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나 Oct 06. 2023

'계단' 밑에 앉아서 쓰는 글

노력하다 보면 지쳐!  

                




트라우마, 성격 문제, 운전 지능이 낮음(?!), 지식과 기술의 부족..

운전을 못하는 원인들에는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었다.

문제의 원인들도 여러 가지고, 그것들을 해결할 방법들도 막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쨌든 저쨌든 운전을 하면 다 해결된다고 했다. 열심히 운전 연습을 하면 된다고.

 


그래서 나는 일단 되든 안되든, 운전 연습을 계속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열심히 노력하면 문제가 해결되냐고?



아니, 지쳐버린다.

  


세상에 많은 일들은 노력으로 해결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운전 연습을 위한 노력의 경험은 번번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끝나고야 말았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도로로 나갔는데 거기서 또 난감한 문제 상황을 맞닥뜨리곤 했다. 그런 상황들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날은 어쩐지 '이해할 수 없는 악의'라는 걸 처음으로 느낀 날이었다.



운전 연수를 마치고 얼마 되지 않은 때, 남편을 옆자리에 태우고 집 근처로 운전 연습을 나왔다. 봄날 일요일 오후의 날씨는 명랑하게 느껴질 정도로 좋았다.

그런 분위기에 마음마저도 한결 밝아진 상태로 나는 왕복 6차선 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차 뒤에는 초보운전이라고 잔뜩 붙여놓고.

도로 역시 한적하기 그지없는 상태로, 6차선 도로인데도 내 앞뒤로 차가 한 대도 없는 상태여서 이런 게 도로를 전세 낸 건가 싶어 기분이 유쾌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쪽에서 빠른 속도로 나타난 오토바이가 계속 빵빵거리며 뒤를 따라오다가 차 옆에 붙어서 다시 빵빵거리는 게 아닌가.



나 : 저 차 왜 저래? (순수한 의문)

남편: 저 자식 왜 저래? (순수한 분노)

나: 내가 뭐 잘못했어?

남편: 아니야. 네가 잘못한 거 없어. 저 사람이 이상한 거야.



당연히 나는 내가 또 뭔가를 잘못해서 저 오토바이가 나한테 빵빵거리는 줄 알고 잔뜩 긴장했다. 그런데 옆에서 남편이 화를 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남편 말에 의하면, 차가 조금 느리긴 하지만 어쨌든 제한 속도에 맞게 가고 있고 심지어 이 넓은 도로에 다른 차도 없는 상황이라서 도로 흐름에 방해가 된 것도 아니란다.

 


그런데 지금 오토바이가 저런 행동을 하는 건 단순히 초보운전자라서 일부러 그러는 악의적인 행동 같다고. 화가 난 남편이 조용히 창문을 내려 오토바이 운전자를 쳐다보자, 놀랍게도 우리 차를 쫓아오며 경적을 울리던 오토바이 운전자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나타났던 것처럼 빠르게 가버렸다.



만약 남편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뭔가를 잘못한 줄 알고 겁에 질렸을 것이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뭔가 잘못했으니까 상대편 운전자가 저럴 것이라고 스스로를 나무라며.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악의'라는 걸 처음으로 느껴보며 운전 꿈나무의 새싹 한 잎이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싹 틔우기 힘들다. 지쳐 증말.



도로 위에서 만난 좋지 않은 경험들은 당연하게도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런 경험들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말했다. 운전하다 보면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다고. 잊고 이겨내야 운전을 잘할 수 있다고. 아니 대체 이 정도까지 해야 하는 운전이란 대체 뭘까.





학창 시절 성적은 계단식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성적은 곡선의 형태로 쭈욱 상승되지 않고 계단식으로 향상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다음 계단을 넘어가기까지 성취가 눈에 보지 않는 평탄한 구간이 있더라도 그 구간을 잘 견뎌내야 끝에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를 할 때는 그 말을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전 실력의 향상도 계단식 성장론에 대입해 생각해 보니 어쩐지 납득되지 않았다.

운전이라는 계단은 폭이 너무 높아 걸어서 올라갈 수 없는 고개 같이 느껴졌다. 아니면 내 계단은 개수가 너무 많아 끝이 보이지 않게 계속 이어져 있는 걸 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어지러운 거 보니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이어져 있는 건가?

                   


 이거 누구에게나 똑같은 계단이 아닐지도 몰라!



출처:PIXABAY

       

나도 이 모든 것들을 빨리 이겨내고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더 노력해보려고 해도 갑자기 운전에 대한 모든 상념들이 먹구름처럼 머릿속에 가득 차고 말았다. 정리되지 않은 상념들에 머리가 복잡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도로로 차를 끌고 나가는 대신 제자리에 멈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여기에 적혀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생각들을.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아직 펴지 못한 채 구부정한 자세로, 계단 밑에 주저앉아, 글을 쓰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