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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미 Jul 01. 2022

나의 시공간을 돌보는 즐거움

이제부터 내 시공간 대주주가 되어보기로

자취를 시작했다.


한눈에 쏙 들어오는 비싸고 작은 공간을 얻었다. 그곳은 내가 말하지 않으면 고요하고, 내가 정리하지 않으면 가만히 더러워진다.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바지런 바지런


집 안의 모든 것이 내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니 집에 오면 잡념이 들 새가 없다. 화장실 곳곳에 생긴 얼룩이 눈에 들어오고, 발바닥에 느껴지는 먼지가 거슬려서 치우고 정리하느라 몸을 계속 움직이게 된다.


꽤 단순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다 보면 머릿속도 제법 말끔해진다. 그저 이런 생각만 하는 거다.


이거 먼지인가

먼지가 어디서 들어왔지?

창문에서 들어왔나

여기는 뭘로 닦지

이걸로도 잘 닦이나?




퇴근을 하면 가장 먼저 저녁거리를 준비한다. 음식이 익는 동안 잠시 틈이 생기면 세탁기를 돌리거나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돌린다. 저녁을 챙겨 먹은 뒤에는 식기를 치우고 설거지를 한다. 틈틈이 널브러진 물건을 정리하고, 불필요하게 꽂혀있는 코드를 뽑거나 절전 모드로 바꾼다. 작은 방이라도 혼자 건사하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


요즘 마음을 어떻게 정돈해야 할지 아득해서 좀 헤매고 있었다.


집 안 곳곳을 들여다보고 정리하다 보면 집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느낌이 든다. 내가 머무는 공간을 정갈하게 유지하는 일이 나를 돌보는 일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본가에 있을 때는 엄마가 혼자 집안일을 하시는 게 싫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정리할 게 생기면 꼭 엄마가 먼저 움직이시는데 그게 싫어서 먼저 움직이곤 했다. 집안일은 늘 조금씩은 스트레스였다. 지금은 별생각 없이 집안일을 한다. 사실 요즘은 집안일이 즐겁다.



자취를 시작하고, 통근시간이 줄면서 아침과 저녁시간이라는 것이 생겼다.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이 시간의 지분은 오로지 나에게 있다.


아침은 의욕을 만드는 시간이다. 몸을 깨우고, 하루를 시작할 기운을 만드는 시간.


창문을 열고 날씨를 확인한 뒤에, 유튜브를 연다. 지금 나의 몸 상태에 맞춰서 운동을 선택한다. 몸이 뻐근하고 나른한 날에는 요가를, 에너지가 부족한 날에는 홈트를 한다. 삼십 분에서 한 시간가량 운동을 한 뒤에는 온몸이 땀에 젖는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외출 준비를 하면서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여유가 될 때는 일기를 쓴다. 좋아하는 유튜버 이연님을 따라서 요즘 아침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저녁에 쓰는 일기는 어쩐지 조금씩 나를 갉아먹었다. 일기장이 자꾸 후회와 속상한 마음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쓴 글을 보고 있으면 내 일상이 늘 이렇게 잿빛이었나, 그건 아니었는데 싶어서 즐거운 일을 떠올려보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어떤 날에는 그 일이 조금 억지 같아서 그만두고는 했다.


아침 일기는 그렇지 않다. 뜨거운 감정은 없더라도 미지근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내다본다. 오늘은 이렇게 살아보자, 요즘 나의 일상은 이런데 그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렇게 해보자. 아침의 덤덤함을 빌려 하루를 열어보는 거다. 뒤보다는 앞을 보는 일기를 적을 때 조금 더 힘이 났다.


밤은 아침과 쓰임이 전혀 다르다.

밤 시간은 여유를 누리고 하루를 정리하며 잠을 부르는 시간이다.


천천히 저녁을 먹으면서 보고 싶었던 콘텐츠를 누리고, 방 정돈을 하며 잘 준비를 한다. 잘 준비를 마친 뒤에는 평소 쓰고 싶어 한 글을 끄적인다. 혹은 누군가가 쓴 글을 읽는다. 방에 제법 여러 권의 책을 가져다 두었다. 주로 여러 번 읽고 싶은 책들이다. 어떤 것을 꺼내 읽어도 반가울 책들.



컬러링북에 색을 칠하는 것처럼 매 시간을 나의 손으로 채우는 경험이 새롭고 행복하다. 그간의 일상이 이미 가득  채 내게 배송되었다면, 지금은 빈 곳을 직접 채워나가는 즐거움이 있다. 늘 이동과 통근으로 점철되어 있던 일상 곳곳이 비워지면서 내 손으로 채워갈 수 있는 시공간이 만들어졌다.


매일 경기 남부에서 강북으로, 강북에서 경기 남부로 움직였다. 나머지 시간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거나 학교에서 강의를 듣거나 다른 활동을 했다. 그 외의 시간에는  미처 마치지 못한 일을 또 하거나 온종일 움직인 몸을 회복시키느라 안간힘을 다해 가만히 누워있었다.


무엇보다 내 시간의 지분을 확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요즘이다. 인생이 조금 내 손을 떠난 것 같을 때, 오로지 나만이 경영할 수 있는 시간을 손에 꽉 쥘 것이다. 잔잔하게 흔들림 없이 행복한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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