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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석 Dec 24. 2023

‘아코’
-우리는 하나 김원석

‘아린’이는 까만 밤을 좋아해.

까만 밤은 네가 잘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펄럭 마귀할멈 망토 자락에서 

“야옹.”

예쁜 고양이가 폴짝 튀어나올 것 같지 않아?      

아린이 살갗은 엄마를 닮아 잘 익은 짙은 밤색이야.

아빠는 KOREAN.

엄마는 AFRICAN 

엄마 고향 아프리카 ‘아.’

아빠 이름 ‘김경린’에서 ‘린’ 

‘아린’이.     

아린이를

“연탄.”

“번개탄.”

또 어떤 친구는

“깜둥아!”

대놓고 부르기도 해.     

연탄, 번개탄, 깜둥이 

온갖 것으로 아무리 놀려도,

쪼금도 부끄럽지 않아.

피부 색깔만 다른데 뭐.

아빠와 엄마는 그런 놀림은 괜찮다고 해.

여태껏 귀에 못 박히도록 들은걸.     

괴팍한 아이는 아린이랑 놀면 

검댕이 묻는다고 

가까이 오지도 않아.

아린이는 기죽지 않고 살아나는 민들레꽃이야. 

늘 웃는 얼굴 아린이 얼굴, 민들레. 

누가 뭐래도 선택받은 아빠 딸, 엄마 딸.      

아린이에게 아주 아주 신나는 일이 생겼지. 

*사랑의 열매(인형 몸통)를 나눠 주며, 

예쁜 동생 인형을 만들어 오라는 거야. 

아린이는 동생이란 말에 

“얼쑤!”

한판 춤을 신나게 출 일이 생겼어. 

아린이에게는 동생이 없거든.     

‘좋아, 나를 쏙 빼닮은 동생을 만들어야지.’

아린이 마음에 곱게 간직한 

여동생을 만들기로 했어. 

동생을 낳아 달라고 조르고 조른 그 동생을.     

‘엄마 마음으로 동생 만들어야지.’

아린이는 불량식품도 먹지 않고,

고운 말만 골라하고, 

좋은 노래만 흥얼거리고,

정말이지 엄마가 태교하듯, 

아린이도 좋은 생각만 하며 동생을 만들었어.      

아린이처럼 반짝이는 눈, 

초승달보다 더 날씬한 엄마 눈썹, 

엄마 코를 빼다 박은 코, 

활짝 웃는 아빠 입도, 귀도, 머리카락도,      

연보라색 레이스가 달린 속옷도, 

청색 웃옷에, 편한 후레아 스커트,

아린이 마음에 숨어있는 것을 찾아 만들었어.

밥 먹는 시간도,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지.

아린이 마음엔 온통 동생뿐이야.      

‘냉면집 아주머니.’

아린이는 냉면집을 제집처럼 드나들었어.

아린이는 냉면집으로 들어가, 곧장 계산 대로 갔어.

“어머! 예쁜 단추. 여태껏 있네. 

아줌마, 이것 내 것 하면 안 돼?”

아린이는 계산대 옆에 있는 동전통에서 단추를 꺼넸어.      

“글쎄다. 손님이 흘리고 간 건데?”

“잊어먹었나 봐. 그때가 벌써 언젠데?”

“그건 또 언제 봤지?”

“바닥에 떨어진 거, 내가 동전통에 넣었잖아.”

“참, 그렇지.”     

“아줌마, 내가 그 손님한테 빌린 걸로 하면 안 될까……?”

“비닐 포장을 보면, 사 오다가 흘린 것 같은데….”

“나, 이거 꼭 필요하단 말야? 중요하지 않으니까 찾으러 안 왔지?”

아린이 말도 틀리지 않았어. 

새로 산 거니까, 또 살 수도 있어 아주머니는 승낙했어.      

아린이는 예쁜 동생 만들려고 

온 마음을 동생에게 두고, 

동생에게 어울리는 건 무엇이든 모았어. 

아주 조금은 엄마 손도 빌려, 동생을 열심히 만들었지.     

두 눈은 냉면집 동전통에 있던 검붉은 단추. 

머리카락은 냉면집 바닥을 닦던 대걸레 가닥. 

웃옷은 궁둥이가 해진 아빠 청바지. 

후레아 치마는 엄마 치마 만들고 남은 자투리. 

아주 예쁜 아린이 동생이 태어났어.     

내 이름 아린이니까, 동생 이름은 ‘아코.’

엄마 고향 아프리카 ‘아’ 

아빠 고향 ‘코리아’ ‘코’. 

“우와! 신난다. 아주 멋진데.” 

아린이는 동생 ‘아코’ 뺨에 뽀뽀했지.     

우숩구나 우스워

단추가 눈이래,     

너무하다 너무 해

머리카락은 막대 걸레      

눈 뜨고 못 봐준다, 못 봐줘

바지가 윗도리래

조각 헝겊이 치마래     

아코는 무슨 아코

아프리카 코끼리

아기 코끼리 아코     

아니, 아냐

아프리카 코리아     

얼러리 꼴러리 얼러리 꼴러리

하하하- 하하하-

호호호- 호호호-

우습구나 우스워.     

