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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규 Jun 20. 2018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대해야 할까?

죽음, 삶, 그리고 행복에 관하여 (1)

죽음, 삶, 그리고 행복에 관하여

1부: 죽음


세계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먹거리와 문화를 체험하며 현지인들과 교류하고, 그곳의 역사와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소개하는 직업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일까? 거기에다가 이 직업을 통해 부와 명성, 그리고 사랑까지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룬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앤소니 보데인 (Anthony Bourdain). 그는 셰프이자 작가, 그리고 CNN의 간판 방송인이었다. 그는 모험으로 점철된 인생을 실로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보데인은 1956년, 프랑스계 아버지와 미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명문 인문대 바사 칼리지 (Vassar College)에 입학하였지만 2년 만에 대학교를 중퇴하고 셰프가 되기 위해 미국의 유명 요리학교인 CIA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들어가 졸업한 후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요리사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방장으로서의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어느 날, 보데인은 자신이 ‘사회 부적응자의 마지막 보루’라 표현한 주방이라는 밀폐된 공간의 거칠고 추악한 민낯을 여과 없이 폭로하는 내용을 한 잡지사에 기고한다. 계산된 행동이 아닌, 술에 취해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하지만 술김에 보내버린 이 글은 한 출판사에 눈에 띄게 되고, 그들은 보데인에게 그의 글에 살을 더 붙여서 요식업계 바닥의 생리를 좀 더 자세하게 풀어낼 책을 집필해볼 것을 제안한다.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 『키친 컨피덴셜 (Kitchen Confidential)』인데, 이 책은 <뉴욕 타임즈> 사상 최장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되며 그에게 엄청난 명성을 안겨주게 된다. 


보데인의 『Kitchen Confidential』


이후 방송인으로 변신한 보데인은 더욱 가파른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에게는 미지의 영역과 그 안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음식과 사람들에 대한 맹렬한 호기심이 있었고, 그러한 호기심을 뒷받침해줄 만한 직설적이지만 재치 있는 입담과 이야기꾼으로써의 재능도 있었다. 이와 더불어 놀랍도록 소탈한 모습과 가끔 종잡을 수 없는 언행까지, 사람들을 사로잡을만한 요소들을 두루 갖춘 그가 요리계의 '원조 록스타' 이자 두 번의 에미상까지 수상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방송인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술김에 충동적으로 기고한 한편의 글로 꿈같은 일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는 언론사들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세상 최고의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그가 얻은 건 직업적이나 사업적인 성공뿐이 아니었다. 그는 방송을 통해 사랑도 찾았다. 작년에 그는 그가 제작하는 여행 다큐멘터리 <파츠 언노운 (Parts Unknown)> 로마 편을 촬영하다 만난 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아시아 아르젠토 (Asia Argento)와 연인 관계로 발전해 공개 석상에 늘 그녀와 함께하며 돈독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아시아가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행과 성추행을 폭로하며 미투 (#MeToo) 운동에 뛰어들 때에도 그녀의 곁에서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었고, 미투 운동이 레스토랑 업계에도 이어지자 자신이 "여성들의 동지가 되어주지 못했다"라고 후회하며, 여성 요리사들의 미투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에도 활발하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틴 샐리그만 (Martin Seligman)이라는 임상심리학자는 수많은 상담 사례를 통해 삶의 '위대한 세 영역'은 사랑, 일, 놀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이 세 영역으로 자신들의 삶을 채우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말이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앤서니 보데인은 참 운이 좋게도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고 꿈꾸는 여행이라는 일탈의 행위에서 사랑, 일, 놀이를 다 찾은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인생이었고, 나 또한 그런 그의 삶을 늘 동경해왔다.


앤서니 보데인 (1956 - 2018)


이렇듯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던 그가 지난 8일,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놀랍게도 자살이었다. 그가 직접 제작하고, 최근의 연인까지 만나게 해 준 <파츠 언노운>의 다음 시즌 촬영을 목적으로 떠난 프랑스 케제르베르의 한 호텔 방에서 스스로 목을 맨 것이다. 유명 디자이너 케이트 스페이드 (Kate Spade)가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지 사흘 만이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은 보데인의 자살이 미국의 자살률 증가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도했고, 그의 충격적인 죽음에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로부터 애도가 이어졌다. 보뎅이 제작하고 출연한 <파츠 언노운>의 하노이 편에 나와 그와 함께 식사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도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보데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낮은 플라스틱 의자, 싸지만 맛있는 쌀국수와 차가운 하노이 맥주. 이게 바로 내가 기억할 앤소니다. 그는 우리에게 음식을 가르쳐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도, 우리에게 서로와 유대하는 법을 가르쳐 줬고, 낯선 것들에 대해 조금 덜 두려워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우리는 그가 그리울 것이다.
- 오바마 전 대통령


