, 그래서 초, 중학교 내내 교과서 대신 주야장천 무협소설만 팠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중3이 되던 해, 북경대 합격통지서를 이미 받아놓은 그의 형은 동생을 불러 앉혀다 놓고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는 소년만화에나 나올법한 충고를 던졌고, 신기하게도 나였으면 듣자마자 더 비뚤어졌을 이 억지스러운 조언에 감화되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교수님은 3년 뒤에는 형과 같은 산둥 성 전체 수석의 성적으로 북경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교수님이 학생 시절 내내 읽었다던 무협소설은 기 운용과 장풍의 원리를 함수 그래프나 양자역학으로 설명한 수능시험전용 무협지였나 보다.


어쨌든 그런 왕 교수님과는 고등학교 성적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이 비슷하고 잘 맞아 1년 동안 밥도 같이 먹고, 차도 마시면서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사무실이나 캠퍼스 벤치에 앉아 한가로이 시와 여인의 신비로움에 대해 담소를 나누거나, 때론 침 튀기며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호걸들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곤 했는데, 어찌나 죽이 잘 맞던지 무슨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든 간에 일단 바퀴처럼 한번 구르기 시작하면 점점 가속도가 붙어 몇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버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열띤 토론 때문에 갈증이 났는지, 왕 교수님은 잔디밭에 앉아 술이나 한잔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교수님에게 미국은 그렇게 야외 아무데서나 벌렁 누워 음주를 즐길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하자, 그는 무애한 세상에 울타리 세워봐야 부질없는 짓이라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재킷 안주머니에서 힙 플라스크를 꺼내 내게 건넸다.

그는 웃으며 이것이 바로 이태백(李太白)이 죽고 못 살았던 백주(白酒)라고 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교양인이라면 백주는 벌컥벌컥 목구멍으로 '넘기는 게' 아니라 천천히 혀끝으로 돌려가며 입안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라는 '꿀팁'까지 일러주었다.


이태백처럼 월하독작(月下獨酌)할 자신은 없었기에, 결국 우리는 훤한 백주대낮부터 백주를 신나게 돌려마셨다. 교수님은 제대로 흥이 올랐는지, 갑자기 내 어깨에 자신의 팔을 턱 하니 얹고, 목을 축 하고 늘어뜨리더니 뜬금없이 앞으로 졸업하면 무엇을 할 작정이냐고 물었다. 별 계획이 없었던 탓에 최대한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려 상황을 모면해볼까도 했지만, 내 입안에 백주가 너무 많이 스며든 탓인지, 아니면 내 어깨 위에 무겁게 얹힌 교수님의 팔이 새삼 내 마음의 짐의 무게를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교수님에게 오래전부터 날 괴롭혀 왔던 고민에 대해 말씀드렸다. 바로 내가 여태껏 아무런 목적도 없이,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채, 그저 유유히 물 흐르듯 인생을 허비하며 살아온 것만 같다고 말이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물은 유유히 흘러가다가도, 어느 순간 해일이 될 수도 있는 것. 너는 아직 어리지 않느냐. 컵에 담으면 컵이 되고 병에 담으면 병이 되는 물처럼, 벌써부터 한 가지 형태를 고집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라. 그러면 그 어떤 좁은 틈 사이로도 길을 찾아 흐르는 한줄기 물처럼 네 길도 열릴 것이다.

BE WATER, MY FRIEND.


순간 이 주정뱅이 교수님이 있는 무게는 다 잡으면서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싶었다. 황당하다는 얼굴로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의 시를 인용한 것이냐고 묻자, 그는 나보다 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소룡(李小龙)이라고 했다. 할 말이 없어 그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물이 되라던 왕 교수님도, 물이 되라는 말을 들은 나도, 한동 아무 말 없이 잔디밭에 앉아 허탈하게 웃어젖혔던 기억이 난다.




참 신기한 것이, 어떤 말들은 시간이 지나도 잘 잊히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바래지며 풍화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된다. 세월의 망각이라는 시험을 견디어내는 것, 어쩌면 이것이 시대가 변해도 살아남는 명문장들의 특징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왕 교수님은 역시 천생 시인이었나 보다. 마음을 비우고 형태가 없는 물이 되라던 그의 그 말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게 내 마음에 남아있는 걸 보면 말이다. 가끔 술에 취해 헤롱 거리긴 했어도, 그는 분명 싱거운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그의 그 말도 시간의 흐름을 견디어낸 것이지 시간을 흐름을 막아준 건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은 어쩔 때는 빠르게, 어쩔 때는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언제나 일정하고 확실한 속도로 움직인다. 내 졸업일도 그렇게 확실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다가왔다. 졸업을 하면서도 난 여전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전과 같이 조급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왕 교수님의 위로가 뚜렷한 목적 없이 어둠 속을 표류하는 것만 같았던 내 앞길에 한줄기 밝은 빛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미리 한 가지 형태를 고집하지 않고 내면을 키우면서 기다리다 보면, 나에게도 언젠가 정말 길이 보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게 컵이든, 병이든, 좁고 불편한 바위틈이든 말이다.


여담이지만, 훗날 로스쿨 지원서를 준비할 때 왕 교수님에게 추천서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는 그 당시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며, 지원마감일 전날까지도 추천서를 제출하않아 나를 벌벌 떨게 만들었었다. 그는 내가 그처럼 자유롭고 초탈한 삶을 살기를 바라서 그랬던 것이었을까? 아님 내가 법을 배우기엔 소양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그랬던 것이었을까? 알 수 없다. 어떤 이유에서였든, 한갓 중생이 어찌 은사의 광대한 뜻을 시비하겠는가.


<3부에서 이어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