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 사람들] 제비다방 오상훈씨
단골식당 아주머니, 집 앞 편의점 할아버지, 양복점 아저씨, 커피숍 알바생…. 우리 주변 이웃들은 평범하지만 저마다 소중한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단편소설 ‘날개’로 유명한 소설가 이상(1910~1937)은 1933년 서울 종로에 제비다방을 차렸습니다. 여기서 지인들과 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면서 한량처럼 지내다 2년 2개월 만에 문을 닫습니다. 77년이 지난 2012년 4월 오상훈(41)씨는 서울 상수동에 제비다방을 열었습니다. 한량처럼 살고 싶었답니다. 이곳에선 매주 목·금·토·일요일에 밴드 공연이 열리고 가볍게 맥주를 마실 수도 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음악이나 영화, 미술, 문학을 좋아했답니다. 20대 중반에 동생 창훈(39)씨와 홍대 근처에 작업실을 마련했는데, 거의 매일 음악·영화·미술·문학하는 친구들과 여기서 먹고 마시고 놀고 노래하고 토론하고 잤답니다. 크라잉넛의 한경록,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조카를로스도 이때 같이 놀던 친구들입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살롱’같은 분위기여서 그들은 작업실 거실을 ‘레몬쌀롱’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청년들은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이렇게 한량처럼 놀고 있습니다. 아예 ‘문화지형연구소 CTR’이란 걸 차려놓고 말이죠.
CTR은 출판·건축·음악·미술 등 다양한 문화를 연구하는 공동체입니다. ‘놀이터 프로젝트’ ‘어슬렁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고, 원피스 매거진이란 잡지도 발행했습니다. 원피스 매거진은 한국잡지로는 처음으로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이란 갤러리에 들어갔습니다. 예술성은 인정받았지만 팔리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돈이 안 되니 결국 2012년 여름호를 마지막으로 출판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CTR 작업실을 홍대에서 상수동으로 옮기면서 이들은 제2의 레몬쌀롱이 필요했습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도 노는 건 멈출 수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차린 게 제비다방입니다. 레몬쌀롱은 지인들의 놀이공간이었다면 제비다방은 누구나 찾아와 즐기면 된다는 게 차이점이겠죠. 밤이 되면 제비다방의 간판은 ‘취한제비’로 바뀝니다.
한량이 롤 모델인 사람치고 상훈씨의 직업은 무려 교수입니다. 단국대에서 건축학을 가르칩니다. 영국 런던의 건축학교 AA스쿨을 졸업하고 자하 하디드 건축사무소에서 일했었습니다. 제비다방 건너편에 있는 ‘CTR 회의실’에서 만난 상훈씨는 ‘감성공대생’의 기운을 물씬 풍기고 있었습니다. 제비다방도 상훈씨가 직접 설계했습니다. 빨간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게 가운데 바닥이 우물처럼 뻥 뚫려 있어 1층에서도 지하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구멍은 소리의 울림통 역할도 한답니다. 고작 13.5평. 테이블을 더 놔도 모자랄 판에 구멍을 뚫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물었더니, 돈 생각을 하는 건 놀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랍니다. 철학이 있는 한량입니다.
지하엔 만화책과 잡지가 잔뜩 꽂혀있습니다. 책은 소리를 흡수하기 때문에 공연 때 너무 시끄럽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답니다. 책과 테이블, 피규어 같은 것들은 대부분 레몬쌀롱에서 가져왔답니다.
상수동 상인들은 최근 몇 년 새 건물 임대료가 많이 올라 걱정이 많습니다. 제비다방은 임대가 아니기 때문에 쫓겨날 걱정은 없지만 상훈씨는 상수상인회에서 건물주들의 터무니없는 임대료 인상을 막는데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리카페 탐라식당 등 여기에 자리 잡은 가게들이 그대로 남아있어야 ‘상수동’이라고 했습니다.
1934년 5월 1일자 잡지 ‘삼천리’에 게재된 ‘끽다점평판기’를 보면 “(소설가 이상이 차린) 제비다방 손님은 주로 화가, 기자 그리고 일본유학에서 돌아와 할 일 없이 차나 마시며 소일하는 유한청년들이었고” “그들은 ‘육색(肉色)’ 스톡킹으로 싼 가늘고 긴 각선미의 신여성들을 바라보며 황홀해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옛날 제비다방은 2년 2개월 만에 망했지만 지금의 제비다방은 6년째 남아있습니다. 옛날 제비다방은 금방 날개가 꺾였지만 지금 제비다방은 좀 더 오랫동안 한량을 꿈꾸는 이들의 아지트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의 소설 ‘날개’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