내가 기억할 보데인의 모습은 어떤 것 들일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가 포스트 카다피 시대가 개막한 격동의 리비아에서 오픈한 아메리칸 패스트푸드 매점에서 '자유의 전사' (Freedom Fighter: 반정부 무장 투쟁을 하는 사람을 칭하는 이름)들과 혁명에 대해서 토론하고, 하노이의 한 허름한 로컬 식당에서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6불짜리 쌀국수와 맥주를 허심탄회하게 즐기던 모습, 그리고 서울의 한 먹자골목에서 한국의 회식 문화를 배우기 위해 직장인들과 연거푸 폭탄주를 털어 넣으면서 서서히 눈빛의 초점이 흐려져가던 모습이 유난히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주방의 어두운 이면을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처럼, 그는 대중들에게 여행지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골라 보여주지 않았다. 가끔은 우리가 보기에 이해하기 힘든, 딱히 보고 싶지 않은 면들도 함께 조명했다. 그러고선 그러한 낯선 '미지의' 문화와 풍습이 생기게 된 배경과 역사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면, 그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 또한 줄어들 거라고 대중을 설득했다.




늘 새로운 곳으로의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는 그렇게 본인의 선택으로 죽음이라는 삶의 마지막 종착지로 가는 여행을 떠났다. 앤서니 보데인은 그가 생전에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죽음이라는 인간이 겪는 최후이자 최대의 '미지의' 여행지까지도 먼저 탐험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삶이 고통스러워서였을 수도 있고,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타인'의 죽음이 '나'의 죽음에 대한 인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아직 닥치지도 않은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게 삶에 도움을 줄 수나 있는 걸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죽음에 대하여 반드시 고민해봐야만 한다.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죽음에 대한 의미 있는 고찰은 필수적으로 따라와야 할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죽음이란 생각보다 우리와 가까이에서 호흡 하며 존재한다. 우리는 매년, 매주, 매 순간, 조금씩이지만 분명하게 죽음에 다가가고 있다. 김광석이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고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깊게 성찰해보려 하지 않는다. 특히 젊을 때는 더더욱 죽음에 대해 고민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가보지 못한,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근본적 두려움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자신의 마지막 종착지인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죽음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딱히 일찍 서둘러 보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상념은 보통 우리의 의식의 표면 아래 깊은 곳에 잠들어 그 모습을 평소에는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충격적인 계기가 생기면 얘기가 달라진다. 보데인처럼 완벽하고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았던 유명인사가 본인의 삶을 끝내는 것을 보면 우리는 삶, 죽음, 그리고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사유할 기회를 갖게 된다. 잠재의식 속에 웅크리고만 있던 죽음에 대한 의식이 표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죽음이란 결국 무엇인가?


나는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무엇을 해야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어떻게 해야 후회 없이 살 수 있을까?


매일매일이 이러한 고민의 연속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젊을 때일수록,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을수록 때때로 이러한 질문들을 의연하게 마주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죽음이 두렵더라도, 죽음으로 나아가는 동안 내가 살아가야 할 이 삶의 내용물을 최대한 후회 없이, 그리고 의미 있게 설계하려면 지금부터 이러한 질문들에 각자 나름의 답변을 준비해놔야 한다. 죽음이란, 인생이라는 서사시의 마지막 장이자 삶이라는 교향곡을 장식할 피날레다. 삶의 종결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삶을 완성시켜주는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보는 게 더 맞다. 그렇게 중요한 결말에 대해 어느 정도의 계획이 없고서는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어떠한 삶을 살지, 어떠한 행복을 추구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죽음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학업에 지칠 때나, 실내에만 있는 게 가끔 지독하리 만큼 답답하게 느껴질 때 보데인이 기획한 여행 다큐멘터리를 통해 넓은 세상과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해방되는 느낌을 얻고는 했다. 그는 떠났지만, 익숙한 세계의 범주 밖으로 나아가 그와 다른 문화와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소통하고 이해하려고 했던 그의 모습들만큼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떠난 그 마지막 여행이,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현세에서의 여행들만큼 아름답길 기도해본다. 또한 나는 우리가 타인의 죽음을 통해 본인의 죽음까지 더 깊이 성찰해봄으로써, 우리가 각자 마주할 마지막과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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