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 사람들] 이리카페 김상우씨
단골 카페가 있습니다. 이 카페의 계산대 위엔 ‘마음’이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습니다. 손님들은 마음 아래에서 주문을 하고, 돈을 지불합니다. 카페 주인 김상우(44)씨는 시를 씁니다. 2014년 한국작가회의에서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습니다. 이 카페는 누구나 와서 전시나 악기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예술·문화인들의 아지트인 셈이죠.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상우씨는 신학대를 다니다 관뒀고 그의 어머니는 목사입니다. 카페에서 만난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 선한 사마리아인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참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감춰져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장관이나 검경,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소개하는 기사는 널렸지만, 단골식당 아주머니, 집 앞 편의점 할아버지, 양복점 아저씨, 커피숍 알바생의 삶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소중한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죠.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상수동 사람들’을 시작합니다. ‘상수동’인 이유는 별 게 없습니다. 그냥 제가 이곳에 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곳은 서울 상수동 와우산로길에 있는 ‘이리카페’입니다. 처음엔 홍대 쪽에 있었는데 2009년 여름 집주인에게 내쫓기면서 이곳에 옮겨왔습니다. 상우씨는 시만큼이나 음악을 사랑합니다. 3호선버터플라이와 허클베리핀이라는 밴드에서 드럼을 쳤습니다. 지금은 ‘마음’이라는 2인조 밴드에 몸담고 있습니다. 원래 ‘몸과 마음’이란 3인조 밴드였는데 기타리스트가 하와이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몸은 없고 마음이 됐습니다.
이리카페를 함께 차린 동갑내기 이주용(44)씨를 만난 건 12년 전입니다. ‘술집’이란 이름의 단골술집에서 시에 대해 얘기하며 친해졌습니다. 둘은 헤르만 헤세의 단편소설 ‘황야의 이리’를 좋아했습니다. 이리는 집단생활을 하면서도 고독함을 안고 있는 동물이랍니다. 이런 특징이 예술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서 카페 이름을 ‘이리’로 했습니다.
“저 글씨 보이세요?”
상우씨가 손가락으로 반대쪽 벽을 가리켰습니다. 한문으로 ‘중용(中庸)’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2012년 어느 날 한 70대 노인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신촌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하는 노인이었습니다. 카페 앞을 지나는데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아 문을 열었답니다. 노인은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혹시 주말에 이곳에서 손님들에게 공짜로 서예를 가르쳐도 될까요?”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노인은 카페에서 서예를 가르쳤습니다. 재료는 상우씨가 마련했고 노인은 그날그날 카페에 온 손님들과 글을 썼습니다. 70대와 20대는 그렇게 어울렸습니다. ‘중용’이란 글귀도 이때 적은 겁니다. 잠시 당시를 회상하던 상우씨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진짜 예술적인거죠.”
그러는 동안 상수동 골목에 상권이 형성됐고 임대료가 치솟았습니다. 터무니없는 임대료를 요구하는 건물주도 있습니다. 위기에 몰린 상인들은 쫓겨나지 않기 위해 상인회를 만들었습니다. 고독함을 안고 태어났지만 생존을 위해 집단생활을 하는 이리처럼 말이죠.
상우씨는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요즘 시대에 맞는 얘기인 진 모르겠지만
저는 사람들과 상관하며 사는 게 좋아요.
예술을 하든 안하든, 젊든 늙든, 우리 카페가 누구나 와서
같이 대화할 수 있는 동네평상처럼 남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