아코가 뭐야?

아프리카 코끼리.     

아린이는 동생 아코를 학교에 내기 싫었어.

그 새 정이 든 거야. 

동생 몸 구석구석 아린이 손길이 

한 땀, 한 땀에 정이 흠뻑 들었거든. 

그러나 과제물이니 학교에 낼 수밖에.

아코가 떠나기 전날.

아린이와 아코의 마지막 날 밤.      

마귀할멈 검은 망토 자락을 깔고, 덮고

아린이는 아빠처럼 아코를 팔 베게 하고

나란히 누었어. 

“아코야,”

언니는 아빠처럼 불렀어.

“너를 태어나게 해 미안.”

내가 네 앞을 더 멀리 바라보지 못했어.     

네가 나처럼 조롱거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그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구나.

-언니야,

-걱정 마. 우리 뒤에 오는 동생들을 생각해 봐.

“그래, 고맙다.”

-우리 동생들은 

우리보다 ‘더’가 아니라, 우리보다 ‘덜’하겠지.     

-언니 우리 용감하게 살자.

-이 땅에 태어날 동생들 위해!

-언니는 나를 응원할 거지?

동생이 언니 같은 말을 했어.     

“어머, 어머머. 누가 연탄 아니랄까 봐.”

아이들이 아린이에게 모여들어 동생을 보고 놀렸어.

동생 아코 얼굴을 아린이마냥 또 엄마처럼 칠했거든.     

“어머! 아린이 정말 예쁜 동생이구나.”

선생님 칭찬에 놀리던 아이들은 샐쭉. 

아린이 마음은 하늘로 붕 떴어.

역시 선생님은 1004였지.     

“잘 만든 동생을 뽑아서, 

여러 사람이 보도록 전시할 거예요.”

친구들은 제 동생이 뽑힐 거라고 자랑했어.

아린이는 뽑힐 꿈도 꾸지 않았지. 

아니, “뽑히지 않게 해 주세요”하고 살짝 기도했어. 

사랑하는 아코와 헤어지기 싫어서. 

또 아이들 말대로 연탄을 누가 뽑겠어.      

아린이 얼굴을 보고, 슬쩍 고개를 돌리는 아이들 

아린이는 아이들을 잘 알거든.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을 나누었던 아코와 

헤어지는 게 서운했어. 

아린이 닮았다고 놀려도 싫지 않았어. 

아린이를 꼭 닮은 동생을 만들었으니까.     

“아린이가 만든 동생이 우수작으로 뽑혔어요. 

우리 반은 물론, 우리 학교가 

아린이 땜에 돋보이게 됐어요.”

아린이는 믿기지 않았어.

아린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어. 

동생 ‘아코’는 방글방글 웃으며 전시장으로 갔어.     

그날 밤 아린이는 동생이 그리워 뒤척였어. 

아코도 낯선 곳에서 잠이 오지 않았어. 

마귀할멈 망토 자락이 펄럭펄럭. 

망토가 동생들을 포근하게 감싸 주었지. 

아코도, 아린 언니를 닮아 밤을 좋아했거든.      

“너희에겐 내일이 있지. 그러니 오늘을 빨리 지나가게 하렴.”

마귀할멈 말에 동생들은 움켜쥐고 있던 어제를 풀어주었어. 

어떤 동생은 언니,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 울었지. 

아코도 짧지만 다정하게 지냈던 언니 생각에 우울했어.     

“아코, 너 여기 어떻게 온 줄 알아?”

마귀할멈이 분위기를 바꾸려 망토를 펄럭이며 물었어.

울고불고하던 동생들 귀가 아코 쪽으로 쏠렸어.

“아린 언니가 잘 만들어서 왔죠.”

“그건 그렇지만, 네 몸 구석구석에 

예쁜 네 언니 마음이 꽁꽁 숨어 있기 때문이야.”     

“예쁜 마음? 마귀할멈이 그것도 알아?”

예쁜 마음이란 말에 동생들은 귀를 쫑긋했지.

“내가 나쁘다는 건 가짜 뉴스야.”

마귀할멈이 기분 나쁜 얼굴로 말했어.

“진짜가 가짜 같고, 가짜가 진짜 같은 뉴스?”

“응.”      

“아린이가 동생으로 만든 건 

아린이에게 가장 귀하고 좋아하는 것들이야.”

“피이, 우리는 안 그런가, 뭐?”

마귀할멈 말에 다른 동생들은 섭섭해했지.

“너희들 아코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마귀할멈이 망토를 펄럭이며 물었어.     

“그건 모르고 나는 냉면집 동전통에 있었지.”

아코는 시쿤둥 하게 대답했어.

“그럼, 네가 왜 냉면집 동전통에 있었는지 알아?”

“그것도 생각 안 나.”

걸레는 단추 이야기를 해 주었어.      

단추는 파란 대문 집, 할머니 커디건 단추가 될 뻔했지. 

이북이 고향인 할머니는 냉면집을 가끔 찾았어.

할머니는 이 집 냉면에서 고향 맛이 난다는 거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진홍색 커디건을 입었어. 

커디건 단추 색깔이 벗겨져 바꿔 달려고, 할머니 며느리가 산 거야.      

할머니는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났어. 

할머니가 먼 길로 이사 가시기 며칠 전, 

냉면집을 찾아 냉면을 맛있게 잡수셨지. 

“고향에 왔어. 가고픈 내 고향.”

할머니는 냉면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마시며 고향 얘기를 했어.

그때 며느리가 만두값을 내는데, 지갑에서 떨어뜨린 단추야.      

아니, 냉면을 잡수셨는데 웬 만두 값이냐고?

쌀쌀한 날씨에 차가운 냉면을 드셨으니, 

뜨거운 만두가 쌀쌀한 날씨에 좋다며, 

할머니께 서비스로 주셨지.      

아주머니는 만두를 좋아했던 자기 어머니 생각이 난 거야. 

냉면집 아주머니는 할머니께서 잡수신 만두를 

어머니께 드린 거로 생각했으니 만두값을 받을 리 없지.     

할머니는 먼 길을 떠나기 전, 만두값을 꼭 갚으라고 했어. 

며느리는 할머니 목소리와 걸음걸음에 배어 있을 

할머니 마음으로 냉면집을 찾은 거야. 

아코 치마가 훌쩍훌쩍 소리 내어 울었어.

마귀할멈이 또 망토 자락을 펄럭였어.      

마귀할멈이 망토를 펄럭이자 아코는 외할머니 생각이 났어. 

아코 치마는 아린 엄마 치마를 만들고 난 자투리야. 

아린이 엄마가 시집가기 전에 외할머니가, 

“어려운 일 있어도 꾹 참고 잘 살아, 

다른 사람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지.”     

낯선 나라로 살러 가는 딸을 위해 

옷감을 사다가 손수 치마를 지어 주고 남은 천이야.

할머니 눈물과 슬픔이 또 꿈이 가득 담긴 천이기도 하지.     

“아코 웃옷은 어떻고? 

아코 할아버지 같은 분이 또 계실까?”

아린이 아빠가 아프리카로 의료봉사 간다고 하자 모두 말렸지. 

모두 반대하는데 아린이 할아버지는 청바지를 사다 주며,

“더운 나라 가서 환자 보려면 이 바지가 편할 거다. 장한 내 아들.”     

아프리카로 의료봉사 가는 것을 허락한 기념으로 사준 거야

“아니 그럼, 내가 바지였단 말이야.”

윗도리가 얼굴을 붉혔지

동생 인형 속옷이 자기를 빼놓자 샐쭉거리며 말했어.

“난, 아린이 엄마 눈물이 젖어있는 머플러야.

아린이 아빠는 한국 의사고, 

아린이 엄마는 아프리카 간호사였잖아. 

두 사람은 어느 누구든 병들고 아픈 사람을

내 부모, 내 형제처럼 고쳐 주었지. 

환자를 돌보는데 

두 사람 손과 발이 척척 맞고 마음도 잘 맞았어.”     

시간은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묶었어

떨어져 있으면 더 가까이 있고 싶고,

가까이 있으면 더 보고 싶었지 뭐야. 

청년 의사는 간호사에게 스카프를 목에 걸어 주며 말했지.

“나는 당신 반쪽이야.”

한국 사람과 아프리카 사람이 하나가 되었지. 

두 사람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기쁜 일 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더 많을 거야.     

“행복은 어려움을 참고 견뎌야 오는 거야. 

어려움이 많고 클수록 우리 행복은 더 커지는 거 알지.”

아린이 아빠는 스카프를 아린이 엄마 목에 둘러주며, 

귓가에 속삭였던 말을 떠올리며, 

괴롭고 슬플 때마다 스카프를 품에 안고 눈물로 참았어.

마귀할멈은 망토 자락을 펄럭이며 

아코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여러 동생들도 아코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갖고 있겠지.

그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생들에게 마음이 될 거야.

이야기 하나가 씨앗이 되어, 

이야기 하나가 꿈을 가꿔주고, 

이야기 하나가 사랑을 이어주고. 

이야기 고리, 고리가 하나로 꿰어져,

우리는 모두를 하나로 만들 거야.

우리는 하나야.”

마귀할멈이 여러 동생 마음을 깊이 새겨주었어.


아우 고리 꿈 고리

꿈 고리 아우 고리     

고리 고리 꿰어서

사랑 고리 만들어     

사랑 고리 아우 고리

아우 고리 사랑 고리     

고리 고리 꿰어서 

꿈 고리 만들자     

사랑 고리 꿈 고리

꿈고리 사랑 고리

고리 고리 꿰이면

우리는 모두 하나

우리는 모두 하나     


* 몸통인형을 사랑의 열매라고 보